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에 빠질 틈이 없는 아이"
부모에 대한 결핍을 경험한 아이들이 부모의 대리물을 만들어 그 결핍을 메우고자 하는 망상에 곧잘 빠지곤 합니다.
정치는 그 대표적인 소재입니다.
이를테면 자기를 지켜줄 강하고 공정한 부성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정치인에게 강하고 공정한 속성을 투사하여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며 특정 정치인을 숭배하게 됩니다. 또는 자기를 이해해줄 자상하고 수용적인 모성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마찬가지로 특정 정치인에게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의 모성을 투사하여 숭배하게 됩니다.
포이어바흐나 프로이트가 잘 지적한 것처럼, 예전에는 아이들이 부모에 대한 결핍을 신에게 투사하여 메우려 했지만, 신이 죽은 오늘날에는 정치가 그 투사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자기 부모가 마음에 안들 때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침대에 누워 이 세상 어딘가에 자기 말을 잘 따르는 진짜 엄마아빠가 있을 거라고 꿈꾸던 그 망상이 현실이 된 것과도 같습니다. 오늘날 투표라고 하는 것은 분명 나에게 딱 맞는 진짜 엄마아빠를 내 손으로 모시자, 라는 그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진짜 엄마아빠를 오히려 가짜로 여기며, 가상의 엄마아빠를 진정한 엄마아빠로서 영접하고자 하는 이것은 좋게 말해 시뮬라크르이지, 사실 정신병의 영역입니다. 허구가 억압적인 본질을 해체시키는 일에 유용하게 기능할 수는 있어도, 허구로 실존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삶이 붕괴합니다. 그게 우리가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허구주의자들은 본질을 조롱하고, 조작하며, 그 권위를 파괴하는 광대의 일에 능하다보니, 실존 또한 자신들의 말과 뜻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존은 '사실적으로 이미 그러한 것'이라 파괴될 것이 없습니다. 어떤 언어적 허구를 동원해도, 해는 동쪽에서 뜨고,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며, 우리 엄마아빠는 진짜 엄마아빠입니다. 실존은 그 앞에서 허구 자신의 무력한 비루함만을 드러낼 뿐입니다.
정치가 대표적으로 이러한 허구주의자들의 무대입니다. 이 또한 좋게 말해 로맨티스트지, 정치인들은 자기의 말과 뜻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즉 관념적 언어로 구체적 삶을 바꾸겠다는 허구의 숭배자들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러한 허구에 빠져 삶을 낭비할 틈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진짜 엄마아빠를 정치에서 찾는 망상에 빠질 틈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망상에 빠질 틈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진짜 엄마아빠라는 꽉 찬 사실을 알려줘야 합니다.
네 진짜 엄마아빠가 이렇게 실존한다는 꽉 찬 사실을 알려줘야 합니다.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실존한다'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아이가 허구에 빠져 어떻게든 부모를 조롱하고, 조작하며, 부모의 권위를 파괴함으로써 자기 뜻대로 부모를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백일몽을 꾸고 있는 동안, 현실에서는 부모가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고, 또 갑작스러운 사건이 일어나 부모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됩니다.
이것은 존재의 역설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죽음을 사실로 실감할수록, 아이는 부모의 부재를 느끼며 결핍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의 존재를 느끼며 충만하게 됩니다. 틈이 메워집니다. 아이와 부모 사이의 틈이 꽉 차게 메워집니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부모에 대한 결핍을 경험했다고 생각하며 부모의 대리물인 정치에서 그 결핍을 메우려고 하던 아이들은, 사실 부모의 죽음을 여전히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정치로도 뭐가 잘 안 됩니다. 정치에서도 자꾸만 상실과 실패, 분노, 우울, 좌절 등과 같은 죽음의 징조를 경험하게 됩니다. 메워지지 않은 틈새만 자꾸 커져갈 뿐입니다. 망상의 결과입니다.
이렇게 가엾은 인생을 아이가 살지 않도록 하려면 빨리 알려야 합니다. 엄마아빠의 실존을, 엄마아빠가 죽는다는 사실을 빨리 전해야 합니다.
물론 이는 모종의 심판관이 아이에게 "니 엄마아빠는 죽을 것이다."라고 구형하듯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아이를 꽉 안은 채, 틈이 없도록 가득 안은 채 전하는 것입니다.
"엄마아빠가 언젠가 네 곁을 떠나가게 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늘 기억해주렴."
그리고 아이는 다른 것은 다 잊더라도, 이 순간만은 기억하게 됩니다.
체온을 통해 아이의 세포에 깊게 녹아들어 새겨져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는 꽉 찬, 엄마아빠와 자신의 존재로 모든 것이 꽉 찬 기억이 남습니다.
부재 속에서도 그 존재의 감각을 기억합니다.
틈이 없습니다.
든든하고 따듯한 진짜 엄마아빠로 가득해, 망상 따위에 빠질 틈이 없습니다.
틈이 없는, 마음의 결핍이 없는 아이가 됩니다.
그러니 우선 아이를 사이에 놓고 안을 수 있을 정도만큼은, 엄마와 아빠가 서로 친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 이전에 부부가 되는 일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부모생활의 대전제입니다.
이 말은 부부 사이에서 자기의 허구로 상대의 실존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망상을 멈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부부가 서로 상대를 자기 부모의 대리물로 여기며, 그렇게 상대에게 자기 부모가 되어주기를 요구하는 활동을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서 부부가 망상에 빠질 틈이 없어야,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아이가 망상에 빠질 틈이 없어집니다.
부부 사이에서,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그리고 아이의 가슴속에서, 꽉 차야, 꽉 차고, 꽉 찹니다.
배우자를 부모로 보지 않아야, 즉 부부 사이에서 부모의 죽음[실존]이 있어야 부부로 꽉 차고,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부모의 죽음[실존]이 있어야 부모와 아이 사이가 꽉 찹니다. 그러면 실제로 생겨날 부모의 죽음[실존] 앞에서도 아이는 결핍된 이가 되지 않고 오히려 꽉 차서 살게 됩니다.
진짜 엄마아빠만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충만한 존재의 선물입니다. 평생 가는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