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관계"
만화 『진격의 거인』이 완결까지 한 화를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본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인 '자유'의 의미는 더욱 명료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커다란 거인과 같이 인간을 막아서는 장벽(실제로 거인은 장벽이기도 하다)을 넘어서, 인간이 자유를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몸짓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작품의 전개가 심화됨에 따라, 그 경계 속에 인간을 구속하고, 인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기까지 하는 가장 큰 장벽의 실제가 무엇인지가 아주 정확하게 밝혀진다.
그것은 바로 '관계'다.
관계는 거인 중에 가장 커다란 거인이다.
아마도 본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작품의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묻는다.
여주인공이 대답한다.
"너는 애인이야."
그리고 관계의 갈등으로 인해 세계가 망한다.
시간을 돌이켜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묻는다.
여주인공이 다시 대답한다.
"너는 가족이야."
그리고 관계의 갈등으로 인해 또 세계가 망한다.
하나의 관계의 정립은, 하나의 세계의 종말이다.
필요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본 작품의 완결을 장식하게 될지 모를 바로 그 말이다.
"너는, 너는 자유야."
상대가 그 어느 관계에도 구속될 수 없음을 선언하는, 심지어 애인이자 가족인 자신을 떠나 어디로든 가도 된다고 허용하는 그 말이 세계에 울려 퍼질 때, 장벽은 여리고성처럼 무너진다.
그렇게 상대에게 허락된 자유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도 자유로워진다.
"나는 너의 뭐지?"
"너는 나의 자유야."
문답에서 드러나는 의미 그대로다. 너의 자유는 곧 나의 자유가 된다.
자유는 거인과 싸우듯이 관계에 대적해 싸우면서 쟁취하는 소재가 결코 아니다.
자유는 다만 관계의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관계 이전의 존재의 속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존재의 근본적인 속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자체'다.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자신인 것이다.
"너는 누군가의 그 무엇이 아니라, 그냥 네 자신이다."
이 말은 "너는 자유다."라는 말과의 정확한 동의어다.
그래서 모든 자유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일 자유다.
그런데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은 규정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와 가족의 문법에 의해 구성되어 자신인 척하고 있는 특정한 속성의 자아를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다만 '아무도 아닌 자신'이다. 곧, 무아(無我)적 자신이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유란, 아무 것도 아닐 자유다. 정해진 그 무엇도 아닐 자유다. 정해진 그 무엇에게 요구되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아도 될 자유다. 아무 것도 안해도 될 자유다.
자유란 그 자체로 분명하게 무아적이며 무위적이다. 아무 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되어도 되는 자유며, 아무 것도 안해도 되기에 그 무엇이든 해도 되는 자유다.
우리는 자유롭고 싶어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따위가 아니라 언제나 자유다.
이 말은, 우리는 자아를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자아는 관계의 대응물인 까닭이다. 곧, 자아란 가족이나 애인, 배우자, 친구, 자식, 부모 등에 대응되어서, 특정하게 형상이 정해진 그 누군가(somebody)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자아는 결국 관계의 다른 이름이다.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관계는 요청되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아는 요청된다. 그리고 이 자아-관계는 결국 존재를 망각한 상태에서의 존재의 대리물이다. 즉, 자아-관계를 통해서만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착각의 소재다.
자아-관계를 넘어서는 것이 자유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철학과 심리학, 그리고 종교학이 적극 동의하는 진술이다.
자아-관계를 넘어서는 것이 자유며, 그것이 곧 자신이다.
때문에 자유란 곧 자신을 다시 찾는 것이다.
관계에 의해, 또 관계의 대응물인 자아에 의해 망각되었던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nobody)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고, 애인이 아니며, 배우자가 아니고, 친구가 아니며, 자식이 아니고, 부모가 아니다. 우리는 더 근본적인 존재다. 즉, 더 근본적으로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는 그 모든 관계에 위탁하지 않아도, 존재의 근본적인 속성에 따라 '바로 그 자체'로 존재한다.
존재는 오직 스스로 존재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데 있어 이처럼 그 어떤 관계도 실상 필요하지 않다는 존재의 근본사실이 확인되면, 그렇게 우리의 본원적인 자유의 속성이 확인되면, 역설이 피어난다.
그 무엇도 아닐 현실이 회복됨에 따라, 그 무엇일 현실도 회복되는 것이다.
가장 자유로운 우리는 이제 기꺼이 가족이고, 애인이며, 배우자고, 친구며, 자식이고, 부모가 된다.
아무 것도 아니라서,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자유를 정말로 자유로서 누리게 된다.
이로 인해, 관계라고 하는 거인, 또한 자아라고 하는 거인은 그 권위를 잃어 무력화된다. 더는 우리를 구속하는 장벽이 아니라, 우리가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된다.
존재는 담장 위에 올라서 사뿐사뿐 노닌다.
그 모습 자체로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반가워. 나는 너의 자유야."
너는 나의 자유며, 나는 너의 자유다.
너는 자유롭고, 나는 자유롭다.
서로가 서로의 자유를 알아주는 이 자리에서, 역설적으로 서로는 서로를 떠나지 않게 된다. 나의 자유를 온전하게 존중해주는 기적같은 이를 우리는 떠날 수 없는 까닭이다. 이로 인해 관계라는 장벽의 강압적 구속이 없어도 진정한 의미에서 함께하게 된다. 서로의 자유로 서로의 함께함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서로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서로의 자유를 반가워하기 위해, 그럼으로써 정말로 함께하는 자유를 꽃피우기 위해, 우리는 오늘 관계라는 놀이터에 놀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