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얼굴 앞에서(2020)

가장 온전한

by 깨닫는마음씨




우리는 살다가 죽는다.


결국에는 누구나 시한부의 운명이다.


그러한 우리의 삶은 끝내 영화는 되지 못할 꿈이다. 혼자의 얼굴에 떠오를 가끔의 미소일지언정, 남에게 말하기에는 많이 부끄러운 것이다.


꿈은 근본적으로 망상이어서다. 고층 아파트처럼 더 높이 올라가고만 싶은 비밀스러운 소망이다. 그래서 애초 다른 이와 나눌 마음이 없이 홀로 간직되는 것이다. 혼자만 품고 있는 마법소녀의 신비한 주술은, 드러나면 크레파스의 원색처럼 유치한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을 같이 보내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서로의 마법세계에는 언제나 튼튼한 자폐의 빗장이 걸린 철문이 놓여 있다. 철문은 내적으로는 유치찬란한 소망을 수호하며, 외적으로는 그와는 반대되는 진정하고 성숙한 것을 위해 사는 듯한 모양새를 포장한다. 철문의 이름은 자존심이다. 망상을 지키고 있는 비장한 문지기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누군가는 그래서 이제 그만 살고 싶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토록 아무 의미가 없이 유치하고 다 공허한 것일까?'


그녀는 꿈의 속성을 그와 같이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죽기로 했다.


그 순간, 그녀는 꿈에서 깨었다.


삶에서 벗어나 죽고자 한 순간, 삶이라는 꿈에서 깨게 된 것이다.


이윽고 그녀는 보았다. 눈을 뜨고 보았다. 망상이 걷힌 눈으로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 앞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온전해 보였다. 눈앞에 보이는 실재가 굴절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보였다.


이 얼굴 앞에 다 완성되어 있었다.


살다가 죽는 그 모든 것이 가장 온전하게 다 완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보았다.


그렇게 이 얼굴 앞에서, 바로 당신 얼굴 앞에서, 공허한 망상에만 불과했던 꿈이, 이 삶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온전한 것으로 드러나 있었다. 전적으로 긍정되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니?"


이제 이렇게 묻는 것은 눈뜬 이의 상냥함이다. 유치한 것을 애틋한 것으로 알아보고 미소지으며, 문득 벌거벗은 자신의 꿈이 부끄러워 다시 철문 뒤로 철수하는 모습 또한 귀여움으로 알아보고 웃음짓는, 꿈을 사랑하는 이의 상냥함이다. 그것이 공(空)하기에 사랑하는, 사랑의 원형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다가 죽는 시한부의 운명 속에서 정말로 유효한 물음은 이것이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을,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대체 누가 알아보고 있는가? 그 얼굴 앞에 선 모든 것으로 하여금 온전함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하는 그 누군가의 얼굴이란 대체 어떠한 얼굴인가?"


가장 온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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