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죽을거야, 죽을거야."를 실없는 술버릇처럼 반복하던 이가, 친했던 후배의 부고를 듣고 멈칫한 것은 취기 속에 실없이 가리고자 했던 진실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술을 마셔 다시 취기 속에 은신해야 하는데 술약속은 잡히지 않고, 그는 영락없이 기억에 사로잡힌 포로다.
사진처럼 선명한 마음들이 있는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그 앞에서 그냥 도망가버린 마음들이다.
우수어린 시간들은 그렇게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마스크에 가려진 입처럼, 말할 수 없는 마음들이 퇴적되어 우수의 무게를 얹는다.
되도 않는 농담들은 헛바람처럼 압력솥의 증기를 빼보고자 하는, 실은 투쟁들. 그리고 싫은 투쟁들을 피하고자 관계의 옷깃을 스치며 내는 휘파람들.
그러나 더는 숨길 수 없이 이제는 친우의 죽음을 마주하러 광양(光陽)으로 가야 한다.
죽음은 마주되어야 한다.
말할 수 없던 마음은 햇볕을 마주해야 한다.
따듯한 햇볕의 장소(光陽)를 향해가며, 우수(憂愁)는 녹아 우수(雨水)의 절기를 맞는다.
굳어 있던 마음의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른다. 싹이 움튼다.
죽음을 향해 가던 이들은 삶을 향해 가던 중이었다.
점점 더 죽음을 향해 갈수록,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간다. 혼자 찍어본 영정사진의 뻣뻣한 침묵과는 사뭇 다른 살아있는 표정이고, 그 목소리다.
말을 해야 한다면, 이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직해지며, 정직함을 알아본다.
모르는 척하는 일은 다 관뒀다.
유령으로 사는 일은 다 거부했다.
이제 죽음을 향해 가니까, 이제 다시 삶을 찾으러 가니까.
죽음의 선명함만큼이나, 삶에 내려앉는 발걸음소리도 명징해진다.
웃음소리도, 그 의미도.
잘못 온 건 아니고, 덜 온 것이지만, 제대로 오고 있는 중이다.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고 싹이 트는 봄이.
삶이.
우수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