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는 사실적인 부모안내서 #4

"노 히어로즈 존의 존중"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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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내가 신이 되었다는 것과의 동의어는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서 자존감이 낮아 힘들어하던 이가 부모가 되었다고 자존감이 높아지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충분히 대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이가 부모가 되었다고 새롭게 생겨난 당연한 권리처럼 사람들에게 더 많은 대접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러한 이유들로 아이를 가지고자 한다면, 조금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는 우리를 더욱 가치롭게 만들어주거나, 우리의 결핍을 보충해줄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나를 결코 빛나는 히어로의 삶으로 안내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피터 파커를 스파이더맨으로 만들어준 방사능거미가 아니고, 아이언맨의 가슴에 박힌 원자로가 아니며, 배트맨이 상속받은 웨인그룹의 위대한 유산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이제 우리는 '노 키즈 존(No Kids Zone)'이라고 써있는 문구에 더는 불편하지 않게 됩니다.


'노 키즈 존'은 사실 아이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히어로와 같이 행세하는 부모의 출입을 제한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 키즈 존'은 '노 히어로즈 존(No Heroes Zone)'이라고 바꿔 읽으면 정확합니다.


히어로의 다른 이름은 해결사입니다.


아이들이 어떠한 업장에서 소동을 일으킬 때, 그 뒤에는 언제나 깡패해결사와 같은 히어로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깡패해결사들을 마치 강력한 신의 권위처럼 등에 업고 아이들은 자기 또한 히어로처럼 행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해당 업장은 늘 히어로들이 날뛰는 통에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이 건물들이 무너져나가는 대도시처럼 히어로판이 됩니다. 다만 히어로들을 위해 존재하는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노 히어로즈 존'이라는 안내문구가 걸리게 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우리 아이가 지금 문제라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해결사로 행세하려는 부모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문제라고요?"라는 이 질문방식 자체가, 부모가 해결사가 되고자 하는 천사소녀 새롬이의 마법주문과도 같은 것입니다. 바로 그 마법주문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결사가 됨으로써 얻는 가장 큰 이득은 전능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막혔다고 경험하는 이일수록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시도를 자주 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무력한 자신의 상태를 잊고, 그 대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전능감으로 자신을 가득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상담을 시작한 심리상담자들을 슈퍼비전할 때, 그들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점이 이 지점입니다. 심리상담에서 상담자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무력감을 잊고자 내담자의 문제를 열렬하게 해결해주고자 하는 의도를 가질 때, 그것이 바로 내담자 착취를 낳는다는 사실입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자원을 제공한다고 그것이 착취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착취는 자원의 주고받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상담자가 신적 영웅이 되기 위해, 내담자를 문제로 다루고 있는 그 의도는 엄연한 착취입니다.


이러한 착취의 의도 속에서는 문제가 계속 생겨나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가 될 상황 속으로 계속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해결사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와 같은 방식으로 부모가 해결사를 꿈꾸고 있다면, 아이에게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거듭해서 발생합니다.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아이 자신이 문제가 되는 사건들이 속출합니다.


아이 자신이 가장 힘듭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해결사 영웅이 되려는 부모로 인해 사실은 아이가 가장 힘들어집니다.


부모가 전능해지는 만큼, 반대로 아이는 쇠약해집니다.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망각하기 위해 아이의 힘을 빼앗고 있는 까닭입니다.


'노 히어로즈 존'은 이제 아이에 대한 이 착취를 멈춰야 한다고 알리고 있는 안내문입니다.


아이를 거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지키기 위해 걸려있는 아주 간절한 호소문입니다.


심리상담사가 부모대행업자가 아니듯, 부모 또한 해결사가 아닙니다. 해결사를 꿈꾼다면 부모가 되기보다 카센터나 전파사, 또는 흥신소를 차리는 방향성이 더 정확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영웅이 아니라, 자신이 영웅이 아니며 아이도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에게 전하는 이입니다.


이 세상은 '노 히어로즈 존'이라는 사실을 간곡하게 전하는 이입니다.


"전화기 하루종일 들고서 자꾸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냄새나는 니 방 청소나 좀 해."


자신이 해결사 영웅이 되려고 하지 않는 부모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잔소리의 원형은 "너는 영웅이 아니다."입니다.


그 의미는, 영웅 같은 깡패해결사 따위 제발 되지 말고, 될 필요도 없으니, 그저 네 자신으로만 건강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거의 유일하게 부모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부모 자신이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 그럼으로써 아이에게서도 영웅을 해체하는 일, 이 상호적인 우상파괴의 작업은 부모에게 의뢰된 신성한 임무이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신성한 이유는, 영웅이 해체됨으로써 아이는 이제 자신에게 이득을 주는 신이 아닌, 아무 이득도 되지 않는 무용한 인간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존재의 은혜 속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곧 무르익는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해결사 영웅이 사라질수록 아이는 무르익습니다. 무슨 웹툰 내용처럼 영웅의 비일상적 초능력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눈빛이 맑고 깊어집니다. 남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반드시 남을 쇠약하게 만드는 하늘을 나는 영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소중함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하늘 그 자체가 됩니다.


부모와 아이의 마음속에 영웅청정구역을 세우는 일, 그렇게 만들어진 '노 히어로즈 존'을 존중하는 일, 이것이 각종 미디어에서 아름다운 언어들로 포장되어 집행되는 인간에 대한 착취를 멈추고, 아이가 자신을 포함한 이 모든 것을 정말로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성숙한 존재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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