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다리던 지적이고 과격한 심리학 #11

"변화: 과거와는 다른 제가 되었습니다"

by 깨닫는마음씨




100원을 갖고 있던 이가 100억 원을 갖게 되면 그게 변화일까요?


여자친구가 없던 이가 여자친구가 생기면 그게 변화일까요?


후뢰시맨을 좋아하던 이가 아이언맨을 좋아하게 되면 그게 변화일까요?


심리학적으로 이런 것들은 변화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동일한 마음작용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중요하다"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이 중요하다." "정의의 용사로 사는 게 중요하다."와 같은 식으로, 행위를 추동하는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언어만 달라졌을 뿐입니다.


마음이 달라지는 게 심리학적 변화이지, 언어가 달라지는 것은 심리학적 변화가 아닙니다.


아니 후뢰시맨을 좋아하던 유치한 시절을 반성하고, 이제는 성숙한 어른답게 아이언맨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가 정말로 뭔가 변화된 이로 보이십니까?


나아가 후뢰시맨 하나만을 좋아하던 이가 이제는 아쿠아맨과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을 동등한 온전함으로 좋아하게 되었다고 미소지으면 그게 뭔가 진정한 변화처럼 보이십니까?


소위 심리학 좆문가들 중에서도 가장 저질의 좆문가들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권위를 얻기 위해, 자기가 얼마나 놀라운 체험을 했는지의 '개인적 신화'를 홍보합니다. 청소년기에 어떤 찐따가 어제 영등포 뒷골목에서 양아치들과 20:1로 붙어 자기가 이겼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그 '개인적 우화'의 방식입니다.


언어가 바뀌면 자기가 달라졌다고 믿는 것이 청소년기의 특성입니다. 그러니 덜 자란 애들이 "씨발" "개새끼" "좆같네" 등의 언어를 위악적으로 과잉되게 남발하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강한 존재가 된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언어가 바뀌면 마음이 바뀌고, 곧 자신이 바뀐다고 믿는 이 방식을 우리는 주술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모든 주술은 미숙아들의 망상입니다. 이러한 미숙아들이 주술에 입각해 매우 자주 심리학 좆문가로 행세합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좆문성을 지적받으면 이들은 다음과 같은 단골대사를 발화합니다.


"과거에는 제가 잘 몰라서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놀라운 체험을 통해 못난 자신을 극복하고, 과거의 것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선별할 줄 아는 눈을 갖게 되었으며, 이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아진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좋은 것만을 가장 정성스럽게 드리려고 합니다."


지겨운 대사입니다.


이 대사의 실제적인 의미는 "나는 변할 마음이 없거든~"입니다. 나아가 "그러니 나에게 권위와 인기와 돈을 계속 공급하도록 해~"입니다.


정말로 변화한 이는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과거와는 다르게 더 나아진 자신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과거를 끊습니다.


즉, 과거와의 비교를 통해 과거에 근거하여 현재의 자신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합니다.


후뢰시맨에서 벗어나 더 성장한 아이언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용사인 척하며 남에게 사기를 치고 피해를 주는 그 일을 아예 그만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표절과, 약탈과, 거짓말로 자신의 어떤 권위를 얻은 이가 사실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이토록 분명합니다. 그 권위를 내려놓으면 됩니다.


절대로 권위를 내려놓지 않기 위해 이들이 하는 대표적인 일이 바로 양심선언입니다.


마치 정직한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대중들을 향해 양심선언을 하는 이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대중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중을 통해 얻은 권위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과거를 반성할 줄 아는 멋진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자기를 계속 지지해달라는 것입니다. 죄책감도 이러한 이들에게는 결국 자원 획득의 도구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사람들을 무수히 배신하여 죽인 한 초딩이 왕이 되었습니다. 초딩이 소싯적의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이제는 백성들에게 자비로운 왕이 되겠다고 선포합니다. 곳간도 열어 백성들을 먹이고, 구호시설도 지으며, 백성들에게 겸허한 마음으로 평생 헌신하겠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이게 변화라고 보이십니까?


이것은 그저 계속 왕의 자리를 유지하겠다고 하는 기만적인 수작일 뿐입니다.


변화는 오직 그가 부정하게 얻은 왕의 자리에서 물러남으로써 증명됩니다.


남의 말과 글을 도둑잘해 책도 쓰고, 강연도 다니며, 좆문가가 된 이가, 부정하게 쌓인 과거의 권위에 근거해서 과거와 똑같은 일을 하면서, 심지어 부분적으로 과거를 예찬하기까지 하면서, 이걸 변화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과거와는 다른 제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은 이입니다. 정말로 변화한 이는 그러한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변화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그의 과거를 문제삼지 않습니다. 더욱 자신에 대해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 변호할 일이 없어집니다.


『레미제라블』에서 묘사되는 장발장과 같은 이는 죽을 때까지 변화하지 않는 이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빵을 훔칠 때나, 고아를 양녀로 삼아 키울 때나, 늘 똑같이 자기가 옳고 선하다는 고집 속에서만 활동합니다. 도덕적 승리가 유일한 그의 목적입니다. 아마도 그 마음작용의 의도는 "선한 용사로 살아야 한다."일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과거가 계속해서 따라붙는 것은, 세상이 잔혹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변화할 때까지, 여러 대상들을 통해 과거는 계속해서 고발됩니다.


자신이 정말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알게 된 이는 다시는 그러지 않습니다. 이게 변화입니다. 그에게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이게 또한 용서의 의미입니다.


변화는 용서로 가능해집니다. 용서는 어떤 상냥하고 자상한 이가 "그런 당신도 온전합니다."라며 자신을 품어줌으로써 생겨나는 일 따위가 아닙니다. 용서는 정직한 자각으로만 가능합니다. 자기가 선한 용사로서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있다고 일관되게 생각하며 살아온 이가, 사실은 자기가 누구보다 악한 이였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때, 그때 용서가 일어납니다.


용서는 따듯한 자기합리화가 아닙니다.


용서는 냉철한 자각입니다.


칼로 잘라 끊는 일입니다.


그러면 사실이 알려집니다. 그건 따듯합니다. 용서가 따듯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따듯한 것입니다.


사실은 사실을 알게된 이로 하여금, 왕과, 좆문가와, 선한 용사의 자리에서 자연스레 내려오게 만듭니다. 늘 남의 것을 빼앗아 연명하는 기생충으로 병신같이 살지 않아도, 이 세상에 그의 자리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리기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 이뿐입니다. 이 단순한 말을 우리가 하지 않는 이유는 계속 기생충이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니 표면적으로는 자기가 기생충이 아닌 척 끝없이 자기를 방어하고 합리화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전적인 자기포기의 말은 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에 "유감입니다." "오해가 있었습니다." "달라진 제 자신을 전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등의 병신같은 말들만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여전히 병신이라는 것만을 증명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절대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심리학적 변화는 동일한 마음의 양적 성장이나 양적 확장이 아닙니다.


어떤 심리학 좆문가가 이러한 말을 합니다.


"과거에는 사이비 같은 말을 제가 너무 많이 했습니다. 어리석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된 정통의 심리학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가장 정직하고 좋은 것들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사이비에서 정통으로 바뀐 이 언술이 변화인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더 세련된 언어적 포장지만 입힌 것뿐입니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그 마음작용은 그저 "돈이 가장 중요해."일 뿐입니다. 사이비스러운 언어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하면서 그것을 마치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쉽게 전하기 위해서."라고 위장하고 있기에, 그는 좆문가입니다.


변화된 것은 없습니다. 돈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그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것은 순도 100%의 사기입니다. 자기는 돈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살면서, 남들에게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일은 순도 100%의 거짓말입니다.


차라리 '심리학으로 돈을 버는 환상의 마법' 같은 것을 파는 일이 이 심리학 좆문가들에게는 정직한 일입니다. 근데 그러지 않고 자기도 마치 정통적인 학문에 대한 사랑 속에서 활동하는 진정한 전문가인 양 행세하는 것은 이들의 부정직성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에 대한 부정직성입니다.


자기 마음에 대해 부정직하며, 남의 마음을 다루는 심리학의 일을 한다고요?


심리학 좆문가들은 평생 이 일만을 합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변화한 적이 없습니다.


비단 심리학 분야만이 아닙니다. 자기가 작가라고 자칭하는 사이비 좆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작품이 하나도 없습니다. 소설가로 대접받고자 하면서도 자기 소설은 쓰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소설을 쓰면 돈이 안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좆가들이 소설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은 거짓말입니다.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돈입니다. 돈 때문에 자기 애인을 매춘굴에 팔아넘긴 이가 그 애인을 너무 사랑한다고 눈물짓습니다. 아주 가식적인 일입니다. 나아가 애인을 팔아넘긴 돈으로 작가 행세를 하기까지 합니다. 무슨 미친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라고 하는 것을 실은 가장 모독하는 이들입니다.


이와 같은 정신병의 상황에서 깨어나는 것이 변화입니다.


더 근본적인 차원을 말해보겠습니다.


"돈이 가장 중요해."라는 마음은 사실 "내가 가장 특별해."라는 마음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돈은 특별함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수단이기 때문에, 특별해지고 싶은 이들은 아주 흔하게 돈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됩니다.


왕, 전문가, 선한 용사, 작가 등은 다 특별함의 다른 이름들입니다. 이것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이름들이기도 하며, 돈을 벌게 된 그 결과로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되는 이름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장 사이비가 창궐하는 분야인 심리학 및 영성판에서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자기의 깨달음 및 마음에 대한 앎의 내용이 더 진정한 것으로 증명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깨달음' 내지 '마음전문가' 등의 것들은 돈과 연합되어 획득되는 '특별한 나'의 이름인 셈입니다.


그래서 심리학 좆문가들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행인 A가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자기는 다른 이들을 게임속 NPC처럼 대하면서, 자기만은 NPC가 되지 않으려 합니다.


자기만은 어디에서든 특별하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믿으며, 고집을 부립니다. 세상을 부모로 보며 세상이 자기를 제일 특별한 아기처럼 대해주어야 한다고 응석부리는 일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 심리학 좆문가들은 언제나 마음을 양육의 기제로 설명합니다. 양육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그 핵심은 다 양육입니다. 마음을 아이 같은 것으로 상정하여, 모든 마음을 온전하게 다 알아주어야 한다느니, 모든 마음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알려야 한다느니 하는 식으로, 가장 특별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자기 마음의 소망을 진리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동일하게 '특별한 나'만을 부르짖는 이 방식으로는 절대로 변화할 수 없습니다.


'특별한 나'만을 말하던 오만한 아이 같은 입장에서 깨어나, 이제는 겸손하게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는 식의 태도는 이들의 상습적인 위장술입니다. 바로 그렇게 좋은 부모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이들은 사회적으로 더 안전하게 지지받을 수 있는 형태로 '특별한 나'를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심리학 좆문가들이 심리학을 선택한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심리학을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심리학이 그래도 가장 성공적으로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 같은 과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단순합니다.


다들 자기를 병신찐따로만 보고 있다고 경험되던 중에, 문득 자기가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통해 모종의 활동을 하니 갑자기 사람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심리학 좆문가들은 이 영광의 순간을 변화라고 착각합니다. 시장에서 약장수가 원숭이를 데리고 심벌즈를 치니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을, 자기가 이루어낸 진정한 자기의 변화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이 심리학 좆문가들은 자기가 광대가 된 그 방식을 사람들에게 변화의 공식이라고 팔아먹습니다. 자기와 똑같은 병신광대가 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간과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세상은 자기를 병신찐따로 보고 있던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만, 그리고 어쩌면 자기와 융합된 자기 부모만이 자기를 병신찐따로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세상은 그저 이러한 이들을 평범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관심종자들만 세상이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자기가 병신찐따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종자가 아닌 이들은 동일한 현실을, 자유롭다고 경험합니다.


결국 심리학 좆문가들이 진짜 병신찐따가 된 시점은, 그들이 광대짓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병신찐따에서 좋은 것이 된 게 아니라, 평범한 이에서 병신찐따가 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온전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병신찐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기적적인 변화입니다.


존나 기적적이라 존나 서러운 변화입니다.


'온전함'은 '특별함'의 다른 이름이 절대로 아닙니다.


'온전함'은 관계적 차원에서는 차라리 '평범함'입니다. 행인 A입니다.


행인 A의 특별함은 그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속성입니다. 자신의 삶만이 자신에게 특별하면 됩니다. 특별하다는 것은 남다르다는 것입니다. 남들 중의 최고가 아니라, 표현 그대로 남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왕이 아니라, 왕국을 벗어나 그 자신의 삶으로 나간 모험가의 입장입니다.


죽을 때 침상 위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겁니까?


"얘, 에미야, 내 아이패드 좀 갖고 오련. 인스타에서 얼마나 '좋아요'를 받았는지 보고 가야겠구나. 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 한번 봐야지. '좋아요'가 만 개 이상 달리면 내 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구나."


죽을 때까지도 우리는 병신찐따일 겁니까?


이제 변화해야 합니다.


변화할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보장할 수 없어도, 당신께서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반드시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인간의 평범한 속성이니까요.


평범하게, 너무나 당연하게, 당신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과거에서 얻은 것을 완전히 버리면, 당신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가장 평범한 심리학적 언술로 이렇게 말해보겠습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 변화를 가로막는 유일한 원인이다."


이 모든 것이 너무 이해가 잘 되실 겁니다.


과거에 집착해 변화를 악착같이 거부하는 이들을 꼰대라고 부릅니다. 꼰대의 핵심적인 특성은 자신이 과거와는 다르게 더 선하고 좋은 최신의 것으로 변화해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유행하는 언어를 쓰지만 삶은 그대로입니다. 20대 여성들 앞에서 90년대 백댄서 같은 원색옷을 입고 현진영 춤을 추며 엉덩이를 흔듭니다. 놀라운 최신의 성과입니다.


이렇게 살면 안됩니다.


지하철에서 한 연세 지긋한 어르신께 "자네 백주대낮에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라며 혼나서라도 그만해야 합니다. 보통 아버지들이 이 역할을 맡게 되는데, 오늘날은 아버지가 그 권위를 처참하게 상실한 시대라 애들이 개판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에도 당신만은 이러시면 안됩니다.


우리 같이 평범하게 잘 살아보시죠.


과거와 다른 당신이 되지 말고, 과거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보시죠.


그게 실은 당신이 정말로 꿈꾸던 바로 그 삶이라는 걸, 적어도 심리학은 보장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이 기다리던 지적이고 과격한 심리학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