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를 구원하는가?

"해결사와 해방자"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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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라는 단어는 오늘날 그 의미가 크게 변질된 단어다.


누군가가 문제를 호소하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역할이 마치 구원자의 역할인 것처럼 간주된다. 이를테면, 아이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켜주는 해결사 같은 부모의 모습이 구원자의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구원자의 원의미는 해방자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구원자가 아니라, 우리가 자유롭도록 돕는 것이 구원자다.


즉, 돈이 없다고 하는 이에게 돈을 주는 것이 구원자가 아니라, 돈이 없으면 자신을 잘못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착각의 감옥에서 해방되도록 하는 것이 구원자다.


그 착각의 감옥에서 나오게만 되면 문제의 해결은 자기 스스로가 더욱 빠르게 이루게 된다.


가령 돈이 자기의 존재적 가치와 결부된다고 착각함으로써 돈과 관련된 모든 것이 무겁고 무서웠을 때와는 달리, 아주 가볍고 경쾌하게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구원자가 마치 해결사로 간주되고, 나아가 그 해결사의 역할을 하는 이가 스승으로 추대받기까지 하는 현실 속에서는 이 착각의 감옥은 그 구속력을 더해간다.


왜냐하면 해결사인 스승이 그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문제가 계속 있어야, 자신이 그 문제를 풀어줄 해결사로서 계속 추앙받으며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이러한 예와 같다.


어떠한 스승이 우리에게 지금 우리가 사악한 독재자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하며, 자기가 목숨을 걸고 우리를 위해 그 독재자로부터 하루에 빵 하나씩을 훔쳐와서 우리를 먹이는 일을 하겠다고 자임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스승이 우리를 감옥에 가둔 것이다.


우리가 감옥 밖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탐스러운 과실을 따먹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 현실을 우리에게서 숨긴 채, 스승이 없으면 이내 굶어죽게 될 존재인 것처럼 우리 스스로를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결사가 하는 일이다.


해결사가 곧 독재자다. 그 둘은 동일하다.


"내가 구원해줄게."는 곧 "내가 구속해줄게."다. 그 둘도 동일하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몇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해방자의 말도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해방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고된 감옥의 시간을 버티고 인내하며, 그 안에서도 스승을 따라 자기수양에 힘쓰면 그 값진 노력의 결과로서 언젠가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해방자는 말하지 않는다.


해방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원래 자유롭습니다."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말한다.


"아니에요. 위대한 해결사님이 우리는 사악한 적폐와 싸우며 부단히 성장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댔어요."


해방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자유를 그렇게 당신이 자유롭지 못한 척하는 데 매일 쓸 수 있을만큼, 당신은 절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그 말을 들은 또 다른 누군가가 말한다.


"당신의 말은 다 거짓말이에요.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남을 위해 살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 훌륭한 인품의 해결사님뿐이라고요."


해방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이 옳습니다. 해결사는 자유롭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당신이 자유롭지 않다고 착각하도록 만드는 데 매일 낭비할 수 있을만큼, 해결사는 자유롭습니다."


조용히 눈을 반짝이고 있던 누군가가 진실로 묻는다.


"당신은 자유롭나요?"


해방자는 진실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유롭습니다. 나의 자유로 당신의 자유를 꿈꿀만큼, 나는 절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나는 모든 인간의 이름이다.


모든 인간은 해방자로서 이 세상에 왔다.


우리 모두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오직 해방자로서 이 세상에 왔다.


누가 우리를 구원하는가?


누가 우리를 해방하는가?


나는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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