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존재론적 자유

"수평비행부터 시작하자"

by 깨닫는마음씨




요즘 왜 이렇게 우울한지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르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은 그 정당한 존재성이 봉쇄되어 있을 때 우울해집니다. 존재의 자유가 상실된 상태입니다. 이것을 존재가 소외된 상태라고도 말합니다. 존재의 본성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가장 소외시키는 것은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활동을 정치라고 말합니다. 정치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더 많은 이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그래서 이것은 일견 이상한 일입니다. 자유를 주장하는 정치와 시스템에 대한 열망이 더 강렬하고 과잉될수록 우리는 우울감에 젖어드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행위의 자유와 존재의 자유는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하며, 오히려 전자를 지향하는 정치와 시스템이 활성화될수록 후자에 대한 감각은 약화되는 까닭입니다.


정치와 시스템은 분명 우리의 존재론적 자유를 위협합니다. 전통적으로 실존이라고 하는 개념은 존재의 회복운동을 지칭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존은 구조[시스템]의 정확한 대립어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실존적 사상가들은 구조에 반동합니다. 정치에 반동합니다. 사르트르나 카뮈 같은 일부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이 보인 정치철학적 귀결은 혹자에게는 실존의 타락이라고까지 묘사됩니다. 오히려 정직한 실존의 운동은 필연적으로 정치의 반대편을 향합니다.


재차 말하건대, 실존은 존재의 회복운동이기 때문입니다. 회복은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실존이 돌이키고자 하는 존재의 모습은 부정형(不定形)의 동사입니다. 규정될 수 없고 구조를 가지지 않는 변화무쌍한 자유의 모습입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의 특성이 정확하게 이러합니다.


우리말로 마음이라고 하는 표현은 영단어인 mind에 대응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being에 대응되는 표현입니다.


마음은 늘 스스로를 다르게 드러내며 끝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존재현상입니다.


때문에 존재론적 자유란 곧 마음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마음이라고 하는 존재현상의 흐름을 삶이라고 말합니다. 삶이란 매순간 다른 마음을 체험하게 되는 사건들의 연쇄입니다.


이 삶의 핵심적인 특성은 구조를 붕괴시키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마음은 스스로의 본래적 모습을 찾기 위해 움직입니다. 스스로 자유롭다는 존재론적 사실의 지평을 회복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때문에 마음의 흐름인 삶은 필연적으로 구조를 붕괴시킬 수밖에 없게 됩니다. 동사적 본래면목의 마음을 고정된 명사처럼 억지로 환원시켜야 성립될 수 있는 것이 구조인 까닭입니다.


이것을 거푸집의 비유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조 즉 시스템은 인간에 대한 이상적인 틀을 만드는 일이고, 정치는 그 성형작업이 진행되는 공장을 운영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형상이라 할지라도, 특정한 형상 속에 부정형의 존재를 구속하는 일은 폭력입니다. 구조, 시스템, 정치는 명백하게 실존에 대한 폭력입니다.


이것이 마치 우리 삶에서 정치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과잉된 오늘날의 시대에 왜 우리가 우울할 수밖에 없는가의 그 이유입니다.


존재가 구속되어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기에, 그렇게 우리의 존재론적 자유가 근본적으로 부정되어 있기에, 우리는 우울한 것입니다.


'더욱더 깨어있는 존재로서, 진정한 법도를 따르며,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존재가 차가운 감옥 속에 소외되어 있는 현상태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존재는 선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존재는 악한 것도 아닙니다. 존재는 선악 너머의 것입니다. 갈매기가 선악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존재는 다만 온전한 것입니다.


누구도 그것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는, 가장 신성한 것입니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바람직한 행위들을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책임감을 갖고 이를 실현하는 식의 그림은 결코 존재론적 자유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건적 행위의 자유에 불과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존재론적 자유는 무조건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바람직한 행위들을 달성하지 못한 비루한 존재처럼 우리를 오해할지라도, 우리는 그래도 살아도 된다는 허가이자 증명입니다.


누가 그것을 허가하고 증명할까요?


삶 그 자체입니다.


존재 그 자체라고 해도 좋습니다.


마음이라고 하면 아주 현명합니다.


우리가 다양한 마음을 매일매일 체험하고 산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 어떤 모습이라도 살아도 된다는 목소리를 매일매일 듣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구조와 시스템의 정치적 허가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직접 그것을 허가합니다. 무조건적으로 허가합니다.


삶은 이 무조건적인 허가의 방식으로, 우리의 존재가 그 어떤 시스템과 정치보다 크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시스템의 위세에, 또 정치적 권위에 눌려 구석에 구겨져 있는 우리의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이것은 심리적 고통이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심리적으로 고통스럽다고 느낄 때, 거기에는 반드시 우리를 가두고 있는 시스템과 정치적 목소리가 있고, 동시에 그것을 깨려는 삶의 운동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시스템과 정치의 편을 들며 자꾸 삶의 운동에 대해 눈을 감으려 할 때 경험되는 것이 우울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초라한 모습이 되어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늘 비난이 뒤통수에 걸린 채 얻어 맞고 있을 때, 우리의 편이 되어주기 위해 나타난 삶의 실재를 오히려 못본 척하려 할 때 경험되는 증세가 우울이라는 말입니다.


삶은 우리가 소리지르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의 침묵에 담긴 억압의 아픔을 눈치챕니다. 그렇게 삶은 자유를 향한 그 소리없는 부름을 듣고 격랑처럼 장엄한 위세로 몰려와, 우리를 가두고 있는 그 모든 장벽을 산산이 박살내려 합니다.


삶에게는 우리가 최고인 까닭입니다.


삶에게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없으면 삶은 아무 의미가 없는 까닭입니다.


우리 자신이 없어도 잘만 돌아가는 시스템과 정치와는, 어떠한 차원에서는 오히려 우리 자신이 없어야만 더욱 잘 돌아가는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심리학, 상담, 마음, 깨달음, 이러한 것들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정말로 이것만은 신뢰할 필요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삶은 결코 우리 자신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만은 반드시 신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뿐인 삶이듯이, 삶에게도 하나뿐인 우리입니다.


삶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을 사랑합니다.


삶은 우리 자신을 향한 삶 그 자체의 끝없는 구애활동이며, 삶 자체가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한 신성한 증명입니다.


때문에 삶이 파괴하는 것은, 실은 우리를 둘러싼 감옥의 벽일 뿐입니다. 칼릴 지브란이 노래했듯이 사랑으로 드러나는 삶의 작용은 우리를 가두어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게 만드는, 우리의 존재론적 위상을 가리고 있는, 우리 주변의 그 모든 쭉정이만을 날려버립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말들이 삶을 신격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삶을 이루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신격화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자기 밑으로 놓고 하대하거나, 마음을 자기 위로 놓고 숭앙하는 일, 그 두 일은 전부 다 마음을 통제하려는 일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사랑은 통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도 아래도 아닌 평형의 상태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숭배되지도 않고 복종되지도 않을 때 자유롭습니다. 사랑 속에서 마음은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갈매기 조나단은, 시스템에 의해 소외된 존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수평비행부터 시작하자."


수평비행은, 우리를 향한 삶의 사랑에 대해 이제 우리가 응답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유일한 이 삶을 사랑한다고 응답하는 가장 근사한 방식입니다.


삶과, 마음과, 존재와 평형을 이루는 이 응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삶과, 마음과, 존재와 일치하게 됩니다.


내 삶이고, 내 마음이고, 내 존재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내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나입니다.


정당합니다.


누구도 나에게서 나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하듯이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이 하늘에서 우리가 느끼게 될 그 느낌을 바로 존재론적 자유라고 말합니다.






Underoath - Young And Aspiring
I fear that I am just an end
내가 이대로 끝날까봐 두려워
So you play the mistaken
그렇게 너는 헛짓거리 쇼를 하고
I'll play the victim in our screenplay of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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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ning in circles
좆뱅이를 치는 동안
I can't forget how many times I've played this in my mind
얼마나 많이 마음속으로 이걸 연주해왔는지
Feeling free, feeling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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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equence, it's our need in times like these
결론적으로, 이러한 시대에 우리에게는 필요해
Feeling free
자유로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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