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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Aug 16. 2019

수상한 교수(The Professor, 2018)

실존, 수상한 존재의 길



  참 잘 지은 한국어 제목이다.


  수상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밖과 관계되지 않은 채, 안에 감추어진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수상하게 볼 때, 그에게는 반드시 감추어진 것 같은 가장 사적인 영역이 있다. 역으로 그는 그 사적인 영역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까닭에, 그것을 공공 앞에 스트립쇼를 하듯이 함부로 노출시키지 않으며, 수상함이라는 이름의 향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사적인 것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노래하는 전통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실존주의라고 부른다. 이 영화는 총체적인 차원에서 다분히 실존주의의 색채를, 특히 니체의 색채를 잘 드러내고 있는 영화다.


  실존주의에서 죽음의 문제, 곧 비존재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죽음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사적인 것의 중요성을 그 즉시 자각하게 해주는 소재인 까닭이다. 아니, 실존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것처럼, 애초 우리의 삶 자체가 사적인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리차드는 갑작스럽게 폐암 말기의 진단을 받으며, 몇 개월 남지 않은 시한부의 인생을 선고당한다. 이렇게 부조리가 닥쳐온다. 부조리라는 것은 통제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리차즈가 지금껏 통제하고 있다고 여긴, 교수라는 신분과, 풍족한 재산과, 사회적 지위와, 안정적인 가정과, 평화로운 생활을 그는 한순간에 잃게 될 운명에 처한다.


  나아가, 운명의 습격은 원래 초토화시키기 위한 총력전이다. 부조리한 운명은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비극적 요소를 한데 긁어 모아 함께 들이닥친다. 리차드의 아내는 그가 가장 혐오하는 동료교수와의 육체관계에 빠지고, 리차드의 딸은 그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동성애자였음을 고백하며, 리차드의 학생들은 그가 현재 가장 잃고 싶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답답한 군상들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부조리 앞에서 묻는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그 모든 대상을 향해 묻는다.


  이 대상들이 정말로 그의 삶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그리고 그는 이해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삶에서 존재감을 경험하기 위해 자신이 그 대상들과 관계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즉, 자신의 삶에서 존재감을 경험하려면 그 대상들과의 관계가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다가온 죽음 앞에서, 그 관계에 대한 믿음은 허구로 드러난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 죽는다. 그 어떤 대상과의 관계도 우리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다. 죽음은 이처럼 가장 사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죽음의 정당한 한쌍인 삶도 가장 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리차드가 이해한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애초 가장 사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삶을, 그는 그동안 대상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만 펼쳐왔던 것이다. 그렇게 가장 사적으로 지켜져야 할 영역은, 관계라는 당위를 통해 외부의 대상들이 흙발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게 되는 공중화장실이 되었고, 그만큼 그의 존재는 소외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자각한 리차드는 이제 그에게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 동안, 단 하나만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가 맹신한 허구적 믿음으로 인해 스스로 허구적 존재가 되어버린 까닭에, 결국 자기 존재의 존귀성을 상실한 리차드는, 그가 이 세상에 실제적인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그 구체적인 실감만을 회복하고자 한다. 곧, 자신의 실존만을 어떻게든 회복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존재하는 일일 뿐입니다."


  타인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고자 애쓰고,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이고자 애쓰고, 그의 학생들에게 맞춰주고자 애쓰던 그 모든 일을 그는 이내 멈추며, 동시에 자신의 죽음을 기릴 수 있는 문학작품을 쓰고자 애쓰거나, 주변인들에게 존경받을 기억을 남기고자 애쓰거나, 모든 이에게 사랑받으며 죽을 수 있는 조건을 준비하고자 애쓰는 그 모든 일을 그는 아예 시작하지도 않는다.


  그 모든 일은 진실로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관계를 증진하기 위한 그 모든 일을 한다고 그가 더 살게 되거나 덜 살게 되는 것도 아니며, 그가 더 죽게 되거나 덜 죽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 모든 정치, 윤리, 경제, 사회, 인기, 명예, 연애, 가족, 종교 등을 위시한 모든 관계의 논리는,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곧 그의 존재의 문제에 대해 진실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는 자신이 지금껏 추구해온 그 모든 관계의 논리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이 정직한 사실 속에서, 그저 사적인 삶을 산다. 수상한 삶을 산다. 남으로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산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관계를 거부함으로써 회복시킨 사적인 삶은 역설적으로, 그와 관계맺고 있는 모든 이와의 진실된 관계성 또한 회복시킨다.


  사적이라는 말은 경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존중은 바로 이 경계에서 비롯한다. 명확한 경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경계 밖의 타자를 수상하게 볼 수 있게 되며, 그 결과 그것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곧, 수상함의 다른 표현은 바로 경외감이다.


  이처럼 리차드는 자신을 사적인 경계 안에 명확하게 위치시킨 결과, 그 경계를 사이에 두고 생겨나는 상호적인 경외감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상대의 존귀성을 함께 발견하게 된다.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관계성의 의미다.


  그는 이제 사람들을 그의 삶이 존속되기 위한 관계적 대상물들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서 본다. 그가 그 모든 허구적 관계의 논리를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자신으로서 사는 만큼, 사람들 또한 그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서 드러난다.


  '있는 그대로'라는 표현이 갖는 정확한 함의는 바로 유한성의 존중이다. 곧 '당신의 한계를 존중합니다.'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는 언제나 우리가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는 현실을 개방한다.


  그것은 동시에 감사이기도 하다.


  관계 속에서 서로의 한계를 몰아붙이며, 서로에게 해줄 수 없는 것들을 해주고자 애썼던 서로에 대한 감사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작별인사다.


  이를테면,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서 보게 될 때,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한계를 몰아뭍이며 고생한 우리의 양육자의 비극에, 그리고 우리의 유년기에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의 문제를 대신 관계에 위탁하고 모른 척 했던, 그럼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잃게 되었던 역사와의 작별인사다. 관계 속에서 우리 대신에 우리의 존재감을 확보해주고자 하는 불가능한 일에 희생되었던 대상의 비극과의 작별인사다.


  리차드는 이처럼 그의 아내에게, 딸에게, 학생들에게, 동료들에게, 그리고 반려견에게 감사를 전하며, 동시에 작별인사를 전한다.


  애초 사적인 것인 까닭에 관계의 논리로는 결코 응답될 수 없는 삶의 문제에 대해, 서로 관계 속에서 힘들게 애써온 그 지난한 과정을 이해하며, 또 그에 상냥해지며, 리차드는 사람들을 떠난다. 죽음이라는 가장 사적인 순간을 가장 사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삶의 징조인 웃음으로, 죽음의 징조인 기침으로, 그는 기침 속에서 웃으며, 또 웃음 속에서 기침하며 길을 떠난다. 표현 그대로, 그의 앞에서 양쪽으로 나뉘는 공공의 길을 떠나, 그 어느쪽의 길도 아닌 들판으로 향한다. 그렇게 삶이면서 죽음이기에, 동시에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제3의 길로서의 역설을 향해 떠난다. 관계라는 길을 떠나, 역설이라는 길을 만든다. 수상한 존재의 길이다.


  "이 모든 것이 이토록 부조리한데, 이토록 완벽하다니!"


  영화에서 진중하게 고백되던 이 수상한 대사는, 마지막에 이르러 리차드의 웃음소리를 타고 밤하늘에 널리 울려퍼진다. 널리 선포되어 그 이름을 다시 찾은 경외감이 하늘을 가득 메운다.


  그 하늘 아래, 가득히 그는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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