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싸이비로 전생하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그런 날이 있듯이, 그에게도 그 날은 그런 날이었다.
가능할 거라고 믿었다.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게 증명될 거라고 믿었다.
남들과는 다르다. 어릴 적부터 왠지 모르게 자신은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평범하게 보일지라도,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향기가 자신에게는 풍겨온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서는 유독 강하다.
엄마가 자신을 충분히 사랑해주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그녀는 아마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을 것이다. 이렇게 고귀하고 똑똑한 존재가 자기의 자식일리가 없다. 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은 것도 이 남의 자식의 놀라운 재능에 대한 질투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기의 유전자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천재성 앞에서 그는 얼마나 큰 좌절을 거듭하며 대체 몇 병의 소주를 홀로 들이켜야만 했을까?
생각해보면 참 불쌍한 양반들이다. 돈 몇 푼에 허덕여가며 가족에 대해서도 폭언을 일삼는 기구한 팔자가 안쓰럽기 그지 없다. 신의 아들인 자신이 이 양반들의 몸을 빌려 태어난 것도 이들의 불쌍함을 구원해주라는 하늘의 큰 뜻이었겠지.
그래, 당신들도 온전하다. 내가 다 품어줄 것이다. 이제 진정한 내 자신을 말할 때가 온 것이다. 그 날은 정말로 그런 날이었다. 진정한 나의 역사가, 나만의 그 길이 시작되는 날, 바로 오늘이다. 다들 내 인생의 연주를 지켜보도록 해. 나는 이제 날아오른다.
그 날은 본드를 불던 청소년들이 장풍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노래방 벽을 주먹으로 부수고, 만취한 샐러리맨들이 토르라도 된 양 웃통을 까고 여대 앞을 서성이며, 그가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킥보드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었던 바로 그런 날이었다.
물론 가능했다.
인간이 트럭에 치여 죽는 일이 가능하듯이, 킥보드와 함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그가 의식을 잃어가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는 한 목소리를 들었다.
"용자여, 겨드랑이에서 특별한 향기를 풍기는 용자여, 당신의 소중한 꿈을 잘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의 당신은 상냥하게 품어질 것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앞에는 바람을 잘 날릴 것 같은 풍요로운 월남치마를 입고 있는 한 여성이 서있었다.
"혹시...... 당신은...... 여신....님.....?"
"역시 남들과는 다르게 현명하고 고귀한 존재로군요. 저는 당신처럼 똑똑한 사람들이 진정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병렬우주의 절대신이에요. 줄여서 병신이라고 불러주세요."
"아..... 병신님....... 역시 하급한 인간의 편견어린 언어를 초월해 계시는 순수함이 느껴집니다."
"후훗. 당신처럼 똑똑하고 귀여운 사람만이 그 순수함을 알아보죠."
"테츙~ *^0^*"
"자 이제 당신의 소원처럼 진정한 당신의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었나요? 당신이 이제부터 갈 곳은 심리학 이세계란 곳이에요. 당신 같은 마음의 천재들이 무한한 그 재능을 유감없이 펼칠 수 있는 곳이죠."
"아..... 아..... 저, 저 심리학 잘 알아요! 완전 전문가에요! NLP 비디오도 3주간 시청했고, 빈의자기법도 할 줄 알아요. 집에 소인격체 클리닉 그 책도 있어요. 멘탈리스트 드라마랑 융 만화책도 봤는뎅."
"역시 제가 선택한 용자는 과연 다르군요. ^^"
"부끄부끄. *^A^*"
"남다르게 머리가 좋은 당신의 천재성을 살려 당신의 직업적성은 '대현자'가 될 거예요."
"그게 진정한 저죠."
"맞아요. 그리고 대현자인 당신을 위해 치트능력을 2개 주도록 할게요. 원래는 1개만 주는데, 당신은 유달리 똑똑한 천재니까 1개를 더 주는 거예요. 우리 대현자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아싸!"
"첫 번째는 모든 것을 가장 귀하게 알아볼 수 있는 '시선의 힘'을 당신에게 줄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을 저를 보듯이 가장 귀한 것으로 볼 수 있게 될 거예요."
"아.... 심리학 세계의 모든 것을 병신으로 볼 수 있다는 거죠?"
"맞아요. 그 어떤 심리학의 소재라도 병신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당신의 힘이에요."
"좋아쓰. 기다려라. 이제 곧 내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다 병신으로 알아줄테니. ㅠㅠ"
"기대가 커요.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병신들에게 응답할 수 있는 놀라운 '언어의 힘'을 줄게요. 이건 자기가 병신인 줄 모르는 병신들이 진정한 병신으로 스스로를 자각하도록 돕는 마법의 언어술이에요. 이 마법의 언어술은 주문을 통해 발동해요. 자 영창을 따라해보세요. '그것도 온전합니다.'"
"그것도 온전합니다."
"잘했어요. 이 두 치트능력들만 잘 활용하면, 당신은 심리학 이세계에 민주주의를 실현할 진정한 왕이 될 거예요. 모두가 당신의 부드러운 권위 아래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쳐갈 수 있게 될 거예요. 당신이 바로 심리학의 구원자가 될 거라구요."
"저 꼭 해내겠어요. 불쌍하고 안쓰러운 모두를 제가 지켜주겠어요!"
"좋아요. 심리학 이세계를 구원할 당신과 같은 존재들을 부르는 이름이 있어요. 심리학의 psychology와 존재의 be를 합쳐서 'psy-be'라고 불러요. 발음해보세요. '싸이비.'"
"싸이비."
"그래요. 당신은 지금부터 진정한 싸이비의 길을 떠나게 될 거예요. 자 그럼 즐거운 여행 되기를요. 우리 자랑스러운 대현자님. 늘 제가 옆에 있을 거예요.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우리 멋진 싸이비 녀석."
풍경들이 신기루처럼 녹아내리고 다시금 의식이 흐려지는 가운데, 무엇인가 확신에 가까운 심증이 그의 가슴에서 북받쳐오른다.
"혹시..... 혹시 당신은......."
"I am your mother. ^^"
"ㅠㅠㅠㅠㅠㅠㅠㅠ"
그 날은 그런 날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는 이세계로 그가 전생한 날이었다. 심리학 이세계에서의 싸이비의 모험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이 연작물은 싸이비의 위대한 여정을 따라 심리학 이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종의 지도로서 구성될 것이며, 후대의 양식있는 이들에게는 킥보드의 위험성을 알리는 정직한 기록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