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다리던 지적이고 과격한 심리학 #12

"다단계 환상팔이: 덜 자란 새끼, 나쁜 새끼, 아픈 새끼"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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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숨겨진 비밀의 공식이 있으며, 그 공식만 알면 돈을 긁어모을 수 있고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말들 많이 들어보셨죠? 특히 요즘에는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더욱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주로 쓰는 표현은, 메타인지, 진화심리학, 마음의 법칙, 게임이론, 탈중심화, 마인드 해킹, 멘탈리스트, 존재의 레벨업, 융의 연금술, 페르조나, 대극의 통합, 창조적 내러티브, 역설의 비밀 등입니다. 뭔가 심리학적 냄새를 내려는 용어들을 자주 활용합니다.


그리고 이 무수한 용어들로 말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닥치고 모방!"


자아나 정체성, 자기 생각 등을 내려놓고, 성공적인 본을 따라 그냥 닥치고 모방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믿음입니다.


이들은 인생을 마치 게임처럼 간주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처럼, 이미 검증된 것처럼 보이는 모범적인 메뉴얼을 따라 아주 약간의 시간을 들여 가장 효율적인 성장의 길을 가기만 하면 결국에는 게임 내에서 성공적인 입지를 얻게 된다고 믿습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전문성이라는 것이 아주 우습습니다. 자기가 어떤 것을 깊게 파내려가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누군가가 이룬 성취가 있으면, 붙여넣기를 하듯이 그걸 그냥 그대로 자기의 액세서리로 갖다 쓰는 것이 이들에게는 현명한 일입니다.


엑스박스의 게임패스 제도가 성공을 거둔 것도 이러한 플레이 경향성과 맥을 함께합니다. 휘릭휘릭 넘기며 넓고 얕게 즐기는 방식이 대세가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요즘 나오는 게임들 또한 깊게 파내려갈 요소들보다는, 다만 사행심과 경쟁심을 조장하는 가챠 시스템 등의 요소들로 무장합니다. 게임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평가할 것 같은 가상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만 게임을 계속 붙잡는 결과를 의도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JRPG 파이널 판타지의 고전작들에는 적마도사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이 직업은 '넓고 얕은'이라는 수식어를 대표하는 직업입니다. 물리공격도 어느 정도 가능하고, 마법도 어느 정도 가능한 올라운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용사 적성의 직업이라고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생을 사는 방식은 흡사 이 적마도사를 보는 듯합니다. 수제맥주 만드는 것도 조금 배워보고, 유튜브를 따라 드립커피도 내려보고, 나가서 독서모임에도 좀 참가해보는 식으로, 뭔가 조금씩 다 두루 아는 맥가이버처럼 굴려고 합니다.


물론 실상은 이보다 더 심합니다. 자기가 모든 면에서 인생에 통달한 대현자라도 된 것처럼 구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나무위키를 읽으며 자기가 해당분야의 전문가인 척하고, 혼자 심리학 서적을 독학했다며 유튜브에서 심리학 마스터처럼 행세합니다.


이 세상 다 아는 척하는 대현자 도사연이 예전에는 PD나 기자 같은 미디어종사자들이 보이던 대표적인 특성이었는데, 요즘에는 개인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누구나 떨 수 있는 건방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파이널 판타지에서의 적마도사는 초반 3시간 안쪽으로 버려지는 직업이라는 점입니다. 게임의 중반으로만 접어들어도, 물리공격력은 전문적인 전사계통 직업을 결코 따라갈 수 없으며, 마력 또한 법사나 도사 전문직들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초반에 인생마스터 대현자처럼 행세하던 적마도사는 머지않아 쓰레기의 대명사가 됩니다.


인생을 게임처럼 보는 관점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인생을 깊게 파내려가지 않으면,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자기가 실은 텅 빈 쭉정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야기하는 공허함과 외로움입니다. 뭘 해도 만족스럽게 채워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게임불감증처럼 결국에는 인생의 권태를 느끼며 늘 만성적인 우울의 상태에 놓이게 되고, 또 그 상태를 회피하고자 억지로 신나는 척하는 과잉된 조증의 상태에 빠져들게 됩니다.


심지어 더욱 중요한 것은, 인생은 게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상 사는 게 게임이라는 착각은 망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망상을 단번에 박살내주는 근본적 조건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이 세상의 숨겨진 놀라운 공식들을 아무리 아는 것처럼 군다 해도, 죽음은 그 공식들과 아무 상관없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정말로 놀라운 점은, 인생을 게임처럼 굴며 사는 이들에게 죽음은 더욱 가까이, 그리고 더욱 빠르게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이건 불길한 예언이 아닙니다. 자기는 게임 속 주인공이라도 된 양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죽음을 망각하고 소외하려는 이에게 죽음은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옵니다.


오히려 역으로 이해하면 정확합니다.


죽음을 과잉되게 두렵게 여기는 이들이, 인생을 더 게임처럼 보려 하는 것입니다. 게임의 성공적인 메뉴얼 같은 공식을 찾으면, 게임오버의 현실, 즉 죽음으로부터 가장 멀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에 엄청나게 쫄아 있는 이들이 붙잡는 것은 결국 환상입니다.


이들은 환상을 소비하고, 또 그 환상을 열심히 팔아제낍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들을 '환상팔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환상팔이들은 '인생에서 성공하는 법'이라는 환상을 인생도사처럼 굴며 사람들에게 팔아 이득을 꾀합니다. 이들은 마치 자기가 인생의 공략본을 파는 것처럼 선전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환상팔이들이 파는 것은 공략본이 아닙니다. '인생에는 공략본이 있다는 바로 그 환상'을 파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이 파는 환상을 구매할수록 이들에게는 권위와 인기, 명예, 돈이 더 많이 집중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공략본의 환상'을 팔아 자원을 획득하는 일이, 결국 이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공략본'의 내용인 셈입니다.


『사채꾼 우시지마』라는 만화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이러한 환상팔이들의 모습이 아주 잘 묘사됩니다. 위대한 성공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선배 환상팔이에게 자신의 자원과 애인까지도 모두 뺏긴 이가 결국에는 환상팔이로서 성공할 수 있는 '비밀'을 알아내게 됩니다. 선배 환상팔이가 전한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었습니다.


"내가 널 속인 방식대로 너도 똑같이만 해."


"닥치고 모방!"이라는 이 모방의 구조는 다단계 마케팅과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아니 이것이 바로 다단계 마케팅입니다.


오늘날 네트워크가 중심이 된 사회구조는 이 다단계[네트워크] 마케팅을 실천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제공합니다. 유튜브 및 각종 SNS에서는 오늘도 다단계 환상팔이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환상으로 낚기 위해 개소리들을 떠벌립니다.


정보화사회로 이행됨에 따라 사람들은 실물적 가치보다는 정보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소비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이 아니라 정보를 먹기 위해 많은 이들은 맛집을 찾아다닙니다. 더 많은 희소정보를 소비하고 또 소유함으로써 자기의 정체성을 그럴 듯하게 꾸미기 위해서입니다.


이 이미지의 시대에, 다단계 환상팔이들이 창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다단계 환상팔이들이 욕을 쳐먹어야 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다단계 환상팔이들의 사업이 번성할 수 있는 주된 핵심은 바로 '협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은 노골적으로 협박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아주 친절하고 밝게 웃으며, 긍정적인 태도로 사람들을 대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들의 불안심을 조장합니다.


다들 인생의 공식을 알아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중에 그 공식을 모르는 이만 뒤쳐져서 낙오할 것 같은 분위기를 교묘하게 만들어냅니다. 코인전도사들이 주변에 코인을 전파하는 방식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불안심을 부채질해, 이들은 사람들이 자기에게서 인생메뉴얼을 구매하도록 만듭니다. 사람들이 이 환상팔이들을 인생에서 성공한 인물로 보며 이들이 파는 환상을 구매하게 됨으로써, 이들은 사람들이 헌납한 자원을 통해 정말로 성공한 것처럼 행세할 수 있게 됩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남의 포르쉐 앞에서 찍은 사진을 자기의 것처럼 인스타에 게시해 사람들을 낚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들은 포르쉐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차후 사람들은 이 환상팔이들이 정말로 실물의 포르쉐를 갖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는 "아 이 분 말이 진짜였구나."라며 더욱 열렬히 환상을 구매하게 됩니다.


사람의 불안심을 조장하는 협박의 기제를 통해, 결국 사람들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제공한 자원들을 통해 자신의 성공을 이루어내는 이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말종 쓰레기의 모습입니다.


다단계 환상팔이들은 진짜 나쁜 새끼들입니다.


이러한 이들이 사람들에게 심리학인 것처럼 위장하는 냄새를 풍기는 일은 더 고약합니다. 심리학이라는 것이 인간을 협박하는 악성의 소재로 남용되는 까닭입니다.


결국 이 다단계 환상팔이들은 자기의 죽음이 두려워, 그 죽음에 대한 불안을 사람들에게 대신 떠넘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의 쓰레기를 불특정다수에 무차별적으로 투기한 뒤, 자기는 밝고 순수한 표정을 지으며 여여하게 웃습니다.


이들의 생태는 참피[실장석]와 전적으로 동일합니다. 온 세상에 똥을 뿌린 뒤, 자기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성공적인 존재인 것처럼 행위합니다. 그 본질은 사람들에게 빌붙어 있는 기생충이면서, 사람들 위에 선 인생스승인 것처럼 인생의 공식을 가르칩니다.


이러한 이들 중의 가장 병적인 이들은, 자기가 메타인지의 능력을 갖추고 신비한 마음의 법칙을 알았다는 이유로 자기를 깨달은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는 부류들입니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이들이 갖는 최종의 환상입니다.


초딩이 매트릭스 영화를 보고 꿈꾸는 환상입니다.


세상의 숨겨진 공식을 알아, 마치 프로그램을 해킹하듯이 세상을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는 그럴 수 있는 놀라운 존재라고 믿는 것입니다.


죽음이 엄청나게 두려워, 실은 매사가 다 불안한 초딩들이 이러한 환상을 소비합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초딩으로 보며, 자기가 성공적인 인생의 공식을 가르쳐 이 모든 불쌍한 초딩들을 구원해주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다단계 환상팔이들에게 왜 그러한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이들은 순수하고 무오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진짜로 제가 이 좋은 이야기들을 공짜로라도 풀고자 하는 건, 저만 성공하는 게 아니라 다 함께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에요. 성공할 수 있는 공식이 분명하게 존재하는데,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걸 모르고 억울하게 애쓰며 사는 건 너무 안타깝잖아요. 정말로 다들 애씀없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다단계 환상팔이들은 결국 구루질을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외모도 별로고, 이성에게 인기도 없는 찌질이 초딩이, 마음이니 심리학이니 하는 소재를 이용해 자기 인생을 반전시켜 이제는 한 차원 높은 학급의 반장처럼 대우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영적 우회(spiritual bypass)'라고 말합니다. 미발달의 심리적 문제가 있는 이가, 오컬트적 소재들을 통해 미발달의 상태를 우회하여 오히려 자기가 진정으로 성장한 인물인 척하려는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덜 자란 새끼들이 이렇게 종종 나쁜 새끼들이 됩니다.


물론 이들은 자기가 덜 자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는 남들보다 똑똑하니 더 성숙한 존재라고 간주하곤 합니다. 이들은 자기가 지적으로 멍청하게 보일까봐 늘 노심초사합니다. 누군가 자기의 지적 수준을 놀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언제나 자기의 지성을 과잉되게 증명하려고 합니다. 지적 유능성을 보이지 못하는 일은, 이들에게 있어 결격사유가 있는 미성숙한 존재가 되어 우주에서 추방당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을 야기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심리학적 성숙의 기준은 언제나 일치성입니다. 정직한 만큼 우리는 성숙합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위해 그 모든 것을 하면서, 언제나 자기는 남을 위해 하고 있다고 말하는 가식과 위선이, 이들을 결국 나쁜 새끼로 더 드러나게 합니다. 이 다단계 환상팔이들에 비하면 힙합하는 애들이 노골적이라 차라리 순수합니다.


재미있게도, 한국의 다단계 환상팔이들 중에는 왕년에 판타지소설을 쓰던 이들이 많습니다. 판타지소설을 쓰다보니 이들의 뇌가 판타지로 절여졌을 수 있다는 것은 합리적인 심증입니다. 이 마늘장아찌 같은 뇌로 혼자 심리학책을 독학해서 인생의 공식을 깨달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프로이트 원전 같은 것은 근데 왜 한 권도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학벌이 나쁜 것도 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입니다. 학벌이 좋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제도권의 학벌주의는 분명한 폭력입니다. 그러나 이 학벌주의의 폭력성이 성실한 전문성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이 환상팔이들의 더 큰 폭력적 태도를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다른 이들을 협박해서 먹고 사는 이가, 부당한 제도권에 대한 자유의 투사처럼 굴며 탈중앙화를 말하는 것은 그저 코미디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기성의 제도권이 하던 바로 그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단계 환상팔이 초딩들은 이처럼 언제나 가득한 자기모순 속에서 살아갑니다. 끝없는 내로남불입니다. 그 내적 긴장의 고통이 심해 마약하는 애들도 많이 있습니다.


협박에, 사기에, 마약에, 폭력성까지, 이거 완전 "살려는 드릴게."라고 하는 조폭입니다.


자기가 가장 조폭이면서, 오히려 자기는 다른 이들을 폭력과 가스라이팅, 최면, 세뇌 등의 위험한 소재들로부터 보호해주는 지혜롭고 상냥한 부모와 같은 영웅인 것처럼 입지화하는 것이 또한 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진심으로 이들은 자기들을 선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러한 글을 읽으면 화도 나고 아주 억울해 할 겁니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좋은 것을 주었을 뿐인데, 자기가 부당하게 욕을 먹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그보다도 이들의 내심은 "나만큼 돈을 벌지 못해 질투하는구나. ㅋㅋㅋㅋㅋ"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알려드립니다.


아무리 자기를 선하고, 정당하고, 더 많은 이가 지지해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너는 나쁜 새끼입니다.


모기와 동급입니다.


자기의 불안과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대신 불안하고 두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경제적 이득과 심리적 이득 그리고 나아가 도덕적 이득을 취하는 일은 엄연한 착취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착취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걱정하고 보호하는 모습으로 위장해서 하고 있는 그 행위가 바로 가스라이팅입니다.


정정합니다. 모기보다 더 악질입니다.


이 다단계 환상팔이들은 사기꾼이 맞습니다.


"내가 너한테 환상으로 사기쳐서 등쳐먹을 거니까, 내가 한 것과 같은 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너도 다른 사람들 등쳐먹도록 해. 그러면 경제적 자유를 얻고 유명인이 되어 성공할 수 있어. 이게 세상의 승리공식이라니까. 성공한 놈들은 다 이렇게 한다구."


이들이 가르치는 핵심은 사기치는 방법입니다.


한 번 사기꾼이 되면 거의 평생 사기꾼으로 살게 됩니다. 아무리 신분을 세탁해도 그 성질이 잘 변하지 않습니다. 멀쩡히 사는 척하다가도 기회만 되면 반드시 사기꾼으로 되돌아갑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사기도 중독이기 때문입니다.


사기를 칠 때 분비되는 도파민은 강렬합니다.


이 자극에 중독되어, 사기꾼은 계속 사기를 치게 됩니다.


"늑대가 나타났어요."라고 외치던 양치기 소년의 경우와 전적으로 동일합니다. 자위나 섹스보다 그 쾌락이 더 짜릿해서 양치기 소년은 늘 사기를 쳤던 것입니다.


이게 정신병입니다.


나쁜 새끼들은 거의 언제나 아픈 새끼들입니다.


자기가 아파서, 남들을 대신 아프게 만들려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더는 아프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구조는 다단계 피라미드입니다.


고통은 피라미드의 하위로 전가됩니다. 다단계는 고통의 연쇄구조입니다. 다단계 환상팔이들은 이 구조의 숭배자들이며 지지자들이고 또 촉진자들입니다.


"나보다 못난 이들을 대상으로 판다."


이것이 애초 이들이 환상을 팔 때 갖는 영업태도입니다.


이들의 환상상품을 구매한 이는 이들에게 반드시 얕잡아보인 이입니다.


환상팔이들에게 상품을 구매한 뒤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시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드립니다. 환상을 팔던 그 병신에게 자신이 그보다 더욱 못한 병신으로 얕잡아보였는데 분노하게 되는 일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 다단계 환상팔이들은 사회에 분노의 정서를 더욱 확산시킵니다. 자기들 때문에 화가 난 것인데, 마치 부당한 세상의 구조에 대해 사람들이 화가 난 것처럼 가스라이팅을 해서, 분노의 화살로부터 자기들은 슬며시 피해가는 동시에 그 과녁을 사회로 돌려 사람들을 더욱 반사회적으로 만듭니다.


대체로 자기 엄마에게 종속되어 있는 동시에, 자기 아빠에게 분노하고 있는 마마보이, 마마걸들이 이러한 다단계 환상팔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도권의 사회에 자기 아빠에 대한 분노를 투사한 뒤, 그 분노를 사람들에게 전가해 사람들이 대신 자기 아빠[사회]에게 분노하도록 조장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찌질이들입니다.


심리학이나 마음, 깨달음, 오컬트 이런 소재들을 통해, 자기가 찌질이에서 벗어나 위대한 존재가 된 것처럼 굴지만, 여전히 찌질이입니다. 단 1mm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100억을 벌었다고 찌질이가 아닌 게 아니라, 그건 그냥 100억이 있는 찌질이입니다.


100억이나 있는데 여전히 찌질이인 게 더 비참합니다. 여전히 엄마 앞에서 삐리삐리 굴며 아양을 떨고, 아빠 앞에서 부들부들 떨며 공손한 척하는 그 모습으로 평생 사는 일은 처참합니다.


정신병은 빨리 고치는 게 좋습니다.


비하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정신병이라서 하는 말입니다.


덜 자란 새끼는 분명 나쁜 새끼가 되고 싶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는 엄연하게 나쁜 새끼가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그 다음 징검돌을 밟을 수 있습니다. 다음의 앎이 생겨납니다.


자기가 아픈 새끼인 줄을 몰라서, 덜 자란 새끼는 나쁜 새끼가 된 것입니다.


히스테릭한 엄마와 감정이 융합되어, 그 감정에 따라 아빠를 절대악으로 보며 적대하는 세상 속에서는 모든 게 무섭기만 하고 도무지 아프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아빠를 찍어 누르려 하듯이, 네트워크의 동료들의 힘을 빌어 세상을 굴복시키려고 할 때, 정말로 아프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다 쉐도우 복싱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만든 환상세계 속에서 자기 혼자 치고 받으며, 자기 자신을 굴복시키고자 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교묘한 상황은, 이제는 자기가 성숙한 존재가 된 척하며, 엄마와 아빠를 용서하고 이제는 그들보다 더 관용적인 입장에서 그들을 품어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일 때입니다.


이게 가장 아픈 새끼의 상태입니다.


글복시킬 수 없으니 용서하려고 하는 상태입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걸 반동형성이라고 부릅니다. 자기가 실은 죽이고 싶은 일진 앞에서 실실 웃으며 그 비위를 맞추고 있는 모습 같은 것입니다. 니체는 이걸 노예의 도덕이라고 부릅니다. 자기보다 강한 이 앞에서 정신적으로 더 높은 태도를 취하여 도덕적 승리를 꾀하려는 모습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이런 짓을 하고 있으면 화가 엄청 쌓입니다. 집에서 자위용으로 중2병, 이고깽 판타지 소설이나 쓰며 그 화를 풀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유튜브나 인스타를 시작해 자기의 환상을 만천하에 확산시키려고 합니다. 화가 도저히 자기 혼자서는 감당이 안되기에 더 많은 이들이 같이 화를 소화해달라는 의도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화가 아니라 아픔입니다. 아픔이 망각된 만큼 화가 된 것입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의 확산은 아픔의 확산이 됩니다. 결국 더 많은 이에게 아픔을 확산시켜, 더 많은 이를 아프게 하는 나쁜 새끼는 이러한 방식으로 성립됩니다.


이 진짜 나쁜 새끼들은 진짜 아픈 새끼들입니다.


아픈 것들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성질을 갖습니다.


네트워크라는 수평적 그물망을, 다단계 환상팔이들은 피라미드의 수직적 단계로 둔갑시킵니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민주주의를 말하는 척하면서, 실은 자기가 상승할 구조를 획책합니다.


자기가 일진이 되면, 더는 일진들이 자기를 때리지 않을 거라고 믿는 까닭입니다.


"살려는 드릴게."라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할 수 있게 되면, 더는 자기가 죽음에 위협받는 일이 없어질 거라고 기대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픔만을 더 많이 그 자신의 삶에 확산시켜 온 그 결과는,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워진 현실입니다.


아픔은 죽음이 가깝게 있다는 그 신호입니다.


덜 자란 새끼, 나쁜 새끼, 아픈 새끼는 다 죽음을 달고 사는 이들의 이름입니다.


죽음을 가장 피하고자 부와 명예, 인기를 쌓아 자기를 방비하려 하지만, 실은 죽음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는 이들이 바로 다단계 환상팔이들입니다.


죽음은 그들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병든 그 속에서 옵니다.


다단계 환상팔이들이 유독 자기면역질환이나 암 같이 자기가 자기를 공격하는 증세들을 자주 경험합니다. 당연합니다. 모방이라고 하는 기제 자체가 원래 자기가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부정하는 이들이, 남들도 부정하게 됩니다. 가장 좋은 인생의 공식대로 모두가 똑같이 살 수 있는 윤리적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이게 독재고, 전체주의며, 인간에 대한 최고의 폭력입니다.


그런 즉, 최고의 사기란 '모범적인 마음 또는 인생의 공식에 따라 자기를 부정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파는 일입니다.


이런 걸 열심히 하며 가장 최고로 자기를 부정하려는 이가, 가장 죽음에 노출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가 더 빠르고 더 괴롭게 죽는 줄도 모르며 이런 걸 하고 있으니 아파도 보통 아픈 새끼들이 아닙니다.


너무 아프다보니 차라리 빨리 죽고 싶어서 그러는가 봅니다.


아프면 원래 사람이 좀 미칩니다.


미친 이들이 과잉되게 잘 웃습니다. 아주 밝고 순수하며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그 웃음으로 동반자살자들을 모아야 하니까요.


다단계 환상팔이들이 피라미드의 가장 위로 바득바득 올라가려는 이유입니다.


덜 자란 새끼가 가장 위에 올라가면 나비가 될 줄 압니다.


나비가 되면 어머니 계신 고향집에 나풀나풀 날아가렵니다. 그립고 정겨운 그 동산 위 나무에 앉아 이제 아무 걱정없이 한숨 돌리렵니다. 누렁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낮잠도 청해보렵니다.


그렇게 실은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다 지겹고 공허해서, 죽으려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혼자 죽으면 외로우니, 같이 죽자고 사람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자기 엄마에 대한 환상을 위해 모두를 제물로 바치려는 것입니다.


다단계 환상팔이는 이처럼 가장 본질적으로는, 자기 엄마를 파는 이들입니다.


자기가 자기 엄마와 같은 모습이 되어, 사람들 또한 자기 엄마와 똑같이 되도록 자기 엄마를 전도하는 이들입니다.


엄마가 이들에게는 신입니다. 유토피아이며, 인생의 궁극적 공식입니다.


그리고 남들도 그렇게 자기 엄마를 신이자, 유토피아이자, 인생의 궁극적 공식으로 모시라며 "닥치고 우리 엄마를 모방해!"라고 열정적으로 부르짖습니다.


자기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서 사람들에게 팝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먼저 사기를 치고 있으니, 이들에게 사기꾼은 평생의 운명입니다.


도파민에라도 중독되어야 아픔이 조금이라도 망각될 수 있는 마취효과가 있으려나 싶습니다.


더 많은 이가 함께 죽으면 덜 아프게 될 것이라는 믿음도 스테디셀러입니다.


그렇게 누군가는 슬퍼서 힙합을 추고, 누군가는 아파서 환상을 팝니다.


멀리 동산 위에서 들리는 나쁜 새끼들 우는 소리에 괜히 담배나 빨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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