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7

"심리상담자도 마음에 관심이 없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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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대한 모든 것은 마음에 관한 관심이다.


정말로 관심만 가지면 마음은 모든 것이 되어지게 한다. 우리의 삶을 소망대로 펼쳐내고, 아픔 속에서도 내일의 태양을 만나게 해주며, 우리가 살아있다는 그 의미와 충만감을 가득 전해준다.


그러니 매일같이 화만 나고, 우울하며, 자신의 삶이 꽉 막혀 있는 듯한 기분만 든다면, 거기에서는 지금 마음에 관한 관심이 실종되어 있는 중일 것이다.


소위 마음에 대한 고도의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 이를테면 영성가라든가 여러 테라피스트들, 대표적으로는 심리상담사 같은 이들 또한 정작 마음에 관한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아주 묘한 일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마음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이라는 것을 다룰 수 있는 어떤 기능적 입지가 공고해짐에 따라, 또 그만큼 마음의 전문가라는 그 권위가 쌓여감에 따라, 역설적으로 그들은 마음에 관한 관심을 잃어갔던 것이다.


마음 대신에 그들이 관심갖는 것은 자신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 생각에 의해 구성된 자신들의 행동양식이다.


마음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모종의 생각에 따라 자신만 올바른 태도로 잘 처신하면, 그들은 자신이 마음에 대해 대단히 바람직한 어떤 것을 하고 있는 줄 안다.


이것은 마치 이러한 상황과 같다.


자신만 잘 행위하면, 모든 연애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상황.


세상 모든 일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 상황.


본질적으로는, 바로 자신의 힘으로 신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 그 상황이다.


그러나 신에게는 마음이 없다.


마음은 인간에게만 있다.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 앞에 속상해하고 아파하며 그 거대한 장벽을 넘어서고자 부르게 된 노래가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처럼 굴고 있는 이들은 가장 빨리 마음을 잃는다. 자신의 마음에 대한 망각이 일어난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잃으면, 다른 이의 마음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뇌에 저장된 인간의 여러 패턴과 반응양식에 대한 생각들을 마음이라고 간주할 뿐이다. 그리고 그 패턴들에 적절한 태도로 대응하는 일이 경청이니 공감이니 하는 행위들로 표현된다. AI가 하는 일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실제적인 마음과는 아무 상관없이, 우수하고 유능하며 윤리적인 상담자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은 5년 이상, 10년 이상, 교육분석과 같은 훈련 과정을 경험하며 이미 자신의 마음에 관한 충분한 이해를 이루었다고 하는 상담자가 있다. 또 지금도 계속 자기 마음속의 핵심감정 같은 것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며, 과거의 외상으로 인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가고 있다고도 말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생각으로 대체된 대표적인 예다.


5년, 10년의 '굴착공사'가 필요한 그런 마음은 없다.


이 발상은 실은 <마음의 계급화>를 전제한다. 서울대 들어가려면 5년 공부해야 하고, 사법고시 합격하려면 10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과 같다.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얼마나 <마음계급>이 높은 권위자인지에 대한 주장이다.


자신은 충치치료에만 20년을 썼다고, 이제 무슨 국회의원이라도 된 양 수줍으면서도 자랑스럽게 입가의 미소를 띄우고 있는 이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것이 지금 말하고 있는 그 핵심이다.


아주 오랜 시간과 긴 노력을 통해서야만 마음에 대한 어떤 이해와 앎의 권위 같은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또 그 일이 마음이라는 소재를 통한 모종의 상류계급으로의 도약을 이루어주는 것도 아니다.


실상 20년 묵은 충치라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이미 무뎌졌거나 닳아 없어졌다.


현재 아픈 것은 그것이 오랜 아픔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그 아픔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은 언제나 실시간이며, 현재진행형이다.


마음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이 당면한 현재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과거의 양육자 때문에 생겼든, 학창시절의 외상 때문에 생겼든, 심지어 300년 전의 전생에서부터 갖고 온 구조이든, 그런 것들은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아픔은, 지금 관심을 가지며, 지금 돌보고, 지금 배려하면 치유되기 때문이다.


아니 역으로, 그 어떤 과거의 상처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다. 마음은 골격처럼 고정된 구조가 아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겼다고 추측되는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굴착공사를 통해 파내려가 바로 그 부분을 수술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쉬운 예로 과거에 자신의 아버지와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 회사의 부장과도 동일한 문제를 경험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실시간적인 부장과의 관계양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에 직접 응답하지 않으려 하는 이들이, 과거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붙잡고 10년, 20년, 괜한 굴착공사를 한다. 10분, 20분, 부장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어떤 오해와 착각의 내용들을 해소하고 그 관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가능성을 혼자 고행자처럼 행세함으로써 봉쇄하는 것이다.


고통을 통한 성장, 또는 고통받는 인간의 신분상승에 대한 꿈은 우리가 오래 품어온 신화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번번히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만 만들어온 그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진짜 마음이다.


아버지로부터의 상처, 어머니로부터의 소외감,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로 묘사되던 소재가 마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더 높은 계급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한계상황 속에서 토해지는 그 탄식이 곧 현재 그의 마음인 것이다.


실은 은밀한 권력을 얻고 싶어서, 심리상담자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정말로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남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나아가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도 상당하다.


헨리 나우웬 신부의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개념은 정확하다. 자신의 아픔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이들이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도 진실한 이해력으로 접근가능해진다.


자신의 아픔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안다는 것.


그것은 곧 자신을 통해 경험된 인간의 아픔과, 인간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 인간은 10년 전에 있었는가? 또는 20년 전에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언제나 지금 이순간 우리의 앞에 있다.


우리가 눈앞에서 경험하는 지금의 이 장면이 우리에게, 인간이 무엇인지, 또 그 인간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그대로 다 알리고 있다.


마음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아픔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가장 우선해서 자신의 아픔에 관한 섬세하고 사려깊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에게 상냥해진 이가 인간에게도 상냥해지는 법이다. 관심의 시선 속에 있게 된 마음은 반드시 이 방향성으로 움직이게 되며, 결국 인간을 위해 더욱 좋은 현실이 되어지도록 운동한다.


심리상담 내지 심리치료라는 활동은 그저 이 <마음의 운동>에 임의적으로 붙인 이름일 뿐이다. 심리상담자가 심리상담이라는 특정한 활동으로 특정한 대상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 이로부터 마음이 온전히 피어나서 그 온전성으로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간 모두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믿어야 할 신화가 아니라, 우리가 관심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위대한 사실에 실은 아주 관심이 많다. 그렇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를 돌아오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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