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달라고 말해보렴"
아주 어릴 적에 감기가 심하게 걸려 열이 펄펄 나는 가운데 작은 몸을 쥐어짜듯이 비틀며 아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약을 먹이고 물수건을 갈아주며 밤새 간호를 해주시던 할머니에게 문득 이러한 말이 신음처럼 토해졌습니다.
"할머니 너무 아파요. 할머니 살려주세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께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만병통치약을 사오거나, 이 아이만 아프지 않게 된다면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신에게 서약을 하거나, 청와대에 혈서로 청원을 하거나, 이열치열이라며 숯으로 찜찔을 하거나, 언어를 바꾸면 현실도 바뀐다며 열이 내린 인간의 모습을 모델링하도록 아이의 앞에서 미러링의 자세를 취하거나, 또는 다 포기하고 그저 자신의 무력함을 자책하고 있는 대신에, 아주 현명하셨습니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을 다하고 싶으셨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그저 현명함을 선택하셨습니다.
"할미가 옆에 있어. 할미가 계속 옆에 있을게."
차분하고 따스한 음색으로 그렇게 당신께서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시고는, 할머니는 작은 아이의 머리를 거듭 쓰다듬고 손을 꼭 쥐어주며 밤을 함께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원형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고통이 찾아오곤 하는 인생살이의 원형입니다.
고통은, 고통 자체보다도 고통받는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될 때 정말로 고통이 됩니다.
고통에는 늘 그 고통과 함께하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은 억지로 만들 수 없습니다. "고통받는 이와 함께해야 합니다."라는 표어를 들고 그렇게 행위하려는 이들은 이미 그 시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통에 대한 이 시선은 윤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당위의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간절한 목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응답되는 자유의 것인 까닭입니다.
고통과 함께하는 시선을 부르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목소리입니다.
"살려주세요."
이 목소리를 내는 일에 자유로울 때, 시선 또한 자유로이 그 어떤 장애물이라도 넘어와, 살려달라고 청하는 그 목소리의 주인 옆에 함께하게 됩니다.
그러니 아이들의 입에서 이 목소리가 더 쉽게, 더 자주, 더 많이 나오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진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살려주세요"를 조금 약하게 표현하면 "도와주세요."가 됩니다. 모든 "도와주세요."에는 "살려주세요."의 의미가 반드시 담겨 있습니다.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쉽게, 자주, 많이 하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그러한 아이는 자기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도와주세요."라고 말한 그 빈도수만큼 분명하게 새기게 됩니다. 책에만 나와 있지 배우기는 참 쉽지 않은 감각을 몸으로 체화할 수 있게 됩니다.
아이가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말하지 않아도 해결사처럼 다 해주는 부모로 인하여, 도와달라는 말의 필요성을 아이가 망각해버린 것입니다. 이 경우 아이는 자신의 당면한 필요가 아니라 자신의 당연한 권리처럼 모든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목마른 이는 자신인데도, 알아서 물을 내놓지 않는 타인과 세상에 대해 성질을 부리게 됩니다.
두 번째는,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으니 아이가 자기 혼자 해야 된다고 생각해버린 경우입니다. 이러한 아이는 늘 센 척하고 유능한 척을 하며 자기의 힘으로 모든 것을 쟁취하려는 성향을 보이게 됩니다. 때문에 자신이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책감과 수치심도 커집니다.
보통 첫 번째의 상황으로 인해 두 번째의 상황 또한 연쇄됩니다. 자신의 필요로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니, 주변에서는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되고, 아이는 결국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혼자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는 소영웅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러한 착각이 근본적으로 작동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뭘 원하는지 아는 게 당연해야지. 내 필요를 알아맞추지 못한다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틀림없어.'
이러한 아이는 커서 대개 자기 애인이 왜 전능한 마법사가 아니냐며 매일같이 애인을 옥죄이게 됩니다. 자기 또한 애인의 욕구를 알아맞춰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뇌하며,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애인이 충분히 만족하지 않는 것 같아 좌절감에 빠지거나 애인을 원망하게도 됩니다.
이것이 바로 더불어 산다는 것의 실체입니다.
"도와주세요."를 최대한 말하지 않기 위해 생겨난 것이 더불어 삶입니다.
서로가 말 안해도 알아서 상대의 욕구를 채워주는 마법사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삶의 형태입니다.
상호해결사 관계이며, 곧 상호의존 관계입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는 이러한 의존적 관계에 빠지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아이는 이미 부모에 대한 의존자가 아닙니다. 부모의 동업자입니다.
동업은 자기도 짐을 들면서 상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고, 의존은 상대가 알아서 짐을 들어줘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움을 잘 청하는 아이는 자기 삶을 사랑하며, 그러한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있는 아이입니다.
스스로 사는 아이입니다.
반면, 도와달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 의존성향의 아이는 쓸데없는 책임감만 강하지, 실제로는 삶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아이입니다. 언제든 기회만 되면 책임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하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혼자서 척척 해내는 반듯한 소영웅적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실은 전능한 마법사가 나타나 자기 삶을 알아서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강렬한 욕망에 늘 시달립니다. 그렇게 분열되어, 소위 내로남불의 인격이 됩니다.
이러한 표리부동은 결국 불안의 이유가 됩니다. 더불어 사는 아이가 늘 불안감에 떠는 그 이유입니다.
불안한데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 시선이 없습니다. 더불어 사는 아이의 현실입니다.
반면, 스스로 사는 아이는 든든합니다. 이러한 아이의 주변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사는 아이는 "도와주세요."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괜찮은 존재로 상대를 보며 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때, 그 말을 듣고 상대는 아주 행복해집니다. 스스로 사는 아이가 먼저 상대에게 전적인 믿음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상대에게는 이제 이 아이를 돕는 일이 커다란 보람이 됩니다.
스스로 사는 아이에게서 시작된, 인간을 괜찮은 존재로 바라보며 함께하려는 시선이, 마치 부메랑처럼 정확하게 스스로 사는 아이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스스로 사는 아이는 이처럼 시선으로 사는 아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더불어 사는 아이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자기의 욕구를 실현해줄 당위적 도구로 보고 있기에, 사람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없습니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온전한 시선이 부재합니다. 그러니 상대도 더불어 사는 아이를 믿지 못하게 되고, 결국 아이의 주변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집니다. 자기 자신이 자초한 현실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더불어 삶을 지속하는 아이는 갈수록 외로워집니다.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고, 혼자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할 것 같아 삶이 무섭고 버겁습니다. 자신과 함께하는 것이 없어 힘든 삶입니다. 시선이 부재한 아이의 삶은 이렇게 힘듭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힘든 삶을 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상호의존의 관계가 마치 진정한 삶의 형태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도라고, 아이가 착각하게 될 때 아이의 삶은 반드시 힘들어집니다.
아이가 스스로 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서는 결정적인 열쇠가, 참 역설적이게도, "도와주세요."라는 말입니다.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는 결국 의존하는 삶의 기생자가 되고, 그 말을 쉽게, 자주, 많이 하는 아이는 의존하지 않는 삶의 동업자가 됩니다.
여기에서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사는 아이에게서 가장 많이 들려오는 두 문장입니다.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런 아이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이 세상이, 하늘이, 우주가 돕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이 아이를 지켜주는 시선이 늘 옆에서 함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의 입에서, 한평생 사랑의 시선과 함께할 길을 개방하는 그 첫 문장을, 부디 끄집어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