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상담자로 살기 #15

"환상없이 살아가는 일"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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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환상없이 살아간다면 모든 문제가 사라집니다.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환상만이 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환상'이란 무엇일까요?


모든 환상의 형식은 다를지라도 그 내용은 한결같습니다.


환상은 언제나 '자기만을 위한 특별규칙'의 내용을 갖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적용되는 이 특별규칙의 환상을 품고 있기에, 사람들은 남을 속이고, 사기를 치며, 폭력을 일삼습니다.


유아기 때 아동은 전능감의 환상을 갖게 됩니다. 자기 주변의 세상, 곧 아동에게는 '모든 세상'이 자기만을 위한 특별규칙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자기가 울면 주변인들이 자기의 기분을 맞춰주고 자원을 공급해주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와 그의 후예인 현대정신분석가들은 공통적으로 이 유아적 전능감의 환상이 해체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개인이 성인이 되지 못하고 미발달된 유아적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환상이 해체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신분석가의 필수적인 임무는 내담자의 환상을 해체하는 일입니다.


자신들도 내담자의 환상을 건강하게 해체시켜준다고 주장하는 가짜상담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들의 실상은 내담자가 원가족의 애착대상에게서 애착을 철회하게 한 뒤, 상담자인 자기에게로 그 애착을 돌리는 형태를 취합니다. 그렇게 자기가 내담자에게 굉장히 지적이고 능력있으며 인품도 뛰어난 거룩한 존재로 거듭나려 합니다.


이런 것을 '내담자 착취'라고 부릅니다.


내담자 착취만을 거듭하면서도, 모든 내담자가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준 자기에게 고마워했다며 자기를 뛰어난 상담자로 여기는 이들이 바로 가짜상담자들입니다.


환상의 해체는, 유아적 전능감의 특별규칙을 지지해줄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게 하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특별규칙이란 것 자체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환상의 해체입니다.


그런데 실은 자기만을 위한 특별규칙이 존재한다고 자기도 내심 믿고 있는 상담자가 가짜상담자가 됩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삽화를 말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엄지와 검지로 작은 메모지 한 장을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80억 인류가 하던 일을 다 멈추고, 오직 우리에게만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80억의 인류가 생중계되는 화면을 향해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는 "흔들려라. 흔들려라."라면서 정신을 집중합니다. 24시간 동안 전 인류가 강력하고 절실한 기운을 집중해서 우리가 지금 쥐고 있는 종이가 1mm라도 좌우로 흔들리게 만들고자 합니다.


종이는 흔들릴까요?


80억이나 되는 인간의 정신이 한 점으로 집결되었는데, 작은 메모지 한 장 정도는 미세하게라도 흔들릴 수 있지 않을까요?


어마어마한 정신력이 정말로 이 작은 물리적 실체 하나 움직일 수 없을까요?


그런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가 실존상담자입니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이며, 과학자들이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입니다.


비슷한 삽화를 또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누군가가 63빌딩 꼭대기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80억의 인류가 다시 집결합니다.


전 인류는 자신들의 두 팔을 아래에서 위로 받쳐드는 형상을 반복적으로 취하며 "반중력! 반중력!"을 외칩니다.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진실된 절박함으로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모아, 지금 추락하고 있는 이를 살리고자 "이야아아압!" 소리를 지르며 모든 기운을 간절하게 전송합니다.


그러면 바닥에 충돌하기 전에 그가 트램폴린에서 튕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공중으로 붕 솟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게 될까요?


80억의 위대한 정신력이 중력의 법칙을 넘어서 반중력의 기적을 일으키게 될까요?


이런 일은 절대로 생길 수 없다는 사실에 실존상담자는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같이 목숨을 걸 수 있는 이들이 심리학자들이고, 과학자들이며,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와 같은 '마법'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역으로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80억의 정신력을 집중해줄테니, 본인이 63빌딩 옥상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낙하할 당사자가 될 수 있냐고.


물론 누군가는 반골적인 의지로 충천한 눈빛과 이를 악문 다부진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하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정신병 때문에 시체를 치워야 할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집니다.


환상에 목숨을 거는 것이 정신병입니다.


세상은 자기를 위한 특별규칙으로 작동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세상에 대해 반골적인 투쟁을 펼치는 것이 또한 정신병입니다.


특별규칙은 없습니다.


마음도 자연입니다. 자연에는 특정한 누군가만을 위한 특별규칙이 없습니다.


자기만을 위한 특별규칙을 꿈꾸는 이들이 방구석에서 여러 소설들을 써냅니다.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는 자기가 특별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사실을 무시하고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만을 신봉하게 됩니다.


자기가 만든 이야기를 가장 위대한 진리처럼 자기 자신이 믿게 된 이 상태가 바로 환상에 빠진 상태입니다.


모든 환상은 이야기입니다.


유아적 전능감을 존속하려는 자위활동의 목적으로 구성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경험을 했고, 또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삶이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가 보잘 것 없이 생각되면 돈을 벌거나 성형수술을 하는 식으로 그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가공을 가합니다.


이처럼 이야기를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한 우리는 다소간에 환상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삶은 이야기가 아니며, 특히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더욱 아닙니다.


이 삶을 자기가 주인공인 이야기라고 믿고 싶어하는 것이 유아입니다. 그러니 늘 주인공을 위한 특별규칙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술래잡기를 할 때 자기는 늘 손해도 피해도 입지 않는 무적의 깍두기여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동의 모습과 같습니다.


사기를 치고 사람을 죽인 뒤에도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서서 얼굴의 각도를 의식하며 무협지 같은 대사를 발화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인공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만든 환상에 빠져 살고 있어서,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그 실감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이 '주인공병'일 것입니다. 자기의 인생이라고 하는 이야기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서야 한다는 압박이 늘 현대인들을 괴롭힙니다. SNS를 순례하면서 우울해지는 것은 다들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자기만 변두리로 밀려난 주변인 A 같이 경험되기 때문입니다.


공정하게 말하건대, 아마도 시대가 정신병을 더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사실일지 모릅니다.


인구수가 많아지면, 물질적 자원의 희소성은 더 커져갑니다. 그러면 자원을 얻지 못하게 된 이들의 불만은 높아지며, 이는 결국 문명의 붕괴로 이어지게 될 위험성을 낳습니다.


그러니 문명은 '실체적 자원' 대신에 '추상적 자원'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선전하게 됩니다. 문명이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환상팔이'를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집을 살 수 없는 이들이 메타버스에서는 강남에 있는 아파트 몇 채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달에 있는 부동산을 구입한 이들도 있습니다.


문명이 촉진하는 이 환상들을 소비하는 이들은, 자기가 조금 앞선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스스로를 뿌듯하게 경험하곤 합니다. 진보적인 근미래인으로서의 '자기의 공상과학이야기'를 술자리에서 자랑스럽게 늘어놓기도 합니다.


중세 교회가 면죄부를 팔던 그 상황과 유사합니다.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팔아 그들이 천국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함으로써 사회적 불만은 억눌러지고 기득권은 유지됩니다.


환상으로 미쳐 돌아가는 이 시대상황 속에서 마르틴 루터는 등장했고, 결국 종교개혁의 불씨가 촉발되었습니다.


모든 변혁은 환상을 해체하고자 하는 그 의도를 갖습니다. 환상이 해체된 만큼 인간은 자신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존상담자가 이러한 의미의 변혁가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환상이 예찬되는 시대에, 실존상담자는 환상없이 살아가는 일을 말합니다.


환상에 종속되어 사육되어야만 하는 미성숙한 동물이 아니라, 환상없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세우는 성숙한 인간이 바로 우리의 존재라는 것을 실존상담자는 신뢰하는 까닭입니다.


실존상담자가 환상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인 바로 당신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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