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심리학 하나요?"
심리학이 마인드(mind)를 다루는 분야라고 한다면, 그리고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마인드에 대해 모든 마음이니, 선한 의도를 갖고 있는 내면의 아이니, 분아적 접근이니,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어떻니 하는 수작들을 하고 있다면, 더는 심리학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실증학문으로서의 심리학도 밀리는데, 이러한 판타지소설로서의 심리학은 이 시대의 인지과학 앞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요?
서울대 인지과학 전공의 소개문을 잠시 인용해보겠습니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마음(mind) 또는 인지(cognition)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분야로서 새로운 학제간의 기초과학이다. 그리고 인지과학은 인지심리학, 언어학, 철학, 컴퓨터과학 및 신경과학의 기여를 바탕으로 하는 종합적 학문분야이다. 금세기에 있어서 가장 큰 학문적 변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전에는 엄격하게 구별해 온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분류체계가 무너지면서 인지과학이란 새로운 학제적인(interdisciplinary) 분야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심리학, 언어학, 철학, 인공지능학, 신경과학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인간의 마음(mind)의 본질을 밝혀내는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위해 상호보완적인 연구방법을 채택해 왔다. 수학자인 튜링의 '튜링기계'이론과 같은 철학과 수학에서의 형식이론과 계산이론의 발달, 폰 노이만등이 중심이 된 디지털 컴퓨터의 발달, 매칼러크와 피츠의 논리기계로서의 두뇌에 대한 이론, 위너의 인공두뇌학이론, 그리고 촘스키의 언어이론과 인지심리학적 실험결과들, 두뇌손상자들에 대한 신경과학적인 연구 등이 인지과학이라는 학제적인 분야의 개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인지과학은 마인드에 대한 각 분야의 핵심적 이해들이 집결되어 구성된 융복합적 학문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AI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실천분야이기도 합니다.
인지과학 앞에서, 마치 인지과학인 척 사기를 쳐온 대표적인 사이비심리학인 NLP(Neuro Linguistic Programing)의 무식성이 폭로되는 것과 같이, 이제는 통상적으로 소비되어 온 많은 심리학의 방식은 더는 유효하지 않은 사이비심리학적인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심리학이 철학에 대해 했던 그 일을 인지과학에게 당하게 되는 현실과도 같습니다.
"마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이상한 말만 많네."
이처럼 인지과학에 의해 심리학이 역으로 판정될 때, 여기에는 실은 이득이 더 큽니다.
일종의 마법처럼 여겨지던 '심리학의 탈신비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건강한 심리학의 영토가 새롭게 구성될 수 있습니다.
핑크빛 거품이 빠질대로 빠져서 "요즘 누가 심리학 하나요?"라는 말이 "요즘 누가 철학 하나요?"라는 말만큼이나 일상화될 때, 심리학의 가치는 더욱 분명해질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철학이 해왔으며 이제는 심리학이 정당하게 이어받을 수도 있는, 인간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일에 대해 우리는 떠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철학적 심리학'이 어쩌면 심리학에 유일하게 남게 되는 영토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 필요성이 아주 분명한 미래의 심리학의 영토일 수도 있습니다.
심리학이 더는 마음(mind)에 대한 이상한 이론이나 기술들의 도떼기시장이 아니라, 존재론적 마음(being)에 대한 궁극적 관심을 전개하는 분야로서 그 정체성이 뚜렷해진다면, 이는 실존상담자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지금껏 마음에 접근하고 있던 것이 실존심리학인 까닭입니다.
이것은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인간의 자리는 어디일지에 대한 물음과 그 맥을 함께합니다.
그와 같은 세상이 된다면 인간은 이제 마음놓고 행복해져도 될 그 자리를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라는 신뢰의 방향성을 갖고, 실존상담자는 인간행복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삶의 의미에 대해 탐구를 펼쳐나갑니다.
심리학이 기술적으로 무용하게 판정되고, 대중적으로 인기없는 소재로 전락될 때, 그래서 "요즘 누가 심리학 하나요?"라는 질문이 주어질 때, 실존상담자는 "저요."라며 아마도 손을 들 것입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제가 계속 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실존상담자는 분명 인간의 행복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