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인"
더 팬 - 연예인
알고 있나요
그댄 너무 멀리 있어
내가 쉽게 다가갈 수 없다는 걸
가까워지고픈 내 작은 바램
그냥 마음속에 머물 뿐
철없는 한때의 감상일 뿐이라고
나를 보는 사람들은 얘기하죠
아무도 내 맘 모르죠
화려함 뒤의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걸
그대 있는 곳 어디라도
난 항상 함께하고 싶어요
마주친 미소 눈빛 날 위함인가요
하지만 난 알고 있어요
이 순간이 지나면
기억조차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나요
집 앞에 서 있던 나를
용기없어 무작정 기다린 나를
밤새워 쓴 편지 문틈 사이에 넣고
좋아하는 내 마음도 거기 두고 가요
그대 있는 곳 어디라도
난 항상 함께하고 싶어요
언젠가 우리 서로 잘 알게 된다면
그래요 매일 꿈꿔왔죠
그대도 나에게
사랑 느끼게 되는 오래된 꿈을
난 변할 거예요 지금 이 순간부터
그대가 바라는 그 느낌 그 모습 그대로
많은 시간이 흘러가도
난 항상 함께하고 싶어요
혹시 초라한 그대 뒷모습 보여도
영원할 거라 믿고 있죠
내 마음 아나요
아무래도 난 상관이 없어요
오직 그대를 위한 나이기에
더 팬의 이 명곡은 찬송의 원형이다.
연예인에 대해 그 팬들이 갖는 마음은 정확하게 종교심이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원래 자신을 통제하는 규칙을 따라 똑바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기비판의 수행론이 아니다. 종교는 단지 인간이 자기를 넘어선 것에 반해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을 일컫는 표현이다.
곧, 종교는 애초 연애활동이다. 종교심은 연애심이다.
개인에게 있어 종교심이 무르익는 과정은 결국 그 개인의 연애심이 성숙해지는 과정과 같다.
연애심의 초창기에 있을 때 우리는 특정한 대상을 동경하게 된다. 동경이라는 감정만큼 연애심의 대상은 대단히 큰 존재로 경험되는 까닭에, 우리는 그 대상을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데 수줍음을 갖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치심을 느끼기까지 한다. 자신과 같이 미천한 존재가 그렇게 훌륭한 대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키면, 자격도 없는 존재가 감히 그 대상을 좋아한다고 마치 잘못된 일을 하는 것처럼 혼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애심의 출발은 왠지 모르게 부족하고 못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데서 시작된다. 좋아하는 만큼, 자신은 작아지고 대상은 커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대상을 신처럼 느끼며 그에 전적으로 헌신하게 되는 현실을 출현시킨다. 우리가 어떠한 연예인을 좋아할 때의 그 현실, 곧 연예의 현실이다.
엄밀하게 이 연예의 현실은 아직 연애로는 성립되지 못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이것은 연애를 준비하며 연습하는 동안의 현실이다.
그래서 연예는 연애의 습작이다.
연애심이 좀 더 무르익게 되면, 이제 멀리에 있는 동경의 대상에서, 가까이에 있는 이해의 대상으로 그 방향이 전환된다. 즉,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해해줄 수 있는 대상을 찾게 되는 것이다. 또 그만큼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이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작동한다. 이처럼 상호적인 이해의 움직임이 연애라고 하는 활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우리에게 이러한 연애가 가능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부족하고 못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에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를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 보다 친절해진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자신과 똑같이 유한한 존재인 타인의 부족하고 못난 모습에도 또한 친절해질 수 있게 된다. 연애를 하는 이들 사이에 부드럽고 따듯한 공기가 감도는 그 이유다.
결국 연애심이 무르익는다는 것은, 유한자인 인간에게 상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애심은 정말로 종교심이다. 인간의 한계로 말미암은 슬픔과 아픔, 그리고 소망을 기꺼이 끌어 안아 아끼는 마음이다.
"네 눈물이 멈출 현실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바칠 수 있어."
연애를 하는 이가 곧잘 발화하게 되는 이 대사는 바로 이러한 마음을 함축한다.
이와 같이, 연예의 현실에서는 우리가 대상을 신처럼 느끼던 구도가, 연애의 현실에서는 우리가 대상에게 신처럼 되어주려고 하는 구도로 전환된다.
어떻게든 가능하다면 신이 되어서라도, 그 대상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것이다. 즉, 우리의 눈앞에 있는 저 착하고 슬픈 존재를 구하고 지키기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은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돈을 벌고, 자기계발을 하고, 능력을 키운다. 잠정적인 연애의 대상에게 더 많이 잘해주고 싶어서 그 모든 것을 한다.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라는 넥스트의 노래가사와 같다. 이처럼 유한한 인간에게 응답할 수 있는 가장 상냥한 신이 되고자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뜨거운 불꽃을 불태운다. 자신이 소중하게 아끼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눈물을 증발시키기 위함이다.
간절하고, 또 아름답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통해 사랑을 연습한다.
정확하게, 연애는 사랑의 습작이다.
연애심이 가장 무르익어 완성된 그 순간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모든 완성은 만남 속에 있다. 곧, 연애심의 완성은 연애심이라고 하는 마음 자체와의 만남 속에 있다.
만남은 마음이 말이 되어 고백되는 순간이다.
연애심은 이렇게 고백된다.
"그동안 제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은 대상과의 일별이다.
그리고 존재와의 만남이다.
우리가 그동안 신처럼 추구하던 대상도, 또한 구원하려던 대상도 이미 없다. 그러할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아주 기꺼이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 있어주었던 그 이름모를 존재만 남는다.
우리는 대상에게서 그 이름모를 존재의 향기를 맡으며 연예를 시작했고, 대상에게 그 이름모를 존재의 손길을 내밀고자 연애를 이어갔으며, 대상을 벗어난 곳에서 그 대상이 있던 자리에 실제로 있던 이름모를 존재의 미소를 눈치챔으로써 사랑을 완성한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은 분명하게 대상과의 일별로 완성된다. 이것은, 이 세상에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 원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구원자도 아니고, 피구원자도 아니다. 둘로 나뉘어 활동하던 이름모를 존재가 있었을 뿐이다. 그 둘의 형태로 어떻게든 늘 우리의 곁에 있음을 알리고 있던 존재가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늘 우리의 곁에 있는 그 이름모를 존재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언제나 연애를 시작한다. 연예에서 연애로, 연애에서 사랑으로, 연애심을 무르익어가게 한다.
연애심은 존재를 향한 마음이다.
그렇기에 연애심은 존재를 긍정하는 마음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 모든 것을 긍정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이 긍정되고자 하는 마음이다.
존재하면 안될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던 우리 자신도, 또한 상대의 존재를 보전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에도 늘 무력해져 가슴아팠던 우리 자신도, 그 자체로 긍정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를 향해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러한 우리의 가장 곁에도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에, 즉 우리가 그러한 모습으로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를 건넨다.
때문에 존재를 향한 감사의 고백은 그 자체로, 우리가 존재를 향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음에 대한 고백이 된다.
곧, 우리가 존재를 위해 해야 했던 것이 아니다. 존재가 우리를 위해 하고 있던 것이다. 존재가 우리를 존재하도록 스스로 주관하고 있던 것이다.
연예를 통해 우리는 대상을 통한 구원을 꿈꾸었다. 즉, 대상이 우리를 존재하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연애를 통해 우리는 대상을 위한 구원을 꿈꾸었다. 즉, 우리가 대상을 존재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럼으로써 대상을 존재하게 해줄 수 있는 존재의 힘으로 우리 자신 또한 존재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은 존재가 대상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린다.
존재는 스스로 존재한다. 그렇게 스스로 존재함으로써 스스로를 긍정한다.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존재에 대한 가장 강력한 긍정이다.
연애심은 바로 이처럼 우리가 더할 나위 없이 긍정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활동하는 마음이다.
그 사실을 알고 싶어서 연애심으로 사는 우리는 여러 대상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도 존재의 상냥함이 있다. 우리에게 하나의 대상이었던 그 존재는, 우리가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일을 조력하기 위해 그러한 대상의 모습을 유지하며 우리의 곁에 머물러준 것이다. 우리가 대상의 모습에서 경험하는 존재의 향기가 곧 우리 스스로의 향기임을 눈치챌 수 있도록 친절하게 마중물이 되어준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제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이 인사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것이자, 동시에 외부에서 하나의 대상이 되어준 존재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이 모든 것에 대한 감사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긍정이며, 또 긍정이다. 연애심은 정말로 종교심이다.
사랑은 존재의 충만감이다. 100%로 드러난 존재의 느낌이다. 그리고 존재는 언제나 스스로를 100%로 드러내고자 한다. 즉, 존재는 언제나 사랑으로 있고자 한다.
존재가 스스로를 사랑으로 드러내고자 알리는 방식, 그것이 바로 마음이다.
연애심은 그래서 핵심적인 마음이다.
때문에 연애심은 존재를 향한 마음이자, 존재로부터의 마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존재는 마음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까닭에, 이 존재로부터의 마음은 곧 존재로부터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연애심을 경험하는 이는 마치 자신이 어떠한 대상을 사랑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은 이 연애심은 그가 이미 존재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알리는 존재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틸리히는 이러한 구도를 아름답게 묘사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는, 이미 그가 얻고 싶어하는 그 사랑에 감싸여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부정될 수 없다.
존재는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사랑받고 있다. 부정될 수 없다.
연애심의 성숙은, 우리가 이처럼 온전하게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승인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사실을, 조금씩 용기를 내어, 또 대상을 통해 도움을 받아가며, 점차로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그 섬세한 여행에 대한 묘사다.
그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발견한다.
여행의 시작에서부터 우리가 들고 있던, 우리가 여행을 떠나게 된 바로 그 계기인, 존재로부터의 편지를 발견한다.
이렇게 쓰여 있다.
"그대 마음 아는, 오직 그대를 위한 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편지에 감동받아 여행을 시작한 사랑의 여행가들이다.
그렇게 모든 인간은 연애인이다.
마음이라는 연애편지를 매일매일 받고 있는 인기만점의 연애인이다.
존재가 아주 많이 사랑하는 우리 자신이다.
더 팬 - 연예인(girl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