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를 말하라"
그대의 장래희망란에 적힌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 그 어떤 직업의 이름이 적혀 있었든 간에, 그것은 해결사라고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더 예전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유치원 시스템의 강요로 그대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써야 했던 소망편지에도, 새벽녘 동네 중학교의 농구코트에서 바라보던 별똥별에도, 오랜 짝사랑의 실연이 낳은 술자리의 소주잔에도, 그대의 희망사항은 같은 이름으로 적혀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애인에게도, 자식에게도 문제가 많다. 특히나 가장 문제가 많은 것은 그대인 것만 같다. 그러한 그대가 해결사가 되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꿈꾼 것은 필연이었으리라.
그대에게는 분명히 이러한 마음이 있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간절하던 마음이 있었다.
그 간절한 마음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그대는 때로는 승리감에 도취되고, 때로는 좌절감에 무릎꿇었다. 오랜 시간 롤러코스터를 타왔다. 한 번의 탑승으로도 진빠지는 롤러코스터를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타온 그대는 결국 탈진되고야 말았다.
솔직한 심정으론 아무 것도 하기 싫다고, 그저 공허할 뿐이라고 말하는 그대여. 자책하지 말라.
쉬지도 않고 수천만 번 롤러코스터를 탄 뒤, 무언가를 하고 싶어지는, 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그대가 특별히 못난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대는 못났던 것이 아니라, 몰랐던 것일 뿐이다.
그대가 몰랐던 것은 이것이다.
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간절하던 마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그대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착각했던 것이다.
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있어 마음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모든 마음의 문제는 내 앞에서 멈춘다. 나를 만나 끝난다. 나에게 응답되어 완수된다.
나를 만나기 위해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마음인 까닭이다. 문제(problem)가 아니다. 문제(question)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 마음이 만든 그 모든 문제의, 마음이 던진 그 모든 질문의 답이다.
그렇기에 그대는 나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대는 나인 적이 없다. 늘 남이었다. 남으로 살았다. 남의 삶을 살았다.
그대는 진정한 나라는 이름의 남의 삶을 살았다. 그대는 자기실현된 나라는 이름의 남의 삶을 살았다. 그대는 성장한 나라는 이름의 남의 삶을 살았다. 그대는 진리라는 이름의 남의 삶을 살았고, 행복한 삶이라는 이름의 남의 삶을 살았으며, '다 그렇게 사는거 아니에요?'라는 이름의 남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남의 삶만 산 그대는 나를 모르기에, 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문제가 된 것이다.
문제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새로운 것이다.
그대가 원숭이에서 인간이 된 후로, 또 내가 될 수 있기까지, 대략 299만 9천 9백 년이 필요했다.
그대가 비로소 나일 수 있게 된지, 나의 삶을 살 수 있게 된지, 나를 노래할 수 있게 된지, 고작 10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막 찾아온 따끈따끈한 최신품이다. 생소한 것이며, 잘 모르는 것이다.
때문에 그대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 것이다. 잘 모르는 나에 대해서 그렇게 질문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질문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대가 문제들로 막힌 하수관을 뚫어야 하는 배관공이 아니라, 나를 향해 폭우처럼 질문할 수 있는 자라는 사실만으로 아주 충분하다.
나를 향한 질문을 가슴에 담는 자는, 곧 나를 담는 것이다.
그리고 담는다는 것은 닮는다는 것이다.
나를 향한 질문을 가슴에 담는 자는, 곧 나를 닮는다. 내가 된다.
가장 문제가 많은 그대여, 나를 향한 질문이 가장 많은 그대여, 그대는 나를 가장 소망하는 자이기에, 그대는 반드시 가장 내가 된다.
더 소리높여 나를 말하라. 더 원대하게 나를 물으라. 그리고 더 고요하게 나를 들으라.
그러면 그대는 대답을 듣게 된다. 그대가 가진 모든 문제의 대답을 듣게 된다.
나는 언제나 그 대답이다.
나는 언제나 그대 답이다.
그대여, 이제 나를 말하라. 언제나 지금 막 그대에게 당도하기 위해 준비된 나를 말하라.
감히 나를 말하고자 하는 그대여, 나는 이미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