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인간감"
교과서라면서 왜 이러한 방식으로 글을 쓰냐면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실존상담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실존하도록 돕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실존의 감각으로 사는 일을 돕는 것이다.
어떠한 것을 정말로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감각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사실 '학습'으로는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우리에게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떠한 배움의 서술은 불가피하게 '학(學)'으로 될 수밖에 없지만, 그 체화는 오직 연습뿐이다.
배.움.은. 배.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활'이 되는 것이다. 연습은 생활이다. 옷에 향기가 배이게 하는 일에는 요령이 있는가? 모종의 핵심적 원리를 정보로 얻어 적용하면 이루어지는 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향기가 있는 터에서 자리를 잡고 생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계속하기를 계속하기."
이것을 하지 못해서 자신은 연극계를 떠난다고 하던 한 연극배우 친구가 남긴 말이다. 그 친구는 스타가 되고 싶었다. 머리도 아주 좋고, 표현력도 받쳐주며,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정서적 울림이 분명했다. 반짝이는 재능이 있었다. 그렇게 그는 반짝였고, 이내 사라졌다.
반짝였다 사라지는 이 생멸의 과정을 계속하는 일이 생활이다. 늘 반짝이는 것은 생활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잠.들.어. 있.는. 침.묵.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 생.활.을. 형.성.한.다. 당연한 말이다. 잠들지 않고 늘 환히 깨어 있고자 하는 것은 불면증이다. 불면증은 오히려 생활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생활한다는 것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만이 아니다. 아.무.도. 우.리.를. 모.른.다. 이것은 고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고독 속에서 실은 생활이 무르익는다. 위스키가 깜깜한 창고에 보관된 오크통 안에서 숙성되어 가듯이, 우리는 무지(無知)의 고독 속에서 성숙되어 간다.
성숙된 우리는 이제 눈이 깊어진다. 보.는. 눈.이. 생.긴.다. 깊이를 알아볼 줄 안다. 무지가 다른 것으로 알아봐진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미지(未知)'다. 생활은 '무지'를 '미지'로 바꾸어내는 이 '화학작용'을 이루는 성숙의 과정이다.
미지의 다른 이름, 그것은 '신비'다.
'계속하기를 계속하기'는 삽질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신비로 알아볼 수 있는 우리의 깊은 눈을 열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전부다. 왜인가? 한번 상상해보면 된다. 그 깊은 눈이 문득 우리 자신을 향하게 된다면 대체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를.
우리는 살아오면서 깊은 눈을 가진 이들을 제법 만나왔다. 돌이켜보면 그 사실은 분명하다.
아름다운 이름들을 떠올려보고 싶다.
우주를 불지옥에 수억 번 쳐넣을 저주의 언어들로 써내려간 리포트를 읽고는 자꾸 눈물이 나와 새벽 내내 우셨다며 미소로 눈길을 건네주시던 윤공부 목사님.
"교수님은 상담자이면서도 수행자이신데 왜 불고기를 이렇게 잘 드세요?" 여쭈었더니, "응 그냥 대충 살아."라며 소년처럼 맑고 가벼운 눈빛을 선물해주시던 김명권 선생님.
죽고 싶어 며칠간 잠도 자지 않고 사방을 걷기만 하던 날들에, 그렇게 사방이 다 막혀 있던 시간들에, 망우리 고개를 같이 오르고 또 내리며 눈높이를 맞추어주시던 한나정 선생님.
잃은 이의 향기를 맡고는 그리워서 무작정 찾아갔는데, 또 다른 그리움이 된, 아주 그윽한 눈동자의 향기로 남아주시던 법우님.
그리고 침묵 속에서 무르익어갈 그 모든 것을 지키고 있던 깊은 눈, 그저 그것으로 있어주시던 강병석님.
우리는 이 깊은 눈을 가진 이들에게서 분명 어떠한 감각을 경험했다. 그것은 그 깊은 눈이 일깨운 감각이었다.
이 감각은 생존보다 깊다. 더 원초적인 것이다.
이 감각은 성장보다 높다. 더 고귀한 것이다.
이 감각은 진화보다 빠르다. 더 즉각적인 것이다.
이 감각은 발전보다 앞이다. 더 나아간 것이다.
이 감각은 변화보다 강하다. 더 실용적인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누구이게끔' 하는 그 모든 일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실.존.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다.는. 그. 감.각.이.다.
바로 '인간감'이다.
인간에서 시작해 인간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을 긍정하는 단 하나의 방식은, 우리가 인간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자리를 점하고, 여기에 인간이 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어느 자리에서나 이 '인간감'의 감각으로 산다면 우리는 자신을 잃지 않는다.
인.간.을. 계.속.하.기.를. 계.속.하.기.
이것은 정체성의 일 따위가 아니다. 자신은 정체성 따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배다. 창조주는 정체성 따위 창조한 적이 없다. 자신의 형상을 닮은 당신이 그저 인간이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과거의 선생들이 남긴 이야기를 이어받아, 현생의 내 이야기를 멋지게 꽃피우며, 그 인류의 결실을 후생을 위한 이야기로 전해가는 것이 인간인가?
인간은 이따위 것보다 더욱 멋진 것이다.
이. 우.주.는. 통.째.로. 나.의. 역.사.다.
이것이 인간선언이다.
우주 전체가 집대성된 그 최종의 마스터피스가 인간이다.
성장? 진화? 발전? 웃기는 소리다.
당.신.은. 대.체. 당.신.이. 얼.마.만.큼.의. 존.재.인.지.를. 모.른.다.
당.신. 하.나.가. 우.주. 전.체.의. 질.량.과. 맞.먹.는.다.
당.신.이. 없.다.면. 이. 우.주.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이 '인간감'이다.
이것을 이제 당신은 조금 안다.
좋은 책을 만나서 다행이다.
이 책은 인간을 배워가는 교과서다. 표현 그대로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인간을 배워간다.
이렇게 인.간.을. 배.워.가.는. 이. 감.각.이 여러분에게 전해야 할 전부다.
눈을 깊게 하고, 깊어진 그 눈을 우리 자신에게로 향해보자. 그러면 무슨 일이 생겨날지를 정말로 알아보자.
우리 한번 같이 인간을 연습해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