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속에 비친 그대"
그대가 야청빛의 하늘 위로 솟아오른 커다란 보름달에 소원을 빌고자 한다면, 그 소원은 필시 작지 않아야 하리라. 보름달만큼이나 커다란 소원이어야 하리라.
그래서 그대는 적어도 이 절기에는 마음을 먹는다.
그대가 소망할 수 있는 가장 큰 소원을 빌 마음을 먹는다.
이 추수의 절기를 맞아, 그렇게 그대는 가장 큰 알곡을 수확해 먹고자 한다.
소원을 빌고자 하는 그대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소원을 빌 수 있다는 것은 그대가 완벽한 무오류성(infallibility)의 존재인 것처럼 그대 자신을 속이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증거인 까닭이다.
그대가 유한할 때야 비로소 그대는 소망할 수 있다. 진짜 소원을 빌 수 있다.
유한하다는 것은 그대가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늘 올바른 구원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자격을 부여받은 정의의 용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대가 소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대가 히어로와 같은 구원자를 흉내내며 그러한 자기에게 도취되는 유치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대가 그대의 유한성을 자각할 때, 그대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어른은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유한성을 수용하는 존재다. 그래서 어른의 소원은 진정하다.
진정성(authenticity), 이것은 그대가 얼마나 정직한가에 대한 표현이다.
정직하다는 것은 안팎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자신을 향한 태도와 타자를 향한 태도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직함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은 성숙함이다. 결국 이처럼 정직함은 그대의 존재적 크기에 대한 문제다.
그대가 그대의 유한성을 인식하는만큼 그대는 정직해진다. 성숙해진다. 더 커진다. 그리고 그렇게 커다란 그대에게서 소망되는 소원 또한 커다란 형상이 된다. 성숙한 형상이 된다. 정직한 형상이 된다.
그대여, 키르케고르는 그대에게 다음과 같이 전한다.
"우리는 소망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소망한다. 그것이 불안이다."
키르케고르는 이 불안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을 바로 성숙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곧,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소망할 수 있는 인간이 더 큰 인간이다.
때문에 그대의 소원이 진정한 소원이라면, 그대는 반드시 그 소원과 함께 두려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도 소망하는 만큼, 그대는 그대의 유한성을 자기의 것으로 섭식하며 점점 더 무르익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그대여, 그대를 가장 크게 드러나게 해주는, 그대에게 가장 큰 소원이란 무엇이겠는가?
그대를 가장 두렵게 하는 소원이 바로 가장 큰 소원이다.
그대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권력도, 지위도, 돈도, 가족도, 연애도, 정치도, 성공도 아니다. 심지어 그대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죽음도 아니다.
죽음보다 그대가 더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그대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 분명하게 그대에게는 죽음보다 사랑이 더 큰 것이다.
그대는 사랑을 가장 두려워하며, 사랑을 가장 소망한다. 사랑이 언제나 그대가 비는 가장 큰 소원이다.
그대가 사랑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대가 왜 소망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소망하는지에 대한 그 이유는 명료하게 이해될 수 있다.
기억해보라, 그대여.
모든 소원은 그대가 유한하기 때문에 소망되는 것이다. 곧, 모든 소원은 그대가 그대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기 때문에 소망되는 것이다.
곧, 소원은 한계의 해체를 이룬다. 그리고 한계란 더는 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현재의 그대 자신이 가진 경계다. 알의 껍질이라는 경계가 곧 알 그 자체인 것처럼, 그대의 경계는 곧 그대 자신이다. 때문에 한계를 해체한다는 것은 바로 지금까지의 그대 자신을 해체한다는 것과 같다.
이것이 그대가 소망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바로 그 이유다.
그대가 그대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그대 자신 또한 변화되어야만 한다. 그대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세상도 변화되지 않는다.
그대 자신이 해체되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그럼으로써 기존의 한계보다 더 커다란 그대 자신으로 드러나는 것, 이것은 사랑의 정의다.
사랑은 더 큰 그대 자신을 꿈꾸는 작용이며, 그렇게 더 큰 그대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허락하는 힘이다.
떠올려보라, 그대여.
그대가 사랑할 때, 그대는 상대를 더 품게 되며, 그로 인해 더 큰 그대 자신을 체험하게 된다. 정확하게 이와 같다.
사랑은 언제나 그대 자신을 해체시킨다. 그대가 기존에 뿌리내리고 있던 기반을 흔들어댄다.
그래서 그대는 사랑이 두려운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그대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될 것 같아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대는 사랑을 소망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한계를 벗어나 더 큰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릴 지브란은 이렇게 사랑을 노래했다.
사랑이 그대를 부르면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거칠고 험할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감싸안으면 그 품에 가득 안기라
그 날개 속에 숨은 칼날이 그대를 상처입힐지라도
사랑이 그대에게 말할 땐 그 말을 믿으라
북풍이 저 뜰을 폐허로 만들듯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망칠지라도
사랑이란 그대에게 영광의 관을 씌우는 만큼 또 그대를 괴롭히기도 하는 것
사랑이란 그대를 성숙시키는 만큼 또 그대를 베어버리기도 하는 것
사랑은 그대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햇빛에 떨고 있는
그대의 가장 부드러운 가지들을 껴안기도 하지만
또한 사랑은 그대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대지에 엉켜있는
그대의 뿌리를 흔들어대기도 하는 것
사랑은 그대를 곡식단처럼 자기에게로 수확하는 것
사랑은 그대를 두드려 탈곡하는 것
사랑은 그대를 갈아 순백의 가루로 변하게 하는 것
그리고 사랑은 그대를 유연하게 반죽하여
신의 향연을 위한 거룩한 빵이 되도록
신성한 자기의 불꽃 위에 올려놓는 것
사랑은 이 모든 일을 그대에게 행하여
그대로 하여금 마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고
그 깨달음이 그대가 살아가는 가슴에 새겨지게 하리라
그대여, 그대는 야청빛의 하늘 위로 솟아오른 커다란 보름달에 바로 이 소원을 빈다. 사랑하고자 하는 소원을 품는다. 더 큰 그대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정의의 용사처럼 자기를 부동의 중심으로 둔 채 세상만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어린아이들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이 거룩한 사랑의 소원을, 그대는 기적처럼 꿈꾼다.
완벽하지 않고 유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이 기적을 꿈꾼다.
불완전하기에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기적 같은 그대의 모습을 꿈꾼다.
그렇게 그대는 그대를 기적으로 꿈꾼다.
그래서 소원을 빌고자 하는 그대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보름달만큼이나 그대는 아름답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대가 아름답기 때문에 보름달이 아름답다.
그대여, 보름달은 거울이다.
이 추수의 절기를 맞아, 그대는 가득찬 거울에 가득히 그대를 비추어본다. 그렇게 가장 크게 비치는 가장 큰 그대 자신을 수확한다. 그러한 그대 자신을 기꺼이 그대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섭식한다. 허락한다. 가장 큰 그대 자신이 된다.
때문에 거울에 비친 그 커다란 아름다움은, 거울의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대만 남는다.
거울이 없어져도, 그대는 남는다.
그대를 향해 환히 미소짓던 보름달이 사라져도, 그 미소는 남는다.
그대의 환한 얼굴 위에.
가득한 그대의 미소가 이제 세상을 비춘다.
사랑은 더 큰 수확을 준비한다.
그 사랑의 미소 속에 언제나 그대가 비친다.
Michael Jackson - Man in the Mirror
I'm starting with the man in the mirror
난 거울 속에 비친 이 사람과 시작할거야
I'm asking him to change his ways
그가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부탁할거야
And no message could have been any clearer
이보다 더 분명한 메시지는 없을거야
If you wanna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만약 네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Take a look at yourself and then make a change
스스로를 정직하게 보고, 네 자신부터 변화시켜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