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고집"
우리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상당히 많은 표를 얻게 될 소재는 바로 '변화'다.
왜 변화가 힘들까?
변화는 지키고 있던 것이 이제 불필요해졌음을 알고 놓는 것이다. 곧, 겨울옷을 놓고 봄옷을 입는 것이 변화다.
그러나 지키고 있던 것의 무용성을 알아도 그것을 계속 지키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남의 것'이다.
남의 것을 지키고 있을 때는 변화가 정말로 어렵다. 악착스러운 고집으로 놓지 않으려 한다.
역으로 우리가 어떤 것을 고집스럽게 견지하며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면, 그 순간은 바로 그것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 기회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이토록 열렬히 수호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남에게서 받은 선물을 수호하려는 그 이유와 같다. 우리가 남의 물건을 맡았을 때, 그 물건이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우리가 그것에 대해 과잉되게 예민한 수호의 의지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표적으로 부모가 아이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에 대해 예민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의 생명은 부모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만 생명으로부터 부모에게 맡겨진 것일 뿐이다.
부모는 이 고귀한 사실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기에, 아이에 대한 강렬한 수호의 의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놀랍게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가장 뜨겁게 지키고자 한다. 그 열의의 크기는 분명하게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명백한 정도에 비례한다.
가장 수호의 대상이 되는 아이는 그만큼 가장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동시에, 부모 또한 가장 아이의 소유물이 아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이 이해는 정말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장 변화되지 않으려 하며 고집스럽게 지키려 하는 것이 바로 부모인 까닭이다.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맡겨진 심리적 부모상을, 곧 부모의 마음을 우리는 가장 수호하고자 한다.
다른 이에게 엄마아빠 욕을 들으면 우리는 왜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우리 자신은 엄마아빠의 욕을 왜 불같이 화를 내며 하고 있는 것일까?
부모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지키고 있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새옷에 얼룩이 묻으면 우리는 화를 낸다. 아직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순수한 것'을 자기가 망친 것 같아 자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면, 이미 '더러운 것'인 구제옷은 대단히 편한 마음으로 입게 된다. 더 얼룩지는 일 또한 반갑게 환영된다. 인간에게 충분히 길들여져 인간의 것이 된 빈티지 의류는 인간인 바로 나에게도 더욱더 나의 것으로 실감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변화를 거부하며 고집부리고 있는 소재는 순수한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것은 아직 나의 것이 아닌 것이다.
나의 것은 더럽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삶으로 얼룩져있다. 즉, 직접 우리 자신이 살아낸 그 변화무쌍한 삶의 의미들로 가득 채워져있다.
더럽다는 것은 의미롭다는 것이다.
순수하다는 것은 의미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필요는 바로 의미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가장 좋은 모습으로 가정된 순수한 부모상은 의미없는 것이다. 그것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 형상으로 우리와 실제적으로 함께 삶을 겪어온 더러운 부모의 모습이다. 의미롭던 그 순간들이다.
분명하게, 순수한 것이 더러운 것으로 바뀌는 것이 변화다. 그 변화 속에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제 변화할 수 있다.
애초 우리의 것도 아니었던데다가, 심지어 우리가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었음이 어렇게 확인된다면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 안의 부모를 순수한 존재로 지키기 위해, 부모가 빌렸던 성인영화 DVD를 마음 깊은 벽장 속에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연체되어도 한참 연체된 그 DVD를 원주인에게 반납하러 가면 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부모는 아이의 소유물이 아니듯이, 이 DVD도 당연히 부모의 것이 아니다. 때문에 그 반납처는 부모가 아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은 어디에 돌려줘야 할까?
그 답은 생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집부리며 지키고 있는 마음은 어디에 돌려줘야 할까?
마찬가지로 그 답은 마음이다.
우리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고집부리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던 것을 마음에게 반환하면 마음이 알아서 한다.
변화는 마음에게 맡기면 된다.
추위가 가고 따듯해지면 겨울옷이 봄옷으로 바뀌듯이, 그렇게 마음에게 맡기면 자연스럽게 변화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의 것이다.
우리도, 부모도, 마음의 것이다.
부모의 것을 우리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 고집이며, 또한 마음의 것을 부모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 가장 큰 고집이다. 부모에게도 민폐다.
마음의 것을 마음에게 돌려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이제 편한 마음은 신뢰와 함께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계속 빌려주게 된다. 필요한 것을 너의 것처럼 자유롭게 쓰라며, 김치국물이 묻어도 걱정말라고 말한다.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니 아무 걱정말고 점점 더 숙성되어가는 변화의 맛을 즐기기만 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나의 것은 무르익어간다.
봄옷도 봄에 무르익고, 겨울옷도 겨울에 무르익어간다.
빈티지 명품이 된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찾아볼 수 없는 희소재가 된다.
이처럼 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멋지게 되는 일, 그것이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