악마와 살아가는 법 #2

"마트부터 가자"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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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만난 이들은 먼저 대형마트부터 가는 것이 좋습니다.


등산용품 코너나 주방용품 코너에서 유용한 것들이 많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식칼보다는 손도끼가 추천품목입니다. 무쇠로 된 프라이팬도 충분히 치명적입니다. 공구들을 살펴보면 전동드릴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또 소형전기톱이 얼마나 그 유능성을 뽐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깊은 신뢰가 가는 바입니다.


알루미늄 야구배트도 눈에 띕니다. 나무로 된 것보다 편이성이 월등합니다. 좀비 아포칼립스물에서도 그 효용은 자주 묘사되었습니다. 어떻든 직접적인 타격감이 탁월한 쪽이 우리의 기분도 한결 좋아질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은 분명합니다.


고전적인 추리소설들에서는 얼음이 주요한 소재로 자주 활용되기도 합니다. 얼린 파인애플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6000원 정도면 냉동 통파인애플이 구매가능합니다. 장난 같지만 진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정육코너에서 2kg 정도의 소고기 냉동원육을 구매하더라도 충분히 그 위력이 짐작가능합니다. 지방이 없는 우둔살이나 홍두깨 부위가 좋으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집에 있는 골프채가 생각난다면, 그것은 참된 영감입니다. 모차르트나 쇼팽 같은 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영감을 통해 가장 위대한 일들을 해냈습니다. 일반적인 초심자에게 있어 골프채는 사용도 무척 편리하고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농기구들은 어떨까요? 시각적 압박은 탁월하지만, 낫이 생각보다 쓰기 어렵습니다. 호미 정도면 손에 잘 붙습니다. 외발괭이나 쇠스랑도 어느 정도 무게를 감당할 근력이 된다면 사실 거의 창입니다.


원초적인 감각을 여실히 맛보고 싶다면, 역시 벽돌이나 돌멩이만한 게 없을지 모릅니다. 소화기로 비슷한 상황을 묘사하던 영화도 있었습니다. 위스키병 모서리도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줄 것입니다. 소주병은 심약한 애들이 위협할 때나 쓰는 거지, 비싼 술이 실질적인 여분의 기능도 훌륭합니다.


그렇게 마트를 돌고 있다 보면, 당신은 조금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소 마트는 당신의 편입니다. 당신을 도와줄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당신에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파괴하고자 한 그 악마를 죽이는 일이.


그리고 저는 당신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그 말을 여기에서 들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죽여도 됩니다.


당신의 삶을 짓밟고, 당신을 지옥에 빠트렸으며, 당신의 영혼을 저주하고, 당신을 그토록 지독한 고통 속에 몰아넣은 그 악마를 당신은 죽여도 됩니다.


당신을 실질적으로 죽이고자 한 악마를 당연히 당신도 죽여도 됩니다.


그러나 하려면, 아주 현명하게 해야 합니다. 악마의 교활함 이상으로 당신은 현명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저 감정에 빠져 일을 만든다면, 이 사회는 역으로 당신을 악마라고 처벌할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오히려 악마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판데모니움이 되어 있다는 것은 더는 비밀이 아닙니다. 당신도 알고 우리도 압니다.


이것은 사회가 원래 악한 것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사회는 일종의 게임규칙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악마들이 당신보다 그 게임규칙에 더 능숙하기에 생겨난 일입니다. 소위, 법꾸라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법이라는 게임규칙을 잘 파악함으로써 그 헛점도 함께 파악해서, 그러한 틈새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보신과 영달을 챙기는 이들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악마들의 모습이 대개 이와 같습니다. 악마는 아무 때나 악마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게임규칙이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만, 즉 자기가 승리할 조건을 먼저 만든 뒤에야, 안심하고 악마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대체로 이 사회 속에서 당신이 악마를 만났을 때, 그 악마에게서 승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은 어떻게든 악마를 이기겠다고 인생을 다 걸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악마와의 실랑이만을 위해 평생을 버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발전과 성숙을 위한 이 삶이라는 기회가 그렇게 탕진되는 것이며, 이것이 또한 악마가 바라던 바입니다. 당신의 인생의 전격적인 파멸, 악마가 의도한대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마를 지켜주는 규칙이 작동하고 있는 속에서는, 당신이 악마를 죽이려 하는 그 일을 실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우리는 분명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악마가 의도한 계략에 빠지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언제는 죽여도 된다고 했다가, 이제는 죽이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랬다가, 오히려 이 글이 당신에게는 악마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게 일관됩니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심리학적 악은 우리의 마음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마침 공교롭게도,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사회규칙이 작동하지 않는 곳입니다. 악마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결코 보호받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마음에서 죽이면 됩니다. 마음으로 죽이면 됩니다.


마음으로 죽인다는 것은, 어디 골방에 앉아 악마들을 통쾌하게 혼내주는 자신의 모습을 학원폭력물 웹툰처럼 공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물을 마시고 싶을 때, 그것은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 대한 공상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물을 마시고 있는 이는 현실에서도 물을 향해 움직이게 됩니다. 오아시스를 찾으러 떠나거나, 우물을 파거나, 편의점에서 에비앙 생수를 구매합니다.


우리가 마트에 가게 된 연유도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 우리에게 그러한 힘이 있다는 것, 우리가 그러한 현실을 누려도 된다는 것, 그 사실을 실감하고 확인하는 것이, 마음으로 한다는 것의 그 모든 의미입니다.


우리가 악마를 상대하기 어려웠던 것은 거기에 불공정성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분명 우리를 죽이려 하는데, 실질적인 그 의도를 집행하고 있는데, 우리는 악마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혼자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경험한 두려움의 고통은 두 배가 되었습니다. 악마의 악의에다가, 우리 자신의 무력감이 더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불공정성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도 악마를 죽일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가진 존재라는 그 사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마트의 모험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악마를 죽일 수 있는 그 현실을, 사실적인 우리의 현실로서 점검하고 실감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어느 순간 우리를 웃음짓게 한다면, 우리의 기분이 유쾌해진다면, 우리는 마음으로 악마를 죽이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가능한 일은, 실제의 외부세계에서도 가능합니다.


만약,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 내일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면, 또 좀비들이 생겨나 국가 및 사회라는 것이 마비된다면, 또 아니면 영화 <조커>에서처럼 이 모든 불공정성에 대한 거대한 반역이 시작된다면, 그래서 더는 악마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줄 규칙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 자리에는 이제 우리가 준비해온 마음의 힘만이 남습니다.


망설임없이, 때려 죽이고, 도려내 죽이고, 찢어 죽이고, 박살내 죽이고, 짓밟아 죽일 수 있습니다.


비열하게 도망만 다니고, 안전한 곳에서 우리의 고통을 조롱하던 악마들의 시간이 끝나는, 소위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심판의 날은 우리 생전에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아마 인류가 영속하는 어떤 미래에도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종말의 날만을 기다리고 산다면, 그 또한 약한 마음의 징후입니다. 악의 씨앗이 뿌려질 헛점을 우리가 스스로 키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마음뿐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악마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실감하고, 그와 더불어 그 힘을 우리 자신의 인생이 허무하게 낭비되지 않도록 집행하지 않을 수 있는, 그와 동급의 힘이 있음을 동시에 실감하는 일.


그렇게 우리 자신이 악마에 의해 아무 것도 못하는 두 배로 무력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 대해 악마를 죽이거나 살릴 수도 있는 두 배로 힘이 있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은 진실로 우리가 그러한 강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그 목적으로만 집필되고 있는 글입니다.


그리고 실은 그 목적이란 이미 당신이 살아가고 있던 바일 것입니다.


이 무수한 악마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당신이 지금 살아가고 있던 그 원리, 그 힘.


당신은 얼마든지 악마를 죽일 수 있고, 또 죽여도 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악마와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던 것입니다.


악마를 죽이지 않고 살리면서, 그렇게 악마와 살아가는 그 길을 가고 있던 당신은 진정 강한 마음의 존재. 당신의 이름이 인간입니다. 이 글은 당신의 참된 이름을 밝히기 위해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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