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나의 힘"
우리가 하는 아주 심대한 착각이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착각인데, 그것을 진실로 믿고 있기까지 합니다.
화는 악마적인 것이라는 착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화야말로 우리가 악마와 대적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참된 힘입니다.
악마들은 그동안 여러 매체들을 통해 사람들을 가르쳐왔습니다. 화는 악마적인 것이니, 늘 화를 참을 줄 알아야 하고, 화를 냈던 자신을 반성해야 하며, 화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이가 참된 인격자 선비라면서, 우리에게 거짓의 교육을 일삼아왔습니다.
우리가 화의 힘을 잃어야, 악마들이 우리를 편하게 조종하고 농락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분노'에 대해 어떤 심리학자들은 얘기하곤 합니다. 그것은 흡사 신이 인간을 지키려는 신성한 힘을 발하듯이, 우리의 화가 분명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악마는 다 도덕주의자입니다. 윤리와 예절이 그들의 무기입니다. 교육과 훈육이 그들이 쓰는 초식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우리를 화도 못내는 심리적 병신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 특히 대한민국을 담당구역으로 배정받은 악마들은 온갖 유교적 이미지들을 굴절시켜 남용합니다. "허허, 그래 네 말도 맞구나."라며 인자하게 웃는 황희의 모습이라든가, 화를 꾹 참고 민족과 국가라는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어떤 고결한 선비상이라든가, 또는 합리적인 이성으로 화 같은 천박한 감정을 다스리며 모두를 위해 가장 현명한 선택을 이루는 정의로운 위정자의 모습 등을 묘사하며, 사람들이 이를 예찬할 수 있도록 미디어의 수사학을 동원합니다.
이 악마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심리적 병신으로 만들려는 그 핵심적인 이유는, 자신들이 바로 그 심리적 병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심리적 병신의 몫을 전가하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화를 너무나 두려워하게 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화에 쫄아 자신들을 아무 것도 못하는 무력한 심리적 병신으로 경험하게 되었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도덕과 윤리, 유교적 원리원칙, 예절의 훈육 등을 명분삼아 자신에게 늘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며 매우 신경질적으로 혼내곤 하던 엄마에게 양육된 아동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거룩한 대의적 명분을 걸고 있었든 간에, 거기에서 일어난 심리학적 실제는 단지 엄마가 아이에게 자신의 화를 쏟아부은 것뿐입니다. 즉, 엄마 자신에게 소화되지 않는 화를 아이에게 대신 화풀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동은 자신의 화의 표적이 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을 죄인처럼 여기게 됩니다. 자신이 똑바로 살지 않아서 혼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실은 엄마가 화풀이로 쏟아부은 그 화가 무서웠던 것이면서, 자기가 올바름의 도덕을 무서워하는 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는 무섭지 않으려고, 자기가 올바른 도덕적 인물임을 자처하고 더욱 그렇게 행위하려 하며, 그만큼 자신의 자연스러운 마음을 도덕이라는 기제로 억누르게 됩니다.
바로 이 방식으로, 아동은 그의 엄마와 정확하게 동일한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엄마가 그에게 했던 것처럼, 실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화이면서, 마치 그것은 정당한 도덕과 정의의 교육이자 훈육인 양 위장해서, 남들에게 동일한 일을 자행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수동공격의 형태로, 상대를 망치고 파괴하기 위해 화풀이를 하고 있으면서, 표면적으로는 마치 상대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아주 기만적인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을 담당구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심리학적 악마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자기 엄마에게 화풀이당한 아동이 자기 엄마의 모습과 똑같이, 남들에게도 비겁한 방식으로 화풀이를 일삼는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화의 억압이 이 일을 만듭니다. 화를 억압한 그 결과는, 대의명분을 억지로 만들어내어 다른 이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거나, 그런 부당한 화풀이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그 앞에서 화도 못내는 심리적 무력감을 만성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형태로 드러납니다. 자신의 화를 억압하는 엄마가 아이에게 심리학적 악마가 되고, 그 희생자였던 아동 자신이 이제 타인들에게 심리학적 악마로 활동하게 되는 셈입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화가 악마적인 것이 아니라, 화의 억압이 악마적인 것입니다.
비단 화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마음작용에 대한 그 모든 억압의 일이 바로 심리학적 악의 실제입니다.
화풀이를 반복하는 엄마에 의해 자신의 화를 억압당한 이는, 엄마에게 성기가 거세당한 아이의 상태와도 같습니다. 인간의 성숙이라는 것은 마음의 힘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화초에 물을 주듯이, 마음에 관심을 부어 그 마음이 자라날 때 우리는 그것을 성숙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계속 부정당한 이는 성숙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는 성숙되어가는 일이 불가능하게도 됩니다.
꽃이 꽃으로 피지 못하고, 새가 새로서 날지 못할 때, 그것은 생명의 종말입니다. 인생으로 치자면, 인생의 막장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화가 일어나는 진짜 이유입니다.
생명이 억압되어 그 생명성을 가장 잃게 될 상황에 처했을 때, 그렇게 우리의 인생이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강제적으로 종막을 고하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의 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화입니다.
이 소중한 생명을 지키겠다고, 이 귀한 우리 자신을 살리겠다고, 이 우주에서 가장 신성한 임무를 부여받은 그 마음, 그것이 바로 화입니다.
이 모습은 흡사 인간을 괴롭히는 악마를 물리치고 오라는 명을 받은 저 미카엘 천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불타는 검으로 무장해 미카엘 천사는 악마에게 돌격합니다. 인간의 고통이 끝나지는 그 현실을 위해, 인간을 괴롭히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인간을 지켜내고자 인간 옆에 늠름하게 서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화의 본래적인 표현입니다.
미카엘 천사가 지금 여기에,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화는 그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또 악마들에게 동시에 알립니다.
곧, 이곳에 고통받고 있는 인간이 있다고, 더는 고통받지 말아야 한다며, 화는 그 신성한 의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에 대해 착각하게 된 이유는, 화가 억압되어 생겨난 역기능적 결과를 오히려 화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비유적으로 말하면, 미카엘 천사를 자신들과 같은 모습으로 타락시키고자 한 악마들의 의도입니다. 잘 알려진 신화처럼 악마는 원래 천사였습니다. 그래서 악마들은 어떻게 하면 천사를 타락시킬 수 있을지 그 방법론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천사가 지닌 본래의 임무가 아니라, 천사 자신의 힘에 도취되게 만드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그렇게 미카엘 천사의 타락를 유도함으로써 야기된 대표적인 두 모습이 바로 앞서 말한 화풀이와 무력증의 모습들입니다. 화가 고통받는 자신을 향해 쓰여야 할 본래의 목적을 잊고, 오히려 그 힘을 통해 타인을 괴롭히고, 또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방향성으로 왜곡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비유적 이해로서, <마음의 소화불량>의 두 양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소화하지 못할 때, 더 빈번하게는 일부러 소화하려고 하지 않을 때, 그것은 다른 이를 향해 토해지거나, 자신의 내부에서 얹히게 됩니다. 화의 경우라면, 이것이 다른 대상을 향한 화풀이나, 자기 자신을 향한 무력한 우울감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표적으로 이 화라고 하는 마음작용에 대해 소화불량의 상태를 자주 경험하곤 합니다. 주요한 이유는 그것이 '나쁜 먹거리'라고 우리에게 줄기차게 교육되고 훈육되었기 때문입니다. 강제된 편식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라는 것을 우리 자신이 직접 맛보고 소화하기보다는, 자동으로 뱉어내거나, 씹지도 않고 위장 속에 그냥 넘겨 망각하려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지금 이순간 반드시 필요해서 일어나는 화라는 작용을 이렇게 대하다보니, 우리의 필요는 늘 채워지지 못하고 우리는 불만족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불만족의 상태가 계속될 때 그것은 학습된 무기력의 상태를 낳습니다. 그러면 이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또 외부의 대상에게 그 상태를 전가하거나, 자기 안에 묵혀두는 방식을 반복하게 되며, 이는 끊이지 않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형성합니다.
악마가 그 자신의 운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자신이 고통받지 않으려고 남을 고통받게 만들고자 하는 그 악마적 의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화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화는 오직 우리 자신의 고통에 대해 말할 뿐이며, 그 고통을 끝내려는 유일한 목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화가 그 온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화를 신뢰하며, 또 경우에 따라 연습해갈 필요가 있습니다.
밖으로 전가하는 화풀이도 아니고, 자기 안으로 눌러담는 우울의 무기력증도 아닙니다.
고통의 호소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잘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화의 힘을 쓰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먼저 친해져야 할 마음의 말들 중의 하나는 이것입니다.
"인생 좆같네, 씨발."
우리는 여기에 자동적으로 그 뒷구절들을 첨부하곤 했습니다.
"너 때문에." 또는 "내가 다 그렇지."가 바로 그것들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연습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너무 힘들다. 내가 지금 너무 아프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사실이었음을 기억하고 또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말로 지금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아픈 자였음을. 가장 가엾고 불쌍한 자였음을. 누구도 그 힘겨움과 고통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있지 못하며, 자신은 지금 그 모든 아픔 속에서 홀로 방치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그 순간 우리의 내면에서 무엇인가 왈칵 하고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한다면, 미카엘 천사입니다. 우리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아군입니다. 이 우주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지금 쏜살같이 내달려온 저 구원의 세력, 신성한 화의 마음이 입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화가 이제 우리 자신의 힘입니다.
우리가 홀로 고통 속에 방치되어 있을 때, 아무도 우리의 고통에 대해 관심하지 않을 때, 이 화만이 유일하게 우리의 곁에 남아 우리에게 힘을 전해주고 있는 가장 참된 우리편입니다. 우리를 고립시키고 무력화시킨 뒤 낄낄대며 웃고 있던 악마들 앞에서,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의 몸을 툭툭 털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 힘입니다.
그 모습은 분명 저 늠름한 미카엘 천사를 닮아 있습니다. 온전하게 작용한 화의 힘이 그 임무를 다해 우리 자신을 한층 더 성숙시킨 것입니다. 이제 꽃이 꽃으로 피고, 새가 새로서 날며, 당신도 인간입니다. 심리적 병신이 아니라, 강한 마음의 힘을 가진 온전한 인간입니다. 화는 분명 인간인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자리를 회복시켜주는, 우리 자신의 힘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