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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Sep 09. 2019

호구처럼 착취되어 버려진 그대에게

"마음의 스케치북"



  그대여, 그대는 왜 호구가 되어 남들에게 착취되어 왔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이유는 알지만 멈출 수가 없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그대가 구제불능이라는 불변의 사실과 관련되어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대는 구제불능이다. 적어도 그대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그대는 바로 애정결핍이라고 하는 구제불능이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늘 공허함을 느낀다. 사람으로 채워보아도, 음식으로 채워보아도, 쇼핑으로 채워보아도, 결코 그대의 마음은 만족스럽게 채워진 적이 없다.


  그대는 잘못 태어난 것만 같다. 태어날 때 뽑기를 잘못해, 무언가가 대단히 결핍된 불량품으로 출하된 것만 같다. 그야말로, 반품이나 환불도 안되는 구제불능이다.


  그대가 이 구제불능의 불량품인 것처럼 살아왔기에, 그대가 호구가 되는 일은 필연이었다.


  그렇게 형편없는 그대라도, 바로 그러한 그대의 힘과 자원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그것은 그대에게 작은 구원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대는 그대의 힘과 자원을 요구하는 이에게 아낌없이 다 내주었다. 그것이 착취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그대는 유감없이 다 내주었다.


  다 내주지 않고서는, 그대는 도무지 살아갈 방법을 몰랐다.


  그대는 처절했다.


  그대는 그렇게 착취의 형태로나마 누군가가 그대를 필요로 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세상에서 갈 곳 없이 불량품으로 표류하는 그대가 잠시라도 앉아서 쉴 한 조각의 자리를 찾아내기 위해 그대는 그토록 처절했다.


  처절한 그대에게 호구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그대가 호구가 되는 일은 정녕 필연이었다.


  그리고 호구가 되어 다 뜯어먹힌 후, 그대가 쓰레기로 버려지는 일 또한 필연이었다.


  쓰레기는 더러운 것이다.


  그대는 자신이 더럽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그대를 더럽게 만든 그대의 운명을 저주했다. 구제불능의 불량품으로 태어나게 한 그대의 부모를 원망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애정결핍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그대 자신을 증오했다.


  이것이 지금 그대가 왜 그토록 그대 자신에게 화나있는지에 대한 그 이유다.


  그대여, 호구처럼 착취되어 버려진 그대여, 그대는 몹시 화가 나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에게 그대는 무척이나 화가 나있다.


  그대여, 그러나 나는 말하고자 한다. 그대가 더 화내지 않는다면 나는 말하고자 한다. 그대가 더 화낸다 해도 나는 말하고자 한다.


  그대여, 그대는 애정결핍이 아니다.


  그대는 단지 외로웠던 것뿐이다.


  그대는 단지, 아주 많이도 외로웠던 것뿐이다.


  누구도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크기로 외로웠던 것뿐이다.


  그렇게 그대는, 누구도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크기의 스케치북을 갖고 있었다.


  그대가 그대 가슴 속에 텅 비어 있다고 느끼던 그 막연한 여백은, 그대가 그대 가슴 속에 가진 스케치북의 막대한 여백이었다.


  그대여, 그대의 외로움은 바로 그대가 갖고 있는 마음의 스케치북이다.


  그대의 스케치북이 다른 이들의 것보다 유독 커다란 이유는, 그대의 모습을 제일 예쁘게 그리고 싶어서 그대가 직접 제일 큰 사이즈로 하늘에 주문했던 까닭이다.


  그대의 외로움의 크기는 그렇게 그대라는 사람의 그릇의 크기다.


  더 많은 것을 그 안에 담아 가득 사랑할 수 있고, 그만큼 더 사랑받는 그대의 모습으로 환히 드러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그대 자신의 크기다.


  그대는 그 커다란 그대 자신 안에, 그 커다란 스케치북 위에, 자유롭게 그대를 그려낸다. 어여쁘게 그대를 꽃피운다. 가장 멋진 모습으로 그대 스스로를 창조해간다.


  그래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애정결핍이라고 스스로를 착각하고 있던 동안 남들에게 다 내주었던 그대의 스케치북에는, 그대의 모습 대신에 온통 남들이 장난 같이 남기고 간 낙서만이 가득하다. 장난감 같은 착취의 흔적만이 역력하다.


  바로 그렇게,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상처처럼 남은 낙서투성이의 스케치북에는, 더는 그대의 모습을 그려낼 하얀 여백조차도 얼마 남지 않은 것만 같다.


  그래서 그 작은 여백 위에 그대가 가까스로 그려낸 그림 역시도, 그저 여백의 크기만큼이나 작디 작은 그대의 모습에 불과할 뿐이다. 매사에 자신감 없이 위축되어 있고, 모든 것이 두려워 밖에 나가기도 힘겹기만 한, 한없이 작디 작은 존재의 모습에 불과할 뿐이다.


  이처럼, 남들의 낙서로 더럽혀져 더는 그대의 모습을 그려낼 수 없게 되어버린 그대 자신의 스케치북을 들고서, 그렇게 온갖 오염물로 더럽혀져 쓰레기처럼 되어버린 그대 자신의 스케치북을 바라보면서, 그대는 다만 저주하고, 원망하며, 증오할 뿐이다.


  그대 자신을.


  그대 자신을 지키지 못했던 그대 자신을.


  그렇게 그대는 화가 몹시 나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에게 그대는 무척이나 화가 나있다.


  그대여, 그러나 나는 말하고자 한다. 그대가 더 화내지 않아도 되도록 나는 기어코 말하고자 한다. 그대가 더 화낼 필요가 없도록 나는 기필코 말하고자 한다.


  그대여, 가능하다.


  지울 수 있다.


  반드시 지울 수 있다.


  깨끗하게 되돌릴 수 있다.


  그대여, 마음의 스케치북을 깨끗하게 해주는 지우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눈물이다.


  그대의 눈물이다.


  그대가 애정결핍이라는 착각 속에서 그대의 스케치북을 남들이 함부로 낙서하는 공공화장실의 담벼락처럼 용인했던 그 현실에 대하여, 그대가 정직하게 아파하며 눈물 흘리는 만큼 그 모든 낙서들은 깨끗하게 지워져간다.


  그대가 그대 자신을 지키지 못했던 그대 자신을 더러운 죄인으로 심판했던 그 현실에 대하여, 가장 아팠던 이는 바로 자책과 후회 속에서 매일 밤 울부짖으며 눈물 흘리던 그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그대가 그 정직한 죄인의 아픔을 위해 눈물 흘리는 만큼 그 모든 낙서들은 깨끗하게 지워져간다.


  그대의 눈물은 증표다.


  용서의 증표다.


  이 세상에 눈물로 지워질 수 없는 것은 없다. 용서될 수 없는 죄인은 없다.


  그대도 돌이킬 수 있다.


  그렇게 그대는 눈물로 용서된다. 죄인이었던 그대는 눈물로 씻겨진다. 그대에게 새겨진 죄인의 낙인이 눈물로 지워진다.


  이로 인해, 그대는 다시 순백으로 회복된다. 그대의 순수는 반드시 회복된다.


  그리고 그대의 스케치북은,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채 오직 그대만을 기다리고 있는, 가장 예쁜 그대의 모습이 그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모습으로 그대 앞에 새롭게 펼쳐진다.


  그대여, 가장 예쁜 그대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서 가장 커다란 스케치북을 하늘로부터 받았던 그대여.


  가능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결코 늦지 않았다.


  그대의 작은 눈물이 어두운 방 안에 켜진 촛불의 빛처럼 번져가, 그 모든 어둡던 기억들을 깨끗하게 씻어줄 것이다.


  깨끗한 스케치북 위로 하얗고 고운 그대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아── 그대는 웃고 있을 것이다.


  화날 것 없이 환할 것이다.


  그대의 미소가 그렇게 밝을 것이다.


  그대의 미래와 같을 것이다.






토이 - 스케치북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 동안
어떤 색을 칠할 수가 있을까
파란 하늘처럼 하얀 초생달처럼
항상 그렇게 있는 것처럼
살 수 있을까
붓을 들 땐 난 고민을 하지
조그만 파레트 위에 놓인
몇 되지도 않는 물감들은 서로 날 유혹해
화려한 색칠로 (멋을 냈지만)
들여다보면 어색할 뿐
고민하지 마
너 느끼는 그대로 (너의) 지금 (모습)
솔직하게 그리면 되잖니
걱정하지는 마
니 작은 꿈들을 (칠할) 하얀 (공간)
아직까지 충분해
편협했던 내 비좁은 마음
무엇을 찾아 헤매인걸까
내 옆에 있어준 소중한 것들을 잊은 채
현실이란 이유 (그것만으로)
이기적인 삶 걸어왔지
고민하지 마
좀 잘못되면 어때 (처음)부터 (다시)
지우개로 지우면 되잖니
걱정하지는 마
좀 서투르면 어때 (그런) 너의 (모습)
아름답기만 한 걸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 동안
어떤 색을 칠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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