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9

"깨달음과 정신병"

by 깨닫는마음씨




깨달음과 정신병은 아주 연관되어 있다. 윌리엄 제임스는 이 섬세한 사실을 밝히면서 종교심리학의 지평을 열었다.


깨달은 정신병이 깨달음이고, 깨닫지 못한 정신병이 정신병이다.


이 모든 것을 건강함의 척도로 비추어보면 명확해진다.


자기에게 병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오히려 건강한 이다. 자기가 병든지도 모르는 이는 가장 불건강한 이다.


병이라는 말, 특히나 정신병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불편하게 들린다. 여기에는 자기관리의 결여라는 가정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병.은. 마.치. 우.리. 자.신.이. 잘.못.한. 증.거.인. 것.처.럼. 간.주.된.다.


정신병에 대해서는 이 착각이 더 팽배하다. 누구도 자신이 정신병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신병은 흡사 '죄인'의 낙인이다.


죄가 아니고, 잘못이 아니며, 단지 이상성의 증세일 뿐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개인에게 발현된 어떠한 이상성은 그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건강을 지속하려는 그 노력의 결과였다는 점이다.


바위산에서 그 줄기가 구불구불하게 자라난 식물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분명하다.


이.상.해.보.이.지.만. 건.강.한. 것.이.다.


깨달음은 정상이냐 이상이냐가 아니라, 건강하냐 불건강하냐의 지표를 갖는다.


정신병을 깨닫는다는 것은 그 정신병 안에 담긴 건강한 존재의 빛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우스갯소리로 인류는 지금까지 그 자존심에 치명적인 세 번의 타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코페르니쿠스에 의해서였다. 인간이 사는 곳이 우주의 중심인 줄 알았는데 실은 변두리였다.


다윈은 두 번째의 타격을 가한다. 그래도 인간인 줄 알았는데 실은 원숭이였다.


세 번째로 프로이트가 등장한다. 모든 원숭이가 병들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적어도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처럼 모든 인류는 정신병이다.


그러니 모든 인류는 다 깨달음의 조건을 더할 나위 없이 갖추고 있다.


깨달음은 우리에게 판정된 정신병이 건강한 이상성이었음을 다시 아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던 이상성이 정신병으로 판정되어버린 이유는 역설적이다.


우.리.는. 이.상.하.지. 않.게. 보.이.려. 해.서. 정.말.로. 이.상.하.게. 보.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가 작용한다. 윤리가 건강보다 앞세워진 것이다. 실제로 건강한 것보다 오로지 정상처럼 남들에게 보이는 일만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통제된 정상성'이 곧 건강함이라고 우리는 크게 오해하며 살았다.


그렇게 자신은 건강하고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믿게 되니, 자신의 정신병은 더욱 자각되지 않게 되었다. 이상하게 보이는 병의 징후들은 숨길 수 없이 드러나있지만 결단코 정신병만은 아니라고 완강하게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병든 줄도 모르는 신세가 된 것이다. 병든 줄을 모르니 그 치유도 더욱 요원하게 되었다.


우리의 이상성을 숨김으로써, 우리가 정신병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게 만드는 데 주요하게 쓰이는 도구가 바로 '언어'다.


윤.리.는. 언.어.로. 집.행.된.다.


조선시대의 설화들을 떠올려보자. 이상하게 보이는 여자귀신들을 꾸짖어 다스리는 데 남자선비들이 활용했던 것이 언어다.


이처럼 언어는 '올바르지 못한 마음'을 제어하는 윤리적 효과가 있다고 믿어져왔다.


쉽게 말해, 이상성을 정상성으로 바꾸어주는 도구로서 언어를 숭상해온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다만 '억압'이라고 부른다.


포스트모던의 사상가들은 니체의 후예들답게 언어적 담론에 의해 생겨나는 권력과, 그 권력이 자행하는 억압의 문제를 심도있게 분석해왔다.


이것을 '윤리의 폭력'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 세상의 모든 이상한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언어의 힘이 자기에게 담지되어 있다고 믿는 이가 이 폭력의 주체다.


깨닫지 못한 정신병의 주체가 깨달은 척하고 있을 때 반드시 이러한 주체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불건강함의 의미로서의 정신병적인 것이다.


언어를 통해 자신을 정상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이들은 언어로 자신을 꾸며내는 일에 능하다. 속은 썩어들어가지만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한 모습과 유사하다.


이러한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만은 정상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오히려 이상성을 챙겨주는 입장에 곧잘 서곤 한다. 대사로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이 이상하다고 쫄지 마세요.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온전한 것입니다. 남들이 아무리 이상하다고 비난해도 당신은 '당신만의 정상성'을 지켜내야 합니다. 원래 모두에게 들어맞는 정상성은 없습니다. 남들이 이상하다고 하는 당신의 모습을 당신이 당당하게 이야기로 할 때 '당신만의 정상성'은 늠름하게 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주체는, 자기가 이상한 이들을 알아주는 입장에 위치함으로써 자기만은 이상성을 벗어난 '정상적인 주체'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원래 가장 이상성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이가 가장 이상성을 돌보아주려는 입장에 서게 된다.


단순한 비유를 들어보자.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사실 앞에서 점잔을 빼며, 저 귀에는 어떠한 아픔이 있었기에 당나귀 귀가 되었을까를 진중하게 숙고함으로써 그 온전함을 알아주려고 하는 일이 온전함이 아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으하하!"라고 하는 일이 온전함이다.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지. 못.해. 우.리.는. 병.에. 걸.린.다.


"인어공주 진짜 존나 못생겼네."라고 말할 수 없게끔, 윤리적 언어에 의해 억압되고 있어서 우리는 고통받는다.


회의주의학파의 마이클 셔머는 조금 지난 시대에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라는 책을 썼지만, 이 시대에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정상의 것으로 강요하는가』라는 책이 필요하다.


이상성을 온전한 정상성으로 보라고 강요하는 일은 오히려 이상성에 대한 모독이다.


심지어는 남들에게 그런 강요를 하고 있는 주체 자신은 그 이상성을 소비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기가 데이트를 해야 한다면 안데르센의 그 예쁜 인어공주와 할 거면서, 남들에게는 못생긴 인어공주가 얼마나 온전한지를 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기는 똑바로 못살면서 맨날 여자귀신들이나 혼내던 조선선비들의 내로남불과 유사하다.


남들의 이상성을 돌보아주어야 할 때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이상성에 대한 관심이다.


"언냐들 나만 이상해?"라고 물어봐야 할 것이 아니라 "나만 이상하네."라고 깨달아야 한다.


이.상.성.을. 정.말.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에게 웃음이 돌아온다.


자신이 자신을 보고 웃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가장 신성한 웃음, 자기초월의 웃음이다.


강제수용소에서 생환한 빅터 프랭클은 바로 이 자기초월의 웃음이 만병통치약임을 밝힌다.


그러한 웃음 속에는 건강함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


깨달음은 이 웃음으로 사는 일이다.


이상하니 빨리 거기에다가 윤리적 정상성의 의미를 담아 조형한 온전함이라는 언어를 붙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이상해서 웃음이 더욱 피어나는 것이다.


이상해서 자꾸 사랑스럽다.


그것은 삶의 고난을 유연하게 헤쳐 나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이상한 형상이 되었던 우리 존재의 건강함이 이제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것은 강한 것이며, 강한 것은 사랑스럽다.


우리가 어떤 친구와 어울려 노는 일을 좋아하는지를 떠올려보면 이 또한 분명하다.


함부로 놀릴 수 없이 늘 세상의 불쌍한 것들이 너무 가슴아프다며 올바른 말만 하고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상적인 친구인가? 그렇지 않으면 심성이 튼튼해서 매번 놀려도 같이 웃으며 함께 재미있어지는 좀 이상한 친구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이처럼 아주 분명하다.


우리는 건강한 이상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힘찬 모습인 까닭이다.


대체로 이러한 깨달음 얘기는 존나 이상한 얘기다.


그런데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것은 존재의 힘이다.


바로 이 힘이 있기에 인간은 모두 강한 것이다.


강한 존재만이 이상할 수 있으며, 정신병에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역으로 되짚어 정신병 속에 담긴, 이상성 속에 담긴 우리 존재의 빛나는 면모를 깨닫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임금님이 싱긋 웃는다.


깨달은 귀가 쫑긋 빛난다.


아무래도 좀 이상한 그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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