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특집: 모든 심리학의 절대공식

"인생을 바꾸는 마법의 말"

by 깨닫는마음씨




우리의 오래된 날들에 끝없이 메아리를 울리던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전 그저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만 다 했어요. 맞아요. 그렇게 사랑했으니까요."


"나는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바보야, 너만 행복하면 된 거야."


"엄마는 정말로 너만 생각하며 아빠랑 이혼 안하고 버티며 살았어. 엄마는 그거 하나밖에 없어."


"아빠는 회사에서 아무리 더러운 꼴 당해도 이 악물고 참았다. 너네 위해서라면 다 견딜 수 있었어."


"조국을 위해서 제 한 몸 다 바쳤습니다. 후회없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정의만은 꼭 지키고 싶었습니다."


"우리 선배들은 별 거 없어. 그저 니들이 형들 모습 보며 한 번쯤 떠올려주면 돼. 민중을 위해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역사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 같은 작은 청춘들도 그렇게 우리 사회를 위해 뜨거운 가슴 지필 수 있었다는 거, 그거 하나만 기억해주면 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제 욕심은 전혀 없습니다. 신의 뜻대로 진보적 개혁이 이루어질 것은 신께서 예비하신 역사적 발전의 순리입니다."


"깨달음을 위해 목숨 걸었습니다. 전 그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속세의 모든 것은 다 부질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날이 찾아 왔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바뀌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이제는 거짓말을 그만 해야 합니다.


메아리치던 그 모든 목소리는 다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들리더라도 거짓말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거짓말이야말로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은밀하고 거대한 폭력을 야기해 온 것입니다.


그 자리에 폭력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두 반응으로 알려집니다. 하나는 화고, 다른 하나는 죄책감입니다. 우리가 화가 나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될 때, 거기에서 울리고 있는 메아리는 분명 타격의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 두 반응을 동시에 유발하는 다음과 같은 목소리가 있습니다.


"너네가 이렇게 SNS와 뉴스댓글에 선배들 욕하며 편히 살 수 있는 것도 다 너희를 위해 목숨걸고 민주화운동하며 피흘린 너네 선배들 덕분이야."


그런데 이 화와 죄책감을 야기하는 폭력적인 말을 발화하는 주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너네가 이렇게 화염병이나 던지고 살아도 좋은 회사 취직해서 팔자좋게 살 수 있는 것은 다 너희를 위해 목숨걸고 사막과 광산과 밀림에서 피흘린 너네 선배들 덕분이야."


자기도 이러한 말을 폭력으로 경험했으면서, 동일한 폭력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것은 동일한 종류의 폭력이며, 곧 동일한 종류의 거짓말입니다.


심리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니체는 분명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정직성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한 모든 것은 다 우리 자신을 위해 한 것이라는 사실에 정직하기를 권합니다.


가장 정직하게, 다 자신을 위해 한 것입니다. 특히 다음 세대를 위해, 미래의 세대를 위해 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말만 할 것입니다. 고작해야 자기 자아가 투사된 그 연장선상의 자기 자식에 대해서만큼은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대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 편협한 자아중심주의적인 것이며 가족중심주의적인 것입니다. 즉, 여기에는 아동이 생각할 법한 자기 가족에 대한 막연한 발전의 청사진과 세습의 그림 정도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류의 말을 하는 선배의식 내지 선구자의식의 주체들은 사실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래라고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 주체들에게는 선배들이라는 이름의 남이 따라주는 막걸리와 함께 혈액으로 주입된 또 다른 남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설계도가 있을 뿐이지, 자기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창조력이 없습니다.


곧, 이들은 지시받은대로, 학습받은대로, 특정한 기준과 가치와 법도가 시키는 것들을 성실하게 잘 수행하는 이들이지, 스스로 그 설계도부터 만들지는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유교주의와 같은 규약의 체계 내지 헤겔이나 마르크스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 같은 통합의 체계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따라 해야 할지 그 올바른 수행목록이 정해져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창조적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데, 미래를 위해, 미래의 세대를 위해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교정하고 우리 자신을 창조적으로 거듭나게 함으로써, 정말로 미래를 상상하며 미래의 세대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사는 일은 정말로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거짓말을 그만 해야 합니다.


열광된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 정의의 용사가 된 듯한 도취감에 젖어, 그렇게 자신이 좋아서 한 일을, 너희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말하는 거짓말을 멈추어야 합니다.


물론 남을 위해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마음 또한 자신을 위한 마음입니다. 자신을 아름답게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사실을 자각하지 않을 때, 자기최면이 일어납니다. 아름다운 말로 자신을 최면시켜, 자신이 정말로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인 줄 알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자기폐색적 자아상이 사실은 아닙니다. 그 자아상에 근거해 만들어져 남들이 그렇게 알아주기를 바라는 그 아름다운 서사가 사실은 아닙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잘못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허구가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정직하게 승인해야, 그 아름다움이 권력화되고 나아가 폭력화되는 현실을 멈출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자신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남에게도 그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인정할 것을 강요하고, 나아가 그러한 자신의 모습처럼 살라고 종용하는 일, 이것이 폭력입니다.


"우리 586 운동권들은 너네 위해 살았어. 너네가 좋은 나라에 살게 해주려고 우리 젊은 시절 다 희생했어. 그런 우리가 돈 쪼끔 더 갖고, 향락 쪼끔 더 즐기고, 고생한만큼 아주 쪼끔 더 보상받는 것도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


"우리가 너네 위해 사느라고, 정작 내 가족이랑 내 새끼 못 챙긴 만큼, 이제 내 자식들에게 아주 쪼끔 더 챙겨주겠다는 거, 그게 그렇게 죽일 일인 거야?"


"우리는 너네를 위해 살았는데, 너네는 우리를 위해 그런 작은 이해와 배려 하나가 그렇게 힘든 거니? 참 사람 살 맛 안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그렇게 다 바쳤구나. 우리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 어떻게든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요즘 애들이 사람을 잊고 참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구나."


상상력이 부족한 이들이 하게 되는 최대치의 폭력이 묘사된 대사들입니다.


자기가 폭력을 쓰고 있는 줄을 모르기에 최대치의 폭력이 발생합니다. 자기 자아상과 그 서사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기에, 필연적으로 자신이 폭력의 주체라는 사실이 은폐되어 생겨나는 일입니다.


이제는 정말로 그만 해야 합니다.


심리상담의 핵심은 정직성입니다. 이 정직성은 투명성으로도 불립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그것이 심리적 건강의 유일한 척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실이 필요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일 수 없게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성의 발견과 회복을 위한 심리학의 그 모든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단 하나의 사실만을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 심리상담의 다양한 방법론들은 바로 이 사실 하나만을 받아들이도록 돕기 위해 구성된 방편들입니다.


그 사실은 이러합니다.


"그 모든 것은 나를 위해 한 것이다."


이것은 마법의 말입니다.


이 마법을 사실로 받아들여 살아가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우리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더는 거짓말을 안하게 되며, 언제나 내가 나를 위해 살고 있다는 정직한 충실감이 삶을 가득 채웁니다. 그 충실감이 나를 우뚝 일어서게 합니다. 든든하고 듬직하게 직립보행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두 발로 당당하게 서 있게 되니, 더는 남을 괴롭히지 않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 산다는 미명으로, 남에게 자신을 아름답게 세워달라고 강요하는 폭력을 그만 행사하게 됩니다.


스스로의 직립보행과 함께 인간은 두 손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우리 편인 동지들과 연대한다는 미명으로 집단주의의 폭력을 위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스크림을 짜던 두 손이 그렇게 해방됩니다.


손이 해방됨으로써 함께 풀려나게 된 것, 그것은 바로 인간의 상상력입니다.


나는 더욱 상상되며, 더 웅대하게 상상됩니다.


끝없이 상상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위해 사는 일만이 정말로 가능한 것입니다.


정말로 가능한 나입니다.


나는 끝없는 가능성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이 새로운 날의 시작에 정말로 알고 싶었던 사실입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다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나는 끝없는 가능성의 이름입니다.


나는 가능합니다.


그 모든 것은 나를 위해 한 것입니다.


그 가능한 나를 위해 그 모든 것을 한 것입니다.


언제나 나라고 하는 절대적 가능성만을 파내려 왔던 것입니다.


열심히 한 그 모든 것은 나를 위해 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자리에서 발견되는 바로 나입니다. 그렇게 그 모든 것이 전력으로 모아진 바로 그 정도의 나입니다.


나로 인해 반드시 인생은 바뀝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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