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트레이닝: 자존감의 회복"
자존감(self-esteem)이라는 표현을 우리에게 제안한 것은 실용주의 철학자이고, 종교심리학자이며, 미국의 실존상담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한 윌리엄 제임스다. 제임스가 어떠한 일을 했는지를 자세히 묘사하는 이유는, 자존감이라는 개념이 대체 어떠한 맥락에서 생겨났는지 그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자존감이라는 표현은 실용, 종교, 존재의 그 모든 함의를 다 담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단지 "자신을 존중한다."라고 하는 표면적인 뜻보다는 더 깊은 층위를 가리킨다. 사실 자신을 존중하자고는 하지만 우리는 대.체. 자.신.의. 무.엇.을. 존.중.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자존감의 뜻을 잘 살피면 그것을 알 수 있게 된다.
esteem과 estimate는, aestimare라는 동일한 라틴어 어원을 갖고 있다. 이는 가치를 평가한다는 함의를 띤다. 그리고 이는 ais-temos에서 유래하였다. 이 뜻은 '구리를 자르는 이'다. 구리를 왜 자르는가? 동전을 만들기 위해서다. 물물교환에서 화폐경제로 넘어가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누군가가 빵을 한 바구니 들고 오면, 그것을 평가하는 이는 빵의 가치에 대응되는 구리화폐를 제공한다. 곧 구리를 자르는 일이란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서 아무 의미도 없던 구리가 동전으로 그 모양새를 바꿈으로써 인간을 위한 '의미'가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리를 자르는 일은 이처럼 의미와 연결된다. 또한 동전이 사용됨에 따라 경제적 '실용성'이 증대하였다. 물물교환의 현물보다 동전은 가볍고, 편리하며, 신속했다. 그러니 경제가 더욱 활성화되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종교적 맥락에서 다루어지는 '의미'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원래 '실용'의 문제와 분리되지 않은 것이었다. 실제로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이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의미를 물을 때, 이는 쓰임새를 묻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삶.에. 쓰.일. 데.가. 없.다.면. 그.것.은. 의.미.가. 아.니.다. 그러니 "의미가 인간을 구원한다."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의미는 이념(또는 신념)이 아니다. 우리는 의미있는 것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 실은 이념을 추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게 자기의 삶에 아무 쓰임새도 없는 이념을 진리처럼 추구함에 따라 우리는 무의미한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의미와 이념은 사실 헷갈릴 수가 없다. 이념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지만, 의미는 추구될 수 없다. 그것은 드러나는 것이다. 이념은 목적이 되지만, 의미는 결과일 뿐이다. 둘 다 어떠한 작용의 끝에 있다는 차원에서는 혼동될 수 있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개인에게 체험되는 양상 또한 상이하다. 이념은 자기만족적이고 의미는 자기구원적이다. 이것은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와도 동일하다. 이념은 자존심을 강하게 하고, 의미는 자존감을 회복하게 한다.
실용과 종교의 맥락에서 현재 자존감의 함의를 살펴보고 있다. 그렇다면 존재의 맥락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구리동전을 봐보자. 의미롭게 쓰임새가 있는 동시에, 그 빛과 색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름다움! 이것은 존재의 고유한 특질이다. 그리스도교의 신화에서는 전한다. 창조주는 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보기에 참 좋구나."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는 뜻이다. 천상병 시인은 또한 노래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존.재.한.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런데 존재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라는 맥락을 가진다. 그러니 존.재.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이것을 온전함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것이 쓰임새도 좋고 의미롭기까지 하다. 가히 완벽하다. 무엇이? 아니 누가?
바로 당신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존감이라는 개념이 당신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다.
당신은 아름답고, 세상과 당신 자신에게 빛과 소금이며, 그러한 의미로 드러나는 온전한 존재다.
당신 자신이 이렇다는 사실을 알아볼 때, 자존감은 회복된다. 자존감의 가장 잘 알려진 뜻은 '자기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무엇을 존중해야 하는가? 자.신.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이.다. 그 사실 속에 실용과 의미와 온전한 아름다움이 다 담겨 있다.
나아가 자존감이라는 표현은 실천적 의도까지도 이미 내포하고 있다.
esteem을 es + teem으로 본다면, 이것은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뜻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self-esteem은 '자기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 의도가 쉽고 분명하지 않은가? 자존감의 실천적 의도는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니 자존감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용적 능력을 갖추며,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음으로써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준비를 충분히 다 마친 후에야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세상에 나가는 경연대회 같은 일이 아니다.
바로 지금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도 정확하지는 않다. 존.재.는. 이.미. 드.러.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터 데뷔처럼 "저기, 저 존재인데, 저도 이제 슬슬 놀이터에 입장해볼게요."하며 놀이터의 인기인을 꿈꾸는 일은 궁색하다. 오늘날 인기에 대한 극렬한 강박과 집착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최대치로 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분명 우리가 자존감의 문제를 호소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제목은 정말 잘 지은 제목이다. 그 짧은 한 마디로 자존감의 핵심을 묘사하고 있다.
요는 '정직성'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할. 때. 자.존.감.은. 회.복.된.다. 정직한 것이 아름답고, 실용적이며, 의미깊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온전함이라는 표현을 더욱 일상적인 말로 바꾸어 쓰자면, 정직한 것이 멋.지.다.
당신은 어떠한 것을 멋지게 느끼는가? 사람들이 당신을 보며 좋아해줄 것 같은 소재 말고, 당신이 정말로 멋지게 보며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그것을 해보자. 이것은 트레이닝이다.
1) 활동할 기간을 정한다.
2) 당신은 좋아하나 남들에게는 무의미해보일 멋진 개소리를 하자.
3) 당신은 좋아하나 남들에게는 추해보일 멋진 병맛의 옷을 입자.
4) 당신은 좋아하나 남들에게는 무용해보일 멋진 바보의 일을 하자.
5)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듣는다.
6) "멋있어."라며 감동해준 이를 평생 교류할 목록에 넣는다.
7) "이상해." "안 어울려." "귀신 들렸니?" 등의 말을 들은 수만큼, 자존감 점수에 100점씩을 더한다.
8) 해당의 기간 동안 몇 점의 자존감이 회복되었는지 확인한다.
9) 기간을 해제하고 싶어지면 다 회복된 것이다.
최소점수 300점이 넘으면 실존상담자가 되기에 아주 훌륭한 품성을 갖추었으니, 같이 배우러 오면 좋겠다. 황금동전처럼 더욱 아름답고, 더욱 실용적이며, 더욱 의미깊은 사람이라 그 빛과 색에 탐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