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내가 심리학 이세계에서는 대현자입니다만?

"에필로그: 그리고 현재"

by 깨닫는마음씨




# SCP 재단의 경우


자신이 언제라도 세상을 끝장낼 수 있는 극도로 위험한 힘을 지닌 대재앙급의 존재라며 재단에 끊임없이 연락을 취해온 인물에게, 우리는 해당인물이 700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기술해온 자기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이 안건이 재단에서 논의될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자신에게 신속히 확보, 보호, 격리의 조치를 취하여 '특별한 존재'로서 자신을 관리해달라는 해당인물의 요청은, 이 세상에 아무런 위험성없이 무해하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물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재단의 임무와 매우 동떨어진 요청이라고 평가됩니다. 나아가 재단에서 다루는 '초현실성'의 소재와 '현실부적응성'의 소재는 전혀 다른 것임을 밝힙니다.


또한 자신을 '대현자 싸이비'라는 특별한 별칭으로 부르며 최고의 SCP로 지정해달라는 해당인물의 공식적인 요구는 재단측에서는 기각될 것이며, 해당인물의 자택에서 얼마든지 자신을 스스로 그렇게 부를 자유가 해당인물에게는 있음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자칭 '대현자 싸이비'님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 본 문서는 등급외 항목으로 아무런 보안기록물의 가치 및 효력이 없습니다. 필요한 직원이 이면지로 활용해도 좋고, 코를 풀어 파기해도 무방함을 알립니다.






# 응급실 의사의 회고


글쎄... 워낙 평범한 환자분이었어서 인상이 명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사건 자체는 특이해서 기억에 있습니다. 킥보드를 타고 계단에서 뛰어올라 하늘을 날겠다고 하는 이들이 흔하진 않잖아요. 응급실에 실려오셨을 때 의식이 없는 속에서도 "여신님, 테츙~"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모습도 생각이 나네요.


다행히도 출혈이나 특별한 외상은 없으셨어요. 하루 정도 지난 뒤 환자분의 의식이 돌아온 것 같다고 콜을 받아 갔을 때, 환자분이 갑자기 저를 보며 이렇게 대뜸 말할 때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마... 이런 말이었던 것 같은데.


"NLP 독학해서 일주일만에 마스터했고, EFT로 마음 프로그램도 다시 쓸 수 있는 네오가 되었고, 융 심리학을 통해 모든 것이 다 대극으로 이루어진다는 마음의 비밀도 탁월하게 이해한 제가 진짜 마음의 천재인 거잖아요? 의사나 박사보다 제가 더 대단한 존재 맞잖아요? 저 천지신명에게 기도해서 우주의 심리적 기운을 모아 조자룡이 쓰던 청운검도 만들 수 있는데... 아더왕에게 청운검 줬더니 엑스칼리버보다 더 좋다고 기뻐했는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아줘서 그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제가 진짜 마음의 최고 대현자 맞잖아요???? 의사쌤보다 제가 더 잘난 거 맞잖아요????"


그리고는 서럽게 펑펑 우시더라구요.


한참을 우시더니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반복해서 두드리면서, 환자분이 저를 보고는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괜찮습니다. 당신도 온전합니다. 얼마나 약했으면 그렇게 많이 공부해서 의사가 되려고 하셨겠어요. 당신은 힘들게 애쓰며 의사가 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닌데... 괜찮습니다. 그 마음도 다 온전합니다."


그렇게 저를 보고 자애롭게 방긋 웃는 환자분 앞에서... 제가 달리 할 말이 없었어요... 간호사에게 환자분이 안심하고 쉬다가 퇴원하실 수 있도록 말도 자주 걸어드리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다드리라고 부탁만 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다음날 새벽이었나. 환자분이 사라졌다고 연락이 왔어요. 침대 위에 메모 한 장이 놓여 있었는데.. 자 보세요.. 이런 메모입니다.


"부정한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나 탈출함. 진정한 나의 길을 가려네. 이제 내 연주를 들어봐. 동방의 등불."


정말 평범한 분이었는데, 사건 자체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요... 좀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 『셜록 홈즈와 싸이비의 비밀』(미발간) 초고에서


"왓슨, 자네의 우려처럼 '이들'은 유해하다고 할 수는 없네. 그렇다고 유해하지 않다고도 할 수 없겠지만..."


"홈즈 지금 싸이비(psy-be)에 대해 '이들'이라고 표현했나?"


"그래, 싸이비는 개인이 아니야. '그들'이지. 그러한 인격양상을 보이는 이들의 총체 같은 걸세."


"집단최면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비슷하지. 집단인격이 개인화된 걸세. 그러나 그들 개개인은 자신이 아주 고유한 자기만의 존재라고 생각할 거야.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위하는 자발적 주체라고 자기를 믿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왜 런던을 소란스럽게 하는 건가?"


"집단인격의 목적은 단 하날세. 바로 '전염'이네."


"그러면 이건 일종의 '정신적 전염병' 같은 것인가?"


"정확해. 그리고 전염에는 목적이 있어.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전염되어 런던을 점령한다고 해보세. 그 목적은 무엇이겠나?"


"흠... 자네에게 멍청하다고 구박받는 일인가?"


"물론 그건 암묵적인 절대의 목적이지. 그 다음으로는?"


"정의를 집행하는 일?"


"자네의 작은 회색 뇌세포가 드디어... 아니 이건 내 대사가 아닐세. 그게 정확하네. 정의를 집행해야 한다는 집단의 요구가 맹목적으로 높아지면 그 요구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상징물에 대한 복사체들이 생겨난다네."


"그렇다면 무수한 범죄를 해결해온 자네가 아니라 왜 레스트레이드가 복제되는 건가?"


"자네에게 친밀한 경의를 다해 표현하는 것이지만, 자네의 글을 빌리지 않으면 나는 대중에게 이해되기에 어렵기 때문이지. 대중은 알기 쉬운 상징물을 바란다네. 그래야 자기들도 그 상징물과 동일시될 수 있거든."


"알겠네 홈즈, 정리해보자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요구가 어떠한 임계치에 이르면 그 요구가 실현되기 위해 가상의 해결사를 만들어낸다는 얘기겠군. 그것도 그 거대한 요구를 채울 만큼 아주 많이."


"셜록 홈즈와 그의 충직한 파트너 왓슨도 그렇게 만들어진 거지. 이 얘기는 잊어도 좋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를 해주게.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그렇다면 싸이비는 대체 어떠한 목적을 갖는다는 것인가?"


"'관심'의 수집일세."


"관심?"


"그래, 무엇이라도 좋아. 이들은 관심만 얻으면 그 목적을 충족할 수 있다네. 이게 지금 런던의 집단정신인 셈이지. 조금 어려운 얘기일 수 있지만 해보겠네. 산업이 발전해서 생겨난 빈부의 격차 속에 사람들이 잃은 것은 실은 생존이 아니야. 바로 '자기 자신'일세. 사람들은 모두 다 자신을 잃고 계급이 되었어. 자본가와 노동자로 몰개성화되었네."


"관심이 개성을 찾아준다는 건가?"


"정확히는 그렇다기보다, 관심을 얻으면 사람들은 자신이 '개성이 있는 존재'라고 믿을 수 있다네. 실제로 자기 자신으로서의 개성이 없어도 되네. 그런 척할 수 있게 된다는 거지."


"그 말은, 관심을 수집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얘기겠군."


"그래 그 말이 맞네. 오늘날 런던에서는 왜 이렇게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가? 다 이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개성을 얻고 싶어서야. 우리가 해결한 사건들을 떠올려보게나. 얼마나 개성적인 범죄자들이 많았는가? 싸이비는 이 관심수집의 행위를 보다 덜 폭력적인 형태로 실현하고자 하는 새 시대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그래서 유해하지는 않다는 거군."


"그렇지. 범죄의 차원에서는 그러하네. 그러나 이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갈취하기 위해 벌이는 각종 행각들은 분명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다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찾아달라고 모든 시민에게 사건을 강제로 의뢰하는 일과 같은 거네. 모든 이는 셜록 홈즈가 되어야 해. 의뢰인에게 관심을 제공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유능한 해결사가 되어야 하지."


"그렇다면 이것은, 이렇게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네만, '마음의 범죄' 같은 것인가 홈즈?"


"'마음의 병'이라고 해두세.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는 이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이 더 많아질 거야. 싸이비는 더욱 늘어나겠지. 셜록 홈즈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네. 자네가 내 은퇴작에서도 묘사했듯이, 한 개인이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거든."


"나는 좀 석연찮네만. 사람의 마음을 그리도 잘 파악하는 명탐정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건가......"


"필요한 것은 셜록 홈즈가 아니야. 셜록 홈즈는 분명 또 다른 싸이비의 표상이 될 걸세. 멘탈리스트, 아마도 미래에는 이러한 표현을 사람들이 쓸지도 모르네. 내 모습을 그렇게 보겠지. 그러나 자네도 잘 알다시피, 나는 그러한 것이 아니네 물론."


"자네는 좀 미쳤지."


"그래 나는 일종의 미치광이(maniac)야. 그리고 그게 내가 나인 이유라네. 나는 관심받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 내게 흥미를 끄는 일에만 관심하는 것을 좋아하지. 그게 셜록 홈즈야."


"알겠네 홈즈. 싸이비는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잊은 이들이로군. 그리고 그게 그들이 자기 자신을 잊은 바로 그 이유로구만!"


"이 책은 명탐정 왓슨과 그의 파트너 홈즈로 출간하세나."






#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는 기록물이 있다. 아주 효과적이며 인상적인 기록물이다.


우리는 심리학 이세계를 여행하는 싸이비의 여정을 추적함으로써, 싸이비에 대한 맵핑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싸이비에 대한 프로파일링 보고서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외형적 특징: 대체로 무난하게 평범하나, 외모에 대한 자기평가가 높아 열등감을 자주 느낀다. 평범함이 열등감의 이유가 된다. 이에 따라 비범해보일 외적 특징(이상한 모자나 과장스러운 색의 옷 등)들을 개성의 요소로 곧잘 부여하곤 한다.


- 가족관계: 아버지와 적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머니는 무식한 독재자인 아버지에게 희생된 불쌍한 피해자로 상정되며, 자신은 어머니를 구원할 영웅의 역할로 추구된다. 이 관계의 역동이 사회적 관계로 확대되어, 남자는 싸이비의 적대적 대상이 되고, 여자는 싸이비의 절대적 대상이 된다. 남녀 싸이비에게서 이것은 공통적이다.


- 중심기능: 지성을 최고의 기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만큼 자신의 지성기능을 자신한다. 그러나 사실적인 차원에서는 생각 외로 머리가 좋지 않다. 잡학을 암기하고 모방하는 일에만 지성기능이 편중되어 있다. "학교 따위에서 배울 것이 뭐가 있단 말이야. 소설 영웅문 속에 더 진정한 삶의 진리가 있다고." 등과 같은 말은 이들의 단골대사다.


- 사회적 등급: 평균적으로 중산층보다 낮다. 학벌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것은 자신의 지성기능을 과잉되게 평가하기에 파생되는 현상이다. 사회적 등급의 낮은 수준을 만회하기 위해 반사회적 지름길을 택하는 경우가 아주 빈번하다. 싸이비들이 곧잘 사기꾼이 되는 이유다. 경동시장에서 이상한 한약재를 사다가 팔거나, 수상한 영적 도구를 파는 일 등이 대표적인 예다.


- 정치적 성향: 먹물 좌파도, 패션 좌파도 아닌, 무협지 좌파다. 삼국지의 유비삼형제의 모습을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실은 잘 모르지만, 자신이 사람들을 평화롭게 통치하는 왕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믿는다. 아주 많은 경우, 김어준과 같은 인물을 좋아하며, 또 흉내낸다.


- 싸이비가 되는 계기: 현실에서의 실패가 주된 이유다.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고, 실패가 아닌 것처럼 회피함으로써 싸이비의 길로 진입한다. 대체로 초등학교 시절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아이를 놀리다가 얻어 맞은 경험이 일종의 실패경험이 되어 싸이비의 씨앗을 싹틔운다. 자기의 지성을 발달시켜 마법적 힘을 키움으로써, 육체적 힘만 센 바보들에게 복수하겠다는 동기가 지배적이다.


- 주요목표: 돈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돈이다. 자기 지성의 우월성은 돈의 소유정도에 따라 평가된다. 이들의 입장에서 돈이 많으면, 아주 똑똑한 것이고, 곧 깨달은 것이다. 누가 진정으로 깨달았는가를 겨루기 위해 이들은 서로 돈을 많이 벌어 상대에게 승리하고자 한다. 이들이 깨달음 등과 같은 개념을 탁월한 지성의 힘이라고 간주하기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싸이비에게 돈은 알파와 오메가다.


- 관계양식: 배신이 이들의 주요한 관계양식이다. 왜 배신을 거듭하는지의 이유는 상술한 바와 같이 돈이다. 돈이 벌리는 장에서는 관계가 지속되며, 돈이 벌리지 않는 장에서는 이들은 자기가 불쌍한 피해자인 척하는 연기를 하며 그 장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이 과정이 배신이 되는 이유는, 이들의 피해자 연극을 위해 필연적으로 상대가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나아가 싸이비들은 하나의 관계에서 그냥 나가지 않는다. 그 장에서 얻을 것은 최대한 다 획득한 뒤 빠져나간다. 전문용어로 '먹버'가 이들의 관계양식이다.


- 핵심감정: 우월감이다. 이 핵심감정을 경험하기 위한 '권위'가 이들에게는 중요하게 간주된다. 이들이 우월감을 얻는 방식은 '학교종이 땡땡땡'을 부르는 초등학생들에게 가서 자기는 서태지를 듣는 락매니아라고 말하는 식이다. 마치 1990년대에 공일오비, 이승환, 김현철, 전람회, 패닉 등의 음악을 라디오에서 듣던 청자들이, 자기는 저속하게 티비에 나오는 값싼 딴따라들이 아니라 진정한 음악성을 갖춘 뮤지션을 좋아하는 이라고 자부심을 느끼던 그 방식과 같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러한 방식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권위를 '최고의 권위'라고 자임하는 이들의 태도다. 그러니 늘 비웃음을 당하게 된다. 유튜브에서 주워본 레시피로 요리를 만든 뒤 자기가 최고의 요리사라며 뽐내는 이가 고든 램지에게 욕을 먹는 일은 필연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심리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심리학 천재인 것처럼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바로 싸이비다.


- 심리적 발달의 상태: 퇴행 및 유년기 미발달의 상태다. 이에 따라 유치함이 암내처럼 전신을 휘감고 있다. 그 유치함을 대단함으로 착각하는 것이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조금만 아는 사람이 보면, 이들의 말이나 글 그리고 행동 및 행색이 얼마나 유치한지는 확연하다.


- 싸이비의 과정:


1) 심리학이 오늘날 큰 관심을 얻을 수 있는 소재임에 주목한다.


2) 성공적으로 보이는 선배 싸이비를 찾는다.


3) 심리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선배 싸이비가 요약해준 이야기들을 심리학이라고 믿으며 암기한다.


4) 선배 싸이비가 보는 NLP 등의 유사심리학의 책들을 따라 본다.


5) 자기가 혼자 유사심리학의 책을 이해할 수 있음에 감격한다.


6) 유치한 유사심리학의 원리에 모든 심리학의 이론을 끼워 맞춰, 융과 도교 사상이 같다는 식으로 다 아는 척한다.


7) 자신이 이제 선배 싸이비와 동일한 최고의 심리학자의 수준이 되었다고 간주한다.


8) 배신할 때를 노린다.


9) 자신이 배신했으면서 마치 자기가 배신당한 것 같은 그림을 만든 뒤 휘파람을 불며 나온다.


10) 선배 싸이비에게 배운 구조와 원리 그대로 싸이비 사업을 시작한다.


11) 자기 밑에 모인 동일한 싸이비 꿈나무들을 계급제로 선별한다.


12) 멍청해보여서 배신할 것 같지 않은 남자들, 섹시해보이는 여자들을 제자로 맞이한다.


13)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이도 제자로 맞아, 초등학교 시절의 원한을 풀 대상으로 쓴다.


14) 사업을 지속하다보니, 원래 가진 것이 없어 금방 밑천이 떨어진다.


15) 여기저기 강연들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판매소재들을 물색한다.


16) 좋아보이는 남의 것은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포장해 새로운 컨텐츠로 판매한다.


17) 이 표절의 과정 속에 거듭 배신의 역동을 발생시킨다.


18) 자기가 배신한 남을 계속 엿보고 스토킹하며, 좋은 컨텐츠가 있으면 몰래 자기의 것으로 파는 일을 거듭한다.


19) 자기의 부모에게서도 사기 좀 그만 치고 살라는 말을 듣는다.


20) 섹시한 수강생들에게 새로 훔쳐온 최신의 컨텐츠를 강의하기 위해 신나게 킥보드를 타고 나가다가 죽는다.


싸이비의 말년은 절대적으로 불우한데, 그 이유는 싸이비가 너무나 많은 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람들에게 싸이비가 거대한 화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부당거래'로 인해서다. 싸이비는 어떤 경우에도 공정한 거래를 하지 않는다. 싸이비는 자신이 도둑질해간 말과 글, 그리고 생각과 기획의 대가를 지불하는 적이 없다. 이것은 정확하게 표절의 의미다. 남이 고생해서 만든 창작물로 자기가 대신 영광의 이득을 취하면서도, 싸이비는 자신이 잘났다고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오늘날, 포탈사이트 커뮤니티, 블로그, 브런치,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활동하는 싸이비들이 쓰는 말과 글은 99%가 도둑질해온 것이다. 남은 1%는 홍보를 위한 영업용 멘트다. 자기의 것이 없다. 자기의 것이 없어서 남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취하는 이것이 싸이비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사춘기 시절, 잘 나가던 친구가 질투나 그 친구의 언행을 모방하며 자기도 그 친구처럼 되려 하던 모습의 역기능적 확장판이다. 일그러진 소유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싸이비들이 돈에 집착하는 이유와도 같다. 싸이비는 소유욕이 많다. 어떠한 것을 가질 수 없다고 믿는 만큼 소유욕은 증대된다.


배신도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가질 수 없다고 보이기에 그것을 배신해, 자기가 대신 그것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을 가진 척하려는 것이다.


결국 싸이비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자 하기에 싸이비가 되는 셈이다.


남을 나로 가질 수는 없다. 남이 그렇게 좋아보인다면, 그것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친해져야 하는 것이다. 싸이비는 일그러진 어린왕자들이다. 여우를 죽여 모피로 만들고, 장미를 꺾어 꽃반지로 만드는 이들이다. 그래서 영영 그것들과 친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자신이 사랑했던 그것들은 더는 자신에게 친하게 말을 걸 수 없게 된다.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몰라서, 싸이비는 결국 대상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싸이비의 미숙성은 사랑에 대한 미숙성이다. 이들은 자기가 절대적으로 사랑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헌신하는 것도 결국에는 자신에게 돌아올 사랑받음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당거래의 이유가 된다.


분명하게 싸이비는 언제나 자신이 주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바란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게 그러한 희생을 강요한다. 이로 말미암아 부당거래는 늘 창출된다. 지쳐가는 상대를 보며 더는 자신이 사랑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된 싸이비는 이내 배신을 이룰 것이며, 지난한 과정은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반복되는 이 역사의 지루한 보고서를 손에 넣었다.


이것은 아주 평범한 것들에 대한 보고서다.


사랑을 배워가던 아주 평범한 것들이, 사랑에 좌절해서 특별한 것이 되려고 시도했던 이세계로의 행적은, 다시 돌아오면 그저 이 현재일 뿐이다.


나는 영원히 특별한 남이 되지 못할 것이며, 나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평범한 나로 살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이 정말로 사랑했던 것의 온기를 기억하며, 다시 초에 불을 붙일 때, 제목은 다시 쓰인다.


"심리학 이세계에서의 대현자가 현재에는 평범한 나입니다만?"


아무리 방대한 보고서들이라도 이 현재의 내가 태워올린 작은 촛불 위에서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사랑에 상처받아 아팠던 과거는 사랑으로만 치유된다."


우리는 이 문장만을 성실한 기록물로 남기고자 한다. 이것은 에필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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