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강론"
실존 이것은
진정한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세상과 싸우며
그 소중한 나의 이야기를
지켜내가는
소영웅주의를 뜻하는
개념이 전혀 아니다
무협지에서 어떤 작가가
그런 식으로
실존을 묘사하더라
많이 부끄럽더라
실존이 무슨
철학적 중2병이라도
되는 줄 알겠더라
사실존재의 준말이
실존이라고만 알아도
흑염룡은 봉인될텐데
실존은
눈앞에 이미 있는
단순하고 명료한
사실들에
눈을 뜨는 것이지
거짓된 세계를
벗어나 있는
진정한 자기의
이야기라고 하는
진실에
눈을 뜨는 것이 아니다
후자를 판타지라 한다
실존은 그 모든
진실의 판타지를
해체해서 엿바꿔먹는
사실의 망치다
망치가 입이 있어
소리를 낸다
너의 진실은 됐고
인간이라는 사실을
너를 통해
내게 말해다오
실존하는 개인이란
고유한 자기의 이야기를
써가는 작가주체가 아니라
단순하게 인간의 대표자다
개인의 실존이란
자기의 구체적 조건으로
인간을 대표해 살아가는
상호주관자의 삶이다
남들과 다른
진정한 나의 길이 아니라
나의 몸으로
인간 모두를 사는 삶이다
나는 남들 신경 안쓰고
내 일을 했을 뿐인데
인류에게는
내일을 위한 한 걸음이
되는 존재방식이다
이 존재방식이 대체
왜 멋있는지는 몰라도
그게 뭔가 멋있다는 건
그냥 알 수밖에 없어서
무협지에도 잘들만 쓴다
그럼
정말로는 왜 멋있냐고?
빛나고
강하고
정직하니까
용사의 속성이고
바로 인간성 그 자체니까
용기는 언제나
사랑할 수 있는 용기며
인간의 인간됨은
사랑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서 비롯한다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 어떤 조건으로도
그 모든 조건을 넘어
사랑하는 것을 향해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다
그가 바로
인간의 대표자인 까닭이다
사람들은
실존하는 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며
또 꿈꾼다
아직도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아직 아무 것도 늦지 않은
사랑의 약속을
오랜 약속을 지키러
우리는
노란 손수건이 나부끼는
동산으로 떠난다
용사니까
빛나고
강하고
정직하니까
실존한다는 것은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그 오랜 약속들의
성취라는 사실에
눈을 뜨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하고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