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감동"
그대여, 관계에 지친 그대여.
다행히도 그대를 위해 한 가지 희망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관계는 누구에게나 가장 어려운 문제다. 비단 그대뿐만이 아니다. 관계는 누구에게도 정답이 없는 난감한 문제다.
그 문제를 지끔껏 풀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온 그대를 나는 안다.
서점가의 스테디셀러 코너에서부터 신간 코너에 이르기까지,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심리학 서적들은 한번쯤 그대의 손을 거쳐갔고, 관계의 지혜를 설파하는 유튜브 명사들은 얼마되지 않는 그대의 스마트폰의 저장공간을 점유했으며, 세상 경험이 많은 노련한 그대 친구와 3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컨설팅은 아낌없이 그대의 지갑을 개방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몫은 결국 그대의 몫이었고, 그럴때마다 그대는 번번이 좌절했다. 좌절의 무게로 그대는 나날이 지쳐갔다.
관계에 지친 그대는 이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며, 문을 닫고자 한다.
그렇게 사방의 문이 하나둘씩 닫혀가고, 그대는 사방의 벽이 둘러싼 가운데 남겨졌다.
그래서 그대는 외롭다.
외로움과 지침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지친다. 그대는 도무지 이 관계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만 같다.
그대여, 그대는 그대가 왜 지치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관리자다. 그대는 관계의 관리자다.
그리고 관리자의 숙명은 지치는 것이다. 그것은 필연이다.
관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괸리자에게는 이처럼 유지의 책임이 따른다. 유지는 변화의 반대항이다. 때문에 관리자는 자신이 유지해야 하는 그 무엇인가가 변화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곧, 관리자는 변화를 거부해야만 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일, 이것이 이 우주에서 가장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그것은 시간을 붙잡아두려는 일과도 같다.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든 가능한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하게 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통제다.
관리자는 필연적으로 통제자가 된다.
그대여, 통제자의 다른 이름 또한 알고 싶은가?
바로 지배자다.
관리자는 통제자며, 곧 지배자다.
우리는 왕이 되는 꿈을 곧잘 꾼다. 왕이란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것인지를 모르고 소망하는 것이다. 그대도 이와 같았다.
관계에 지친 그대는 관계의 왕이 되기를 꿈꾸었던 것이다.
그대여, 왕이라는 표현의 어감이 언뜻 가져다줄 오해처럼, 그대가 마치 반민주적이고, 권력적이며, 상대를 착취하는 그런 나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관계 속에서 누구보다 배려심 많고, 상냥하며, 관계의 상대를 존중하는 그런 착한 사람이었다. 그대도 알고, 나도 안다.
그것이 바로 왕이다. 관계 속에서 누구보다 배려심 많고, 상냥하며, 관계의 상대를 존중하는 그런 착한 사람이 바로 관계의 왕이다.
그대여, 한번 떠올려보라. 그대가 관계의 왕이라고 하는 것을 상상한다면, 그대는 이와 같은 유사한 모습을 떠올리지 않겠는가?
그대는, 그대가 상상한 그것이 정확하게 된 것뿐이다. 그렇게 왕이라는 이름의 지배자가 되었기에,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지치게 된 것뿐이다.
지배의 핵심은, 피지배자가 아닌 지배자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대는 관계의 지배자로서, 관계의 문제를 어떻게든 홀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열심히 밤을 꼬박 새우며 하나라도 더 많은 영단어를 외워 영어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학생처럼, 그대는 관계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대는 관계의 문제를, 다른 여타의 문제와 같이 성취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가 그대의 힘으로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결과들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또 힘겨운 노력을 경주해왔다. 영어선생님에게 큰 뒷돈을 쥐어줌으로써 그대가 100점을 성취했을 때와 똑같은 문제가 출제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고, 스스로 큰 부상을 입어 유급함으로써 똑같은 수준의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왔고, 타임머신을 개발해 그대가 가장 성취를 이룬 똑같은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그 모든 성취의 유지를 위해, 그대는 돈을 벌고, 설득술을 배우고, 몸을 해치고, 병원비를 지불하고, 천재가 되고, 천문학적 개발비를 펀딩받고, 아득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대가 지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이다.
그대여, 혼자라서 지친다. 홀로 하고 있어서 지친다. 그대 혼자의 힘으로 성취하는 것이 관계라고 믿고 있어서 지친다.
믿음보다 강한 것은, 때문에 믿음보다 그대의 편인 것은 바로 사실이다.
그대여, 사실을 기억해보자.
그대가 하나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느꼈을 때, 그때 실제로 그대에게 일어났던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대는 처음 보았다. 세상에 이러한 선생님도 있구나, 라며, 그대는 그대의 멋진 영어선생님을 첫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선생님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대는 영단어를 열심히 외웠다. 전혀 관심도 없었고, 도무지 자신도 없었던 영어 과목이었지만, 잘 외워졌다. 신이 났다.
그렇게 그대는 영어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 영어선생님은 그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대단하다. 널 새롭게 봤구나."
그대에게는 벅찬 감동이었다. 그대에게는 그 감동이 모든 것이었다.
그대여, 그대에게 일어났던 일은 바로 감동이다.
그대는 감동받았던 것이다. 감동이 그대의 온 몸을 전율시켰던 것이다. 결코 잊힐 수 없는 감동의 충격이 그대의 세포세포마다 가득 새겨졌던 것이다.
성취할 수 있는 그대의 능력에 감동받은 것이 아니다.
상대와의 상호작용에 감동받은 것이다. 만남에 감동받은 것이다. 그 만남을 통해 새롭게 보이게 된 자신에 감동받은 것이다.
수차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처음 페이스북에 게시한 그대의 소소한 취미를 담은 사진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좋아요'를 더해갈 때도, 바로 그때도 그대는 감동받았던 것이다. 상호작용에, 만남에, 그 결과로서의 새로운 자신에.
감동은 결코 그대 혼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호작용이 끝내 이루어낸 만남이 새로운 그대 자신이라는 감동을 꽃피워내는 것이다.
그대가 이 감동을 잠깐 잊고 있을 때, 그대는 지배자가 된다. 그리고는 그대 혼자만의 힘으로 그 감동을 돌이키려고 애쓰게 된다. 이제는 그대의 취미를 조곤조곤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좋아요'를 얻을까 궁리하며 사람들이 유효하게 반응할 소재로만 페이스북의 게시글을 채워가는 그대의 모습이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그대 자신을 잃어가게 될 뿐이다. 그대 자신이라는 감동을 잃어가게 될 뿐이다.
그대여, 다시 기억하자.
그대가 관계의 지배자가 되어 관계에 지치게 된 이유는, 그대가 상대와의 상호작용에 감동받았던 까닭이다. 그 만남의 뜨거운 벅참과, 그로 인해 개방된 새로운 그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까닭이다.
그것이 만남의 선물이다.
그대가 관계의 지배자가 아닐 때, 만남은 언제나 선물이다.
선물을 받게 되는 이는,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다. 곧, 관계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가 아니라, 조심스레 만남의 빈 손을 내밀고 있는 이다.
다행히도 그대를 위해 한 가지 희망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관계는 누구에게나 가장 어려운 문제다. 비단 그대뿐만이 아니다. 관계는 누구에게도 정답이 없는 난감한 문제다.
그렇다면 그대여, 잘라버려라. 정답도 없는 어려운 문제는 그냥 잘라버려라. 복잡한 매듭은 그냥 잘라버려라.
그대가 스스로 정답도 없는 어려운 문제로 만들어놓은, 바로 그러한 관계를 잘라버려라. 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자를 그렇게 함께 잘라버려라.
그리고 그대는, 관계를 해체한 뒤에 남는 그 상대에게 그저 감동받을 준비를 하라.
그 상대가 그대와 얼마나 오래 알아왔던 사람인지, 그대가 익히 아는 어떠한 사람인지를 다 잘라버리고, 그저 지금 그대의 눈 앞에 드러난 그 상대의 모습에 감동받을 준비를 하라.
그대는 다시 감동받을 수 있다. 그대는 또 감동받을 수 있다.
나는 안다.
그대를 그렇게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던 그 관계의 상대에게, 그 사람에게, 다시 또 감동받을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대의 가슴은 이미 울컥한다.
그대는 안다.
그대가 얼마나 만남의 상호작용을 갈망하는지를, 얼마나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하는지를, 그럼으로써 얼마나 온전한 그대 자신이고 싶어하는지를.
그대여, 그저 오게 하라.
상대를 그대가 지배자로 통제하는 관계의 문제 속으로가 아닌, 그대와의 만남 속으로 그저 오게 하라. 상대를 그대의 상대로 초대하여 그저 이렇게 말하라.
"대단하다. 널 새롭게 봤구나."
그저 그대가 감동이다.
Damien Rice - Trusty and True
We've wanted to be trusty and true
우린 서로에게 신뢰롭고 진실되기를 원했어요
But feathers fell from our wings
하지만 앙상한 몰골만 남았죠
And we've wanted to be worthy of you
우린 가치있게 되기를 원했어요
But weather rained on our dreams
하지만 그 꿈은 비오는 날처럼 흐려졌죠
And we can't take back
우리는 돌이킬 수 없어요
What is done, what is past
끝난 것을, 과거를
So fellas, lay down your fears
그러니 친구여, 이제 두려움을 내려놓아요
Cause we can't take back
우리는 돌이킬 수 없죠
What is done, what is past
끝난 것을, 과거의 것을
So let us start from here
그러니 이제 우리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요
We never wanted to be lusty or lewd
우리는 결코 서로를 탐욕으로 대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Nor tethered to prudish strings
그렇다고 고상한 척 하지도 않았죠
And we never wanted to be jealously tuned
우리는 질투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Nor withered into ugly things
추한 모습으로 변해가기를 원하지도 않았죠
But we can't take back
하지만 우리는 돌이킬 수 없어요
What is done, what is past
지나간 것을, 우리의 과거를
So fellas, lay down your spears
그러니 친구여, 이제 그 창을 내려놓아요
Cause we can't take back
우리는 돌이킬 수 없죠
What is done, what is past
끝난 것을, 과거의 것을
So let us start from here
그러니 우리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요
And if all that you are
지금 당신의 전부가
Is not all you desire,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니라면
Then, come
자, 오세요
Come, let yourself be wrong
당신이 잘못해도 괜찮아요
Come, it's already begun
이미 새롭게 시작되었어요
Come, come along
이리 와요
Come with fear, come with love
두려움과 함께, 사랑과 함께
Come however you are
당신이 어떠한 사람이든 오세요
Just come, come along
그저 오세요
Come with friends, come with foes
당신의 친구들과 함께, 당신의 적들과 함께
Come however you are
당신이 누구일지라도 오세요
Just come, come along
그저 이리 오세요
Come with me, then let go
나와 함께 해요, 그리고 흐르게 해요
Come however you are
당신이 어떻든 간에 오세요
Just come, come along
그저 오세요
Come so carefully closed
조심스레 들어오세요
Come however you are
당신이 어떻든 괜찮으니 오세요
Just come
그저 오세요
Come, come along
이리 오세요
Come with sorrows and songs
슬픔과, 노래와 함께 오세요
Come however you are
당신이 어떠하든지 오세요
Just come
그저 오세요
Come, come along
와서 함께 해요
Come with yourself be wrong
당신이 잘못된 존재여도 괜찮으니 오세요
Just come on
그저 오세요
Come however you are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어서 오세요
What is done, what is past
당신의 지난 일들, 당신의 과거는 괜찮아요
So let us start from here
우리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