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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하는 시선 #74

"똥을 싸는 작가들에게"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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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싸는 똥이 말이고

손으로 싸는 똥이 글이다


입과 손으로 똥을 잘 싸는

너를 나는 사랑한다


순환이 정체되지 않기 위해

이대로 멈추지 않기 위해

그냥 그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화석이 되어 죽지 않기 위해


너는 미간을 찌푸리며

온 힘을 다한다


내보내야 할 것을

내보내기 위해

정성으로 애쓴다


가끔은 눈물을 떨구고

가끔은 피도 흘리며


너는 영혼을 갈아

배변의 땀방울을 흘린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무기력의 낮을 견디어낸다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

한 덩이의 똥을 싸기 위해

너는 이 순간의 전부를 건다


네가 똥을 싸는 것은

어제 먹은 스테이크 조각을

똥무더기 속에서 뒤적이며

자랑하기 위함은 아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질량감의 훈장으로

너희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함도 아니다


웅장한 거름으로

너보다 더 중요한

인류의 텃밭을 위해

봉사하기 위함도 아니다


너는

네 자신을

바꾸고 싶은 것이다


전적으로 새롭고 싶은 것이다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 너는

과거의 찌꺼기들을 모조리

짜내버리려는 것이다


다 비워져야

새로운 것이 온다는 사실을

네가 아는 까닭이다


그렇게 현명한 너를

이만큼이나 갸륵한 너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법을

도무지 모른다


똥을 자랑하는 아이들도

나는 보았다


자기가 싼 똥에 감동받아

그 똥을 다시 먹고

자기순환하는 아이들도

나는 보았다


그래피티처럼

남의 집 벽에다 똥칠한 뒤

좋아요 버튼도 그려넣는

아이들도 나는 보았다


그러니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한번 사랑해보고자

묵묵한 너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자신을 비워가는 너에게

새롭게 채워지게 될 그것이

언제나 사랑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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