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은 연애중개업이다"
심리상담사라는 직업과 가장 반대편에 있는 직업군은 바로 연예인이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이들이 자신은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은 것이라는 오해를 자주 하곤 한다. 자신에게는 심리학 및 심리상담의 재능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다음과 같은 경험들을 통해 생겨난다.
- 어렸을 때 엄마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었더니, 사람 마음에 공감을 잘한다며 엄마가 칭찬을 해주었다.
- 술자리에서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더니, 친구들이 너랑 이야기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인정을 해주었다.
- 남자친구 때문에 속상해하는 아이의 고민을 잘 들어주었더니, 그 아이가 너랑은 정말 성별을 넘어선 찐친이라며 영원히 우리 우정 변치말자는 말을 해주었다. 물론 그 아이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아이다.
이러한 경험들에는 성취와 좌절의 역사가 동시에 담겨 있다. 타인에게 헌신하며 타인의 감정을 대신 받아주는 자신의 유능한 기술을 인정받은 성취인 동시에, 자신의 사랑은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좌절이다. 그래서 이 경험들은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의. 필.요.는. 채.울. 수. 없.는.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연예인의 인격의 출현이다.
남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그들을 만족시킬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은 목이 마르다. 인기는 바닷물과 같다. 마시면 안 된다고는 알지만 결국에는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사람의 심정이 이러할 것이다.
연예인들은 왜 노래하고 춤추고 간질처럼 발작을 하는가? SOS의 구조신호는 화려해서 눈에 잘 띌수록 좋기 때문이다. 요즘엔 심리학이 시인성이 좋은 소재란다. 마침 자신이 심리학적 재능으로 인정받은 것 같은 경험들도 있다. 성공의 요인들이 정합적으로 퍼즐처럼 맞춰지는 듯이 보인다. "그래 이것은 운명이다. 난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해 태어났던 거야." 이렇게 또 하나의 방황하는 영혼이 탄생한다.
이러한 '심리연예인'들은 대개 두 경우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내담자를 가스라이팅하거나, 내담자에게 엄마가 된다. 하나의 모습이라고 해도 좋다. 내.담.자.를. 구.원.하.기. 위.해. 이들은 이러한 일을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 그들이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심리학을 '구원의 기술'로 바꾸어낸다. 표현 그대로 '상담기술자'가 된다.
이런 상담기술자 놀이를 하면 상담수련생들이 받는 슈퍼비전 시간에 엄청 혼나게 되지만 이들은 두렵지 않다. 슈퍼비전 같은 것은 애초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연예인으로 활동하는 거의 모두가 자신들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상담 슈퍼비전을 받은 일이 없다는 사실은 업계의 비밀이 아니다. 이 말은 무엇인가? 이들은 단 한 번도 상담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예능계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도 연습생 생활을 대개 거치지만, 심리연예인들은 중2병에 걸린 판타지 작가들만큼이나 개념이 없다. 자신들을 정말로 심리학의 천재라고 생각하며, 심리학 분야에서 자기 위에 있는 이는 없다고 간주한다. 고작해야 조언자나 동등한 수준의 동료 정도로 인식할 뿐이다.
보통 이런 작가들이 웹툰계에서나 라이트노벨계에서나 자기 작품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도 심리학이라는 분야에서는 이러한 심리연예인들이 활동가능한 이유는, 아직까지 심리학이 일종의 신비한 마법처럼 인식되고 있는 까닭이다. 자신을 대단히 좋게 만들어줄 것 같은 모종의 '비밀'이 심리학에는 존재하는 것만 같다. 즉, 심리학이 오컬트의 소재가 되어 있다. 집에 놓아두면 애인이 생기게 해준다는 수상한 항아리와 다를 것이 없다.
심리연예인들은 심리학의 용어들을 빌려와 본질적으로는 수상한 항아리들을 팔고자 하는 오컬트상인이다. 심리학적 개념들은 그저 항아리를 신뢰성 있게 위장하기 위해 활용되는 과학적 포장지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사실 무용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수상해보이는 모습 그대로 항아리를 팔아도, 잠정적인 구매자들은 그것을 구매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인가? 구매자들에게 심리연예인이 연애의 대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확하게, 외로운 할머니에게 자주 찾아가 말을 거는 세일즈맨의 의도를 할머니가 다 알면서도 그가 파는 상품들을 사주는 일과 같다.
연예인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더. 많.은. 이.들.에.게. 연.애.의. 대.상.이. 되.기.를. 꿈.꾸.는. 이.다.
기술자란 무엇인가? 자.신.의. 능.력.으.로. 문.제.를. 유.능.하.게. 풀.어.내.는. 이.다.
그렇다면 심리연예인이란, 심리학이라는 기술을 통해 자신이 더욱더 연애의 대상이 되는 일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연예인의 오컬트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 또한 심리연예인과 똑같이 연애에 굶주린 외로운 이들이다. 누군가가 "내가 여러분의 연애대상입니다!"라고 외치니까, "우왕, 내가 찾던 그게 저기 있구나."하며 우르르 몰려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심리상담이 아니다.
만약 결혼중개회사의 대표가 자신이 배우자를 얻기 위해 회사를 차린다고 해보자. 그 회사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심리상담도 마찬가지다.
심.리.상.담.은. 연.애.중.개.업.이.고, 심.리.상.담.사.는. 연.애.중.개.인.이다. 심리상담사는 내담자가 그 자신의 마음과 또는 타인과 연애할 수 있도록 중개해주는 이일 뿐, 그 자신이 내담자의 연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아니, 되어선 안 된다. 이것은 상담자윤리다. 이는 심리상담이 이루어지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확립되어 있는 상담자윤리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상담자 자신이 내담자의 연애의 대상이 되기 위해 상담활동을 전개할 때, 이것이 바로 내담자 착취다. 훈련되지 않은 상담자들이 자신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내담자를 남용하는 일이다.
심리상담의 활동을 연애중개업으로 비유하는 일은 정말로 적절한데, 내담자들은 만남과 사귐 그리고 헤어짐이라는 연.애.의. 과.정.과. 똑.같.은. 삶.의. 과.정.에서 문제를 경험해 상담실에 찾아오는 까닭이다. 즉, 내담자에게는 이미 좋아하는 연인이 있다! 내담자 자신의 삶이 그 연인이다. 자신의 삶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고 싶어 내담자는 상담을 받고자 한다.
그런데 심리연예인의 특성을 가진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그의 연인 대신에 상담자를 연애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종용한다. 내담자에게 가스라이팅을 시도한다. 자신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고, 자신처럼 살면 그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된다는 방식으로 내담자를 유혹한다. 이들이 내담자를 유인하기 위해 쓰는, 내담자의 삶을 바꿔줄 '비밀'이란 결국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이다. 결혼사기를 위해 보여주는 가짜통장과 다를 바가 없다.
사기라도 쳐서 연애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심리연예인에게는 가득하며, 사기에라도 넘어가서 연애를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그 구매자들에게도 가득하다.
그래서 사실 상담자인 것처럼 활동하는 심리연예인들이야말로, 심리상담의 대상자들이다. 누구보다 빨리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이들이다.
심리상담은 분명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하.도.록. 조.력.하.는. 일.이다. 개인의 연애능력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일이 어려워질 때는 상담자가 자신을 내담자의 연애대상으로 위치시킬 때다. 그것은 내담자의 연애능력을 더욱 무능력하게 만드는 일이다.
왜 그런가? 이것은 상담의 구조적 특성과 관련된다. 상담이 이루어질 때 생겨나는 상.담.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상담자가 조금 위로 내담자는 조금 아래로 가게 되는 작업적 구조를 갖는다. 잘 훈련된 상담자는 이 구조에 대한 자각 속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상담이 종결될 때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양도해준 힘을 다시 돌려준다. 상담이 성공적으로 가능할 수 있었던 그 모든 힘이 다 내담자 자신의 힘이었음을 전한다.
반면 심리연예인들은 오히려 이 구조를 자신이 내담자를 획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다. 클럽이나 길거리 등지에서는 자기가 말을 걸어도 무시할 것 같은 이성의 내담자가, 상담장면에서는 상담자인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보며 말을 잘 듣는 현실이 출현한다. 심리연예인에게 이것은 기적 같은 기회다. 자신의 외모가 별로고 돈이 없어도, 심리학만 얘기하면 이성들이 자기의 말에 관심을 갖는다니! 카사노바의 길이 눈앞에 열린 것만 같다. 아, 이것인가. 이것이 바로 인류의 5%만이 알고 있다는 그 '비밀'이었던가. 그렇게 심리연예인들은 내담자 착취의 길로 접어든다.
그러니 심리연예인들에게는 자기가 조금 위에 있고 내담자가 조금 아래에 위치하는 상담관계의 임의적 구조가 항구적으로 유지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자기가 연애대상인 내담자에게서 버림받지 않을 것 같아서다. 만약 입장이 정말로 평등해지면, 내담자는 이러한 자신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자신은 늘 그랬듯이 이성에게 인기없는 모습으로 돌아가고야 만다. 이것만은 피해야 한다.
심리연예인들이 늘 새로운 정보와 경험을 축적하여 내담자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는 그 이유다. 매번 새롭고 더 좋은 진정한 것을 이제 자신이 얻었다며 이들은 상위의 존재인 것처럼 자기를 홍보한다. 그러나 이 일에도 한계가 있다. 지속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리하여 궁리된 보다 쉬운 길은 내담자를 더 아래로 무력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을 눈치챈 심리연예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내담자가 얼마나 가엾고, 약하고, 그럼에도 온전한지를 알아주느라 정신없이 분주하다. 가스라이팅도 부지런한 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내담자를 어떻게든 불쌍한 내면아이처럼 만들기 위한 세뇌의 의지는 강렬하다. 그러다가 내담자가 "맞아요. 아무도 제 약함을 이해해주지 않았어요. 더 열심히 하라고만 강요했어요. 전 늘 사랑받지 못한 불행한 존재였어요."라며 울음을 터뜨리면 심리연예인은 말한다.
"약해도 괜찮습니다. 약한 당신의 곁에 제가 있습니다."
포옹하고, 모텔가고, 대충 해피엔드다. 심리연예인은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관계라고 하는 비극의 시작이다. 심리연예인은 모든 연애가 굴절된 형식이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심리연예인의 엄마 아빠도 바로 이렇게 결혼했고, 그 결과로 심리연예인이 자기의 트라우마라고 말하는 가정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힘을 양도받아 생겨난 위계의 구조는, 힘을 가져간 이가 그 힘보다 큰 것을 제공해주어야만 유지된다. 힘을 양도한 쪽은 그러한 것을 얻으려고 자기의 힘을 양도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게임에서 간디가 "옥수수를 가져가고 다이아몬드를 내놓으렴."이라고 하는 일과 같다. 그러니 관계라고 하는 것은 늘 유지되는 일이 어렵다. 유지하는 것만으로 고통이다.
심리연예인은 자신이 기획하는 현실이 이 고통의 현실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유능한 기술로 연애대상을 쟁취했다고 착각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모든 것은 다 무용한 일이다. 가스라이팅도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일어난 일은 다만 심리연예인이 거미줄에 걸린 것뿐이다. 관계라는 거미줄을 펼쳐놓고 자기를 구해주겠다며 달려드는 불나방들을 기다리던 심리거미에게 가장 훈련받지 않은 나방이 포획된 것뿐이다. 바로 이것이 착취의 진짜 '비밀'이었다.
그래서 심리연예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심리상담이 필요한 이들이다. 자신이 착취하려는 의도를 숨기면서 착취하기 위해 활동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착취당한다. 그러면서도 성취감에 도취되어 착취당하는 줄을 모른다. 행위할수록 결핍되는 일이다.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이처럼 관.계.라.고. 하.는. 것.은. 바.닷.물.을. 마.시.는. 일.과. 같.다. 왜 바닷물을 마시게 될까? 망망대해에 있어서다. 망망대해에서 나오면 바닷물을 마실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것이 연애의 방향성이다. 연.애.는. 자.폐.의. 왕.국.에.서. 나.오.는. 일.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자폐적일 때 우리는 반드시 남을 구원하려고 하게 된다. 쓸모없다고 경험되는 자신에서 벗어나 남에게 가장 쓸모있는 구원자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구원자가 되는 한 연애는 전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연애는 '강한 것'이 '강한 것'과 친해지는 일이다. 그런데 남을 구원하려고 하는 이는 이미 자기가 약하다고 경험하는 이뿐이다. 그래서 이러한 구원자는 '약한 것'만을 찾아다닌다. 본질적으로 '약한 것'과 '약한 것'의 친교를 꿈꾼다. 이것이 바로 관계다. 약하니까 관계를 통해 힘을 합치면 강해질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착각이다. 실제적인 관계에서는 상대에게 자신의 힘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서로를 더 약하게 만드는 일만이 일어난다.
심리상담은 약한 것을 잘 돌봐주는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를 강한 존재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필.요.를. 자.신.이. 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강한 것이다. 자신의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직할 때 이는 가능하다. 그렇기에 심리상담은 자신의 정직성을 발견해가는 활동이 된다.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이며, 곧 자.신.과. 친.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필요를 알려주는 것이 마음이다. 그러니 자신과 친해진다는 것은 마음과 친해진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마음과 연애하는 일이다. 정직해서 강한 이에게 이 연애가 가능하다. 또한 이렇게 정향된 연애의 운동은 밖을 향해서도 동일한 방향성을 갖는다. 마음과 연애할 수 있는 이가 사람과도 연애를 잘하게 된다. 그 근간에는 정직성이 있다. 이것은 그 어떤 '비밀'도 아니다. 연애에는 성공을 위한 비밀이 없다. 아무 것도 숨겨져 있지 않다.
심리상담은 결국 아무 것도 숨겨져 있지 않다는 이 사실을 밝히는 일이다. 왜? 그것이 연애중개인의 일이기 때문이다. 숨겨져 있지 않은 것을 숨겨진 비밀인 것처럼 조작하면, 나아가 자신이 그 비밀을 아는 유일한 주체인 것처럼 행세하며 자신에게 모든 힘을 집중시키면, 중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라. 우리가 새로 살 집을 구하러 갔는데 부동산중개인이 매물에 대한 사실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는 그를 신뢰할 수 없다.
심리상담을 배우는 수련생들이 상담에 대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분명 이 지점이다. 자신이 내담자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상담실에 들어가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초조하기만 하다. 내담자를 만족시켜주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며 시계를 보니 고작 10분이 지나있을 뿐이다. 이렇게 상.담.자. 자.신.이. 마.치. 소.개.팅.에. 나.간. 당.사.자.가. 되.어. 있.을. 때. 모.든. 것.이. 어.려.워.진.다.
자신이 내담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상담자가 되고자 한다면, 적성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연예기획사들을 찾아가 연습생이 되는 편이 낫다. 만약 외모와 재능이 일정 이상이 되지 않는다면 유튜버나 BJ의 길도 있다. 글 좀 쓴다고 자신만만하면 서브컬쳐계의 작가가 되어 대박을 노려라. 그 모든 것이 힘들다고 생각할 때, 심리상담을 떠올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가, 그래도 요건 할 수 있겠다며 택하는 가장 저질의 연예활동이 심리상담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연애에 실패하고, 그 대체재인 연예에도 실패했다고, 남들에게 호박엿을 먹일 이유는 없다.
자신은 내담자를 연애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은 하나, 그 자신에게 연애가 결핍되어 있을 때 일어나는 상담자의 모습이 있다. 이것은 연애적 요소들을 상담관계에서 소비하지만, 직접적인 연애대상은 아닌 것처럼 위장할 때 생겨나는 모습이다. 심리적 엄마로 활동하는 상담자의 모습이 그러하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엄마와 유착되어 있는 이들이 엄마와의 관계를 연애의 원형으로 보며 이러한 일을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연애가 결핍된 이유는 이들이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실제의 대상과도 연애를 해서 거듭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패한 연애방식을 가져와 내담자에게서 연애의 이득들을 얻고자 적용하는 동시에, 이것은 연애가 아닌 것처럼 기만하고 있기에, 이 심리적 엄마로 활동하는 상담자들은 연애가 더욱 힘들다. 그럼에도 자신은 내담자의 연애대상이 아니라 마치 중개인인 것처럼 자임하기에 이것은 답이 없는 길이다.
"내담자와 연애하지 말고 내담자의 연애를 중개하라."
이것이 답이다. 이 짧은 답을 이토록 길게 쓰고 있는 이유는, 연애중개인이 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서다. 함정이 많으며, 함정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신이 함정에 빠진 것을 몰라 더 고생한다. 중개인으로서의 감수성이 깊어지기 전까지는 심리상담은 어려운 일이다. 이론의 습득이나 기술적 실천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바로 상담자로 존재하는 일이 어렵다. 표현은 이렇게 했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에 정직한 일이 어렵다고 말하는편이 나을 것이다. 특히 연애라는 현상 앞에서.
그저 중개인일 뿐이라면, 자신은 또 다른 님을 향해 떠나가는 갑돌이, 갑순이를 눈앞에서 무력하게 다시 지켜봐야만 할 것 같다. 상담자님 이 우정 영원히 변치말아요, 라며 님이 가신 그 자리에는 자기 홀로 남겨진다. 모두의 연애를 위해 헌신했지만 자신만은 늘 외톨이의 신세처럼 생각된다.
"연애의 완성은 이별이다."
이 말이 당신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이것은 비극에 대한 말이 아니다. 평생을 옆에서 함께한 좋은 이와도 우리는 반드시 이별하게 된다.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우리 곁에서 그가 사라졌을 때, 사라진 그도 계속 사랑하겠다고 하는 고백 속에서 연애는 비로소 완성된다.
사.랑.은. 그.의. 살.아.짐.만.이. 아.니.라. 그.의. 사.라.짐.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사라질 것들까지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우리의 필요였다. 이것이 정말로 자신의 필요라는 것을 알고 그 필요를 스스로 채우기 위해 사랑하는 이는 강하다. 사랑했던 것을 이별할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하고 있는 이는 정말로 강하다.
만남과 사귐 그리고 헤어짐을 통째로 분리될 수 없는 삶의 모습으로 이해하는 이가 연애중개인이 된다. 바로 이러한 삶과 내담자를 중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상담자는 누구보다 정직하게 이별과 친할 필요가 있다. 사라짐 또한 또 하나의 온전한 존재방식이라는 이해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상담자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감? 경청? 심리적 테크닉? 다 부차적인 이야기들이다. 아낌없이 이별하는 만큼 좋은 상담자가 된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기 때문이다.
연애중개업은 더 많이 이별을 경험하는 활동이다. 둘 사이의 중개니 이별은 늘 두 배다. 그렇다면 "내담자와 연애하지 말고 내담자의 연애를 중개하라."라고 앞서 말했던 이 말도 다른 층위에서 다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중개한다는 것은 늘 두 배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담자라는 대상과만 연애하지 말고, 내담자라는 사람과, 내담자가 연애하고자 하는 바로 그 마음 또는 바로 그 사람까지, 상담자는 사랑할 필요가 있다. 그 필요가 우리 자신이 상담자가 되고 싶다고 느끼는 바로 그 필요다. 더 크게 사랑하고 싶어하는, 그렇게 자신이 가진 사랑의 크기를 더 거대한 것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중대한 필요다.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이가 되고자 하는 이것이 당신의 필요가 맞다면, 당신에게는 연애중개업이 무척 잘 어울린다.
연애는 '사랑할 수 있는 것'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친해지는 일이다. 그 일은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의 터'에서 일어난다. 연애중개인은 이러한 사랑의 플랫폼이며, 당신이 그 플랫폼이다. 꽃과 같다. 사랑하고 싶은 나비들이 날아온다. 당신에게도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