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미래는 닫혀 있지 않아"
"너의 미래는 닫혀 있지 않아."
우리가 너무나 듣고 싶어하는 말이며, 정말로 그러한지 너무나 알고 싶어하는 말이다.
역으로, 우리가 화가 나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닫혀 있는 것처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닫혀서 벽이 되어버린 그 절망을 억지로 뚫어내기 위해 뜨거운 열에너지를 가득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의 화의 정체다.
닫혀 있다는 것은 자유의 상실을 뜻한다.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가망이 없어진 것이다.
곧, 앞으로 살아봤자 더는 좋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인생은 지금 이대로 보잘 것 없는 불량품으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다.
이것이 절망이다.
우리가 미래를 꿈꾸고 소망할 수 없다는 것, 미래가 우리에게 확고하게 닫혀 있다는 것, 이것이 정말로 까마득한 벽과 같은 절망이다.
그리고 우리를 가로막는 이 절망의 벽으로 우리가 쉬이 경험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주변의 특정한 대상이다.
곧, 우리가 그와 맺는 관계 속에서 확보되는 이득을 우리에게 평생 보장해줄 것처럼 여기고 있던 대상이다.
이처럼 그 대상과의 평생은 이미 우리의 계획 속에 예정되어 있는데, 그렇게 정말로 평생을 함께하기에는 그 대상의 면면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아 우리는 화가 나는 것이다.
평생이라는 거대한 말에 부합하도록 그 대상이 우리의 기준에 완벽하게 상응해야만 하는데, 실제의 대상의 모습은 우리가 기대하는 그 완벽한 이미지에 맞지 않기에 우리는 가득한 짜증으로 그 대상을 어떻게든 변화시키려고 시도하게 되는 것이며, 대상을 개조하려는 그 노력이 어떻게든 성공적이지 못하기에 결국 우리는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것이 배우자가 되었든, 애인이 되었든, 선생이 되었든 간에, 우리 주변의 특정한 대상은 마치 우리의 행복한 미래를 막는 존재인 것처럼 종국에는 경험된다.
그리고 이는 곧 우리가 그 대상을 우리의 미래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특정한 대상이 마치 우리의 적처럼 미래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던 것이 아니다. 우리가 특정한 대상을 우리의 미래 앞에 놓아두고 그 대상으로 하여금 우리의 미래를 대신하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즉, 우리의 미래가 닫힌 것처럼 경험하게 만든 것은, 그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대상에 대한 화는 사라진다.
그리고 알게 된다.
우리에게 미래는 결코 닫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대상이 없어도, 또는 대상이 있어도, 미래는 자유롭다.
이처럼 우리의 미래가 특정한 대상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대상을 미래로 보기에 생겨난 무게가 빠지고, 그 대상을 변화시키려는 심각한 의지 또한 사라지며, 지금 그 대상과의 현재를 온전하게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이 현재가 회복될 때, 미래는 그 현재를 바탕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길이 그려진다.
대상을 미래로 두고 있었다는 것은, 곧 대상을 길로 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자신의 길이 그려지는 것이다.
이 자신의 길은, 자신이 경외심을 느끼는 현재에 이미 그 자취를 드러내고 있다.
경외심이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마음이다. 설레면서 조금 두렵기도 한 떨림이다. 가슴뛰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이 경외심으로 안내되는 삶을 말한다.
경외심의 핵심은 이 안내되는 의도다. 우리가 우리를 넘어선 아주 좋고 거대한 것을 눈치챘을 때, 그리고 그 좋고 거대한 것이 우리를 친히 청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경험되는 것이 바로 경외심이다.
그래서 경외심이 안내하는 현실에 우리가 뛰어들 때, 우리는 결코 혼자 가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경외심을 야기한 그 좋고 거대한 것과 함께 가게 되는 것이다.
경외심이라는 마음이 그려가는 길은, 우리가 가도록 안내되어 있으면서, 우리 또한 가고 싶어하는, 그렇게 모든 면에서 축복받아 있는 것만 같은 우리 자신의 마땅한 길이다.
우리의 미래를 향해 있는, 정말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그 길이다.
곧, 경외심이란 바로 미래를 향한 마음이다.
때문에 현재 우리가 어떠한 것에 경외심을 느끼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즉 어떠한 것에 설레고 있는가를 확인해보면, 우리는 방향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게 된다. 그 방향에 바로 우리의 미래가 있다.
우리의 현재에 이미 드러나 있는 경외심의 실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여러 활동들이 있다. 실존상담이나 선과 같은 활동은 대표적이다.
대표적으로, 닫힌 벽을 열린 문으로 만들어, 이 현재가 미래와 연결되도록 하는 활동이다.
생명의 흐름이 막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흐르게끔 하는 활동이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통찰과도 같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 열려 있을 때야, 미래를 향한 길 속에 있을 때야, 우리는 비로소 산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삶을 기쁨으로 살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절망은 죽음과도 같다. 닫힌 미래며, 막힌 삶의 끝이다.
그러나 이 절망이라고 하는 죽음의 예감 앞에서도, 우리가 감히 미래를 설레며 소망하는 일이 가능할 때, 그렇게 미래와의 연결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모든 길이 다 닫힌 것만 같은 그 절망을 넘어 가장 충만하게 살 수 있게 된다. 죽음 속에서도 또 살 수 있게 된다. 벽 너머에서 다시 살아오르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미래를 향한 마음이 우리의 말로 그려지게 해야 한다.
지금 어떠한 것에 우리가 설레고 있는지의 그 느낌을, 우리는 말이 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를 연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래가 닫혀 있지 않고, 그것이 기꺼이 이야기될 수 있을 때, 우리의 가슴은 다시 차오른다. 설렘으로 부풀어오른다. 활력이 솟고 자유로운 우리 자신을 실감하게 된다.
경외심으로 말미암아, 즉 미래를 향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인간이 회복된 것이다.
경외심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마음이다.
때문에 인간은 가장 원초적으로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존재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미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곧, 인간이 산다는 것은 이미 미래를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미래다.
우리에게 경외심이 회복되면 인간이 회복되며, 인간이 회복되면 미래가 회복된다.
이것이 길이다.
경외심이라는 마음이 안내하는 우리 자신의 길이다.
마음은 길이다.
우리가 이 마음의 길 위를 걷고 있기에, 그렇게 우리가 인간이기에, 우리의 미래는 결코 닫혀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