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실존

"보름달 한가운데 너의 얼굴이"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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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른다. 떠오른다.


달이 떠오르면, 달 속에 너의 얼굴이 같이 떠오른다.


신라의 유리왕에게도 이 얼굴이 떠오르며 추석은 유래되었다.


유리왕은 말했다.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늙은이와 병자를 먹이도록 하라."


그 모든 것 중 한가운데 으뜸이 고아다.


고아는 먹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가장 무용한 존재인 까닭이다.


더는 누구의 자식도 아닌 고아는, 따라서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존재다. 혈통의 존속과, 유전자의 전승과, 사회공동체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다. 무용하기 짝이 없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돌봐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조금이라도 내 자식을 더 챙기는 것이 모든 면에서 유익하다. 동물적 본능과 사회적 합리성이 그렇게 명한다.


그런데도 떠올리고 만다.


너의 얼굴이 떠올라 달을 가득 메운다.


타자성의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처럼, 너의 얼굴은 명령이다. 그 어떤 명령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절대적이며 신성한 명령이다.


그 명령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고아를 먹이는 것이 인간이라고 알린다.


그렇게 고아 앞에서 우리가 인간을 회복할 거룩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 우주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을 위해 가장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은 사랑의 정의다. 이득도 되지 않는 헛된 것을 사랑하기에 그것은 사랑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얻은 것이다.


실존철학은 고아의 철학이다.


실존철학은 우리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이 고아의 입장이라고 전한다.


그래서 고아에게 친절하게 고아를 먹이는 일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사랑으로 살리는 가장 위대한 일이다.


그 모든 것 중 한가운데 으뜸이 고아다.


즉, 한가위의 으뜸은 고아다.


추석은 우리가 고아를 으뜸으로 보며 친절할 수 있는, 바로 인간이 인간 자신을 으뜸으로 보며 친절할 수 있는 현실을 우리가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다소곳이 비추어주는 아주 우아한 명절이다.


세상을 가득 메운 달 속에서, 너는 웃고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달빛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너의 얼굴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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