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2020)

만남의 속성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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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토리 속에서 움직인다. 스토리란 그 경로가 이미 정해진 기차시간표와도 같다. 같은 레일 위에서만 반복된다. 그래서 스토리 속에서는 어디를 가든 다 비슷비슷해보인다. 굳이 여기까지 왔어야 할 이유를 되묻게 된다.


심지어는 스토리를 체험하는 나와도 무관하게 계속되는 것이 스토리다. 유사한 것이 끝없이 이어지며 반복된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가더라도 닿지 못할 것 같은 머나먼 길이다.


무의식의 반복이라는 주제는 여기에서 나온다. 무의식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끝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무의식을 중요하게 주장하던 프로이트나 융 같은 정신역동의 세력들은 평생 파도 그 끝이 보이지를 않는 정신적 고고학으로서 심리학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스토리를 신적인 것으로 여기며, 그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과찬하기도 한다. 이것을 과찬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영화는 스토리텔링의 신적인 가치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스토리가 아닌 스토리의 바깥 현실에 더 주목한다.


그렇다면 스토리의 바깥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삶이다.


스토리가 끝나는 곳에서 삶은 시작된다.


스토리의 종착역, 그곳은 삶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곳이다.


이것은 실존심리학의 대주제다.


내기해도 좋다. 삶은 절대로 스토리가 아니다.


삶의 지극히 일부는 분명 언어에 담겨 스토리가 되지만, 실제의 삶은 결코 언어화될 수 없는 무수한 빛과 음색, 향기로 가득차있다. 그것들과의 만남을 통한 감동으로 가득차있다.


삶은 미지와의 만남이다. 이를 다시 표현해 신비의 체험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 만남의 순간 우리가 체험하는 느낌을 경외감이라고 부른다.


경외감은 가장 완전한 순간의 실감을 지시한다. 바로 이 순간 이 모든 것이 멎어도 한없이 좋을, 온전한 완성의 때다.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만남으로 인해 우리에게 기적처럼 다가오는 기회다.


우리를 둘러싼 그 어떤 스토리가 전개되든 간에, 모든 스토리는 만나질 때 종결된다.


더 위대한 결과를 내기 위해 반복되는 것이 스토리가 아니라, 단 한순간 만나지기 위해 반복되는 것이 스토리다.


무엇을 만나기 위함일까?


스토리의 종착역, 곧 스토리와 스토리의 바깥의 그 접촉점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어린 시절의 추억, 친구들과의 친밀감, 미지로의 여행, 아무 일이 없어서 좋은 여유, 생생한 여름의 정경, 그 모든 것은 다만 소재다. 그 어떤 소재로든 안내되는 만남의 내용은 이러하다.


"나 태어나길 잘했다. 살아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모든 만남의 내용은,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의 그 의미를 알린다.


지금 이곳을 낙원으로 알아봄으로써, 자신이 낙원에서 기원했음을 다시 기억하도록 한다.


낙원에서 출발한 이가, 그가 도착한 곳도 낙원임을 발견하는 여정, 이것을 다시 삶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소녀들이 찾아 떠난 세상의 끝은 벽이 아니고, 낭떠러지가 아니며, 돌아선 등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향한 무한한 긍정이다.


더없이 좋은 것이다.


바로 그 사실을 기억하는 자리가 결국 종착역이다.


스토리가 끝나는 스토리의 종착역은 동시에 존재가 완성되는 존재의 종착역으로 다시 발견된다. 스토리가 존재를 완성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처음으로 스토리를 벗어나고자 그 경계를 넘었을 때 경계 밖의 존재가 조우되는 것이다.


존재의 종착역은 언제나 존재의 온전함이 확인되는 현실이다.


그 현실의 향기는 늘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익숙한 역설적 감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것이 만남의 속성이다. 만남은 이처럼 우리가 지금 이순간 온전하다는 사실을 개방함과 동시에, 원래 온전했다는 사실을 함께 개방한다.


그래서 만남 자체가 복음이다. 우리를 가장 기쁘게 하는 소식이다.


더 듣고 싶어서 귀가 기울여진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몸을 스크린쪽으로 밀어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다가 알게 된다.


그 대화의 내용과, 대화로 전개되는 스토리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저 저 만남의 장면 속에 들어가 같이 만나고 싶어할 뿐이라는 사실을.


만나고 싶어 귀를 기울이는 마음이 있다.


스크린이 펼쳐내는 또 다른 스토리의 끝에서, 또 다른 세상의 끝에서, 그 마음은 영화관 밖의 삶을 향해 다시 시작된다. 만나고 싶은 설렘으로 가득하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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