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왜 배우세요?"
우리는 대체 심리학을 왜 배우고 있는 걸까요?
심리학을 알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면 세상살기 편해질 것 같아서? 또는 불쌍한 마음들이 울고 있으니 이제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 심리학을 배워 자신만 잘 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 마음을 잘 알게 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만약 그렇다면, 심리학보다 더 빠른 길들이 있습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심리학을 배우느라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심리학을 배우려는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용기있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마음을 알게 되기에 우리가 용기있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실존심리학은 '앎'의 차원이 아니라 '있음'의 차원을 말합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 언제나 중요합니다.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용기있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직 가지 않은 길에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을 향해 나서는 이 일을 모험이라고 부릅니다.
모험은 용기있는 삶입니다.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는 말처럼, 마음이 거기에 있기에 우리는 모험합니다.
공주를 향해 떠나는 용사처럼, 용기있는 모험의 삶이 펼쳐집니다.
마음이 자꾸 자기 안에 소유물로서 '있는 것처럼' 설정하고, 그 자기의 소유물을 잘 알려고만 할 때, 용기의 감각은 점점 더 흐려집니다.
현재 일본에서 연재되고 있는 『이세계 고마워』라는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던젼의 함정에 갇혀 시험을 받게 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시험의 내용은 모험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면 주인공이 가진 것들을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성욕을 포기하고, 돈과 인기를 포기하며, 장수하는 일까지도 정말로 어렵게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숨에 대한 그 시험이 최종의 시험이었고, 주인공은 결국 시험을 통과해 아무 것도 뺏기지 않은 채 함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자리를 떠나는 주인공에게 시험의 주인이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대답했을 그것은 혹시 무엇이었나?"
주인공은 답합니다.
"모험할 때의 두근거리는 마음."
이것은 거의 깨달음의 문답입니다.
마음은 두근거림으로만 존재하며, 두근거릴 때만 마음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마음이 있을 때는 우리가 모험할 때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한다 해도, 이 마음만은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단 한 번도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마음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단 한 번의 이 하나의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마음은 언제나 마지막의 마음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마지막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용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심리학을 통해, 우리가 마지막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용사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우리에게 다 맡겨졌습니다.
우리가 해낼 수 있다고 신성한 예언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이 용사라는 사실을 잊고 계세요?
그 사실을 다시 기억하고 싶어 아마도 당신은 심리학을 배우고 싶었을 겁니다.
심리학은 당신의 마법사 같은 앎이 아니라, 당신의 용사로서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을 두근거리게 하는 바로 그곳으로 향해보세요.
거기에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용기있는 실존적 모험가(Existential Adventurer), 실존상담자로서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