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살아가는 법 #1

"실재하는 심리학적 악"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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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살아오며 분명 몇 차례인가 악마의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얼굴은 당신이 좋아하거나 신뢰하고 있던 인간의 얼굴 위에 떠올라있었습니다.


당신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러우며,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그 불쌍하고 안쓰러워 보이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러한 표정으로 당신을 절벽 끝에서 밀고, 당신의 동아줄을 잘라버리며, 당신을 파멸의 늪에 빠뜨렸습니다.


그 순간 당신은 분명히 보았던 것입니다.


악마의 얼굴을, 그 실재를.


뒤돌아선 그 얼굴에 떠올라있던 미소까지 당신이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읽을 필요도 없겠지만, 저 허공으로 낙하 중이던 당신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닥으로 하염없이 추락하던 당신을 지배하던 것은 이 생각뿐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어떤 실수를 했기에 이렇게 된 것일까?'


그래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당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악마가 그 자신의 일을 다한 것뿐입니다. 인간을 파멸시키려는 그 영원한 임무를.


당신의 실수가 있다면, 이것을 실수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라는 것을 꿈꾸었다는 것뿐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경험하던 존재들에게서 인간을 보고 싶어했고, 그 인간과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분명 당신에게 스쳐가던 어떤 느낌을 모른 척하고 넘겼을지 모릅니다. 미묘한 위화감. 모종의 분열적 감각. 일치하지 않는 어떤 부조리의 예감. 당신이 인간으로 보고 있던 그것에게 종종 당신이 느끼곤 하던 그 느낌이 실은 맞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악이었습니다.


우리는 형이상학적 악에 대한 논증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념적인 악에 대해 정의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또는 사회의 임의적인 기준이 만들어낸 정치윤리적 가치에 따른 선악을 판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오직, 그러나 분명하게, 심리학적 악의 실재만을 말하려고 합니다.


니체가 말했던 그 방식으로, 우리는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악은 심리학적인 것이라고. 그것은 약한 마음이 낳는 질병과도 같다고.


실제적인 차원에서, 악은 반드시 불일치로 드러납니다. 내로남불, 유체이탈 화법, 언변만 뱅글뱅글 돌리는 무책임성, 말과 행동의 모순, 이러한 것들이 다 악의 징후입니다.


약한 마음이 도망가기 위해서 계속 그러한 방법론을 실행해갑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자기 대신에 다른 이가 약해지기를 의도합니다. 그래야 자기는 자기의 약함을 소외한 채 계속 강한 척하는 영구갑질을 성사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한 것은 그 자체로 악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약함을 기만하려는 태도가 반드시 악을 낳는다고 우리는 말할 것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보상하기 위해 대신 타인을 약화시키려는 이 의도는, 온전하게 살아있는 것의 생명력을 부당하게 억압하려는 분명한 악의이기 때문입니다.


억압, 우리가 심리학적으로 말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악의 이름입니다.


자신을 억압하며 사는 이들이 타인도 억압하며 삽니다. 이것이 심리학적 악마의 실제입니다.


그런데 대개 자신을 억압하며 사는 이들은, 자신이 거룩한 희생과 헌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어휘들로 자신에 대한 억압을 미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심리학적 악마들은 정말로 자신이 대단히 선하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어쩌다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생기면, 그것은 정말로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며, 자신은 진심으로 선한 의도로만 행위했다고 온갖 합리화와 변명의 언사를 늘어놓는 것이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억압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필연적으로 행사하게 되는 의도는 언제나 악의일 뿐입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이는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것도 그 억압의 의지뿐입니다.


표면적으로 선한 표정을 짓고, 부드러운 배려의 말을 전한다고, 그것이 악의가 아닌 다른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을 속이고 농락하려는 의도로 살아가는 이 세상의 그 무수한 사기꾼들은 다 자신이 가장 자비롭고 인자한 성자의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곤경에 대해 누구보다도 염려하는 품새를 취하며 그 아리따운 눈망울에 눈물을 고여냅니다.


그렇게 해야, 자기 자신에게도 최면을 걸 수 있어서입니다. 타인을 기만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기만해야 합니다. 이것은 심리학적 악마들의 제1의 원칙입니다.


자신의 약한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약한 마음으로부터 도망가려는 이들이, 이러한 자기최면을 일삼습니다. 그렇게 악을 집행할 채비를 마칩니다. 악마가 언제나 천사의 모습으로 위장해서 나타나게 되는 그 이유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먼저 속이고 있는 이에게 우리가 속지 않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 경우,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느낌들에 한층 더 섬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느낌의 동물입니다. 삼라만상을 더욱 잘 느끼도록 이 몸이 진화했으며, 자신이 경험하는 느낌을 더욱 잘 자각할 수 있도록 뇌도 발달했습니다.


느낌은 반드시 어떤 약한 마음이 자행하는 불일치성을 포착하고야 맙니다. 그것이 미필적 고의와 같은 형식으로 아주 미묘한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느낌은 그것보다 더 섬세하기에 그 불일치성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특히 악에 취약하게 된 것은, 자신의 느낌보다 정보를 신뢰하고자 하는 경향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현대는 악마가 활동하기에 더욱 좋은 시대입니다. 정보를 임의적으로 통제하고 조작함으로써, 악마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효율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심리학적 악마들의 특징을 보면, 자기들만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악마들끼리 모여 작당모의를 하고, 거짓의 시나리오를 설계하며, 서로 입을 맞추어 가짜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날조해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자신들의 똑똑함을 자화자찬하며 기뻐하는 것이 악마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태도입니다.


사기꾼들은 사기로 얻은 자원 자체보다도, 자신의 사기가 성공한 그 경험을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사기를 그만두지 못합니다. 도파민의 보상작용이 제공하는 쾌락의 피드백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억압의 기제로 살아가는 이가 더 많은 도파민의 보상을 요구하게 되는 일은 필연적입니다. 억압주의는 곧 쾌락주의이며, 이것들이 심리학적 악마의 행동원리를 구성하는 양축입니다. 남을 괴롭히고 쾌락을 얻어낸다는, 악마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와도 일치합니다.


제가 여기에서 어떤 얘기들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이처럼, 심리학적 악마는 실재합니다. 그것은 사실적인 차원에서 드러나 있는 심리학적 증세들입니다.


잘 알려진 보들레르의 말을 다시 기억해보겠습니다.


"악마 최대의 계략은, 사람들에게 악마가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믿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분명하게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당신이 보았던 그 악마의 얼굴은, 정말로 악마의 얼굴이 맞습니다. 심리학적 악마는 실재합니다.


그 실재성을 인정해야, 우리는 비로소 악마를 상대할 수 있게 됩니다. 악마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곧 악마와 살아가는 법에 관해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정말로 실천적이며 구체적인 심리학입니다. 그것은 악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 법, 우리가 악을 극복하는 법, 악으로부터 승리한 우리 자신으로서 사는 법에 대해 다룹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심리학적 치유와 성숙의 길을 묘사합니다.


악은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치유되어야 할 것이라는, 심리상담의 오랜 격언은 우리의 작업을 핵심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악마도 가엾은 존재였던 거야. 이리온. 우쭈쭈. 우리 애기. ㅜㅜ"와 같은 방식의, 삼류 중2병 이세계물에 나올 법한 악의 포용 내지 악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심리학적 악이 흡사 전염병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는 일은 유익합니다. 전염병이 치유되어야 하는 대상은 병에 전염되어 고통받게 된 우리 자신입니다.


심리학적 악의 가장 악질적인 점은 흡사 좀비현상처럼, 또는 뱀파이어의 생태처럼, 악의에 당한 희생자를 똑같은 악마로 만들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을 위한 치유는 시급합니다. 악에 대한 항체를 형성해야 하며, 이제는 악에 휘말리지 않을 심리학적 체력, 곧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치유와 성숙, 우리는 악을 통해서도 반드시 인간이 인간인 그 위대한 이유를 이루어냅니다. 그것만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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