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붙일 곳이 없는 아이들"
깨.달.음.은. 마.음.이. 붙.을. 곳.을. 찾.은. 것.이.다.
찰떡처럼 마음이 붙어있을 곳이 있어야 안심이 된다. 땅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두 손이 자유로워지듯이, 마음이 안심될 때 삶의 자유도 느껴진다.
그러나 오늘날의 아이들은 마음붙일 곳이 없다.
몸만 어른으로 큰 아이들일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 짙다.
이러한 현상이 생겨난 근본적인 이유는 아이들에게 어른으로 기능해야 했던 가정과 사회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주어야 했던 이들은 똑같은 어른아이로서 아이들의 눈치만을 봐왔다.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커.서.다.
맞벌이를 하는 동안 아이들을 대신 돌보아줄 곳이 필요해 학원을 보낸다. 봉고차에 탑승한 아이들은 택배처럼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운송되어간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더 얘기하며 놀고 싶어도, 서로 가야 할 학원이 다르다.
그렇게 하루종일 홀로 외로운 기계인간처럼 은하철도 999를 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낯설다. 자신이 무슨 기분을 느끼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해가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만나줄 이는 집에도 없다.
밀린 집안일을 하고 내일의 출근준비를 해야 하는 부모는, 분명 상냥하지만 아이의 가슴에 깊이 접촉해오지는 못한다.
실.은. 부.모.들. 자.신.도. 아.이.와. 같.은. 기.분.이.다.
자신이 현재 느끼는 마음이 낯설어 뭔가 설명이 필요하지만 그 설명을 해줄 이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낯설어 서로의 마음이 낯설기만 한 가족은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한다. 무늬만 가족인지, 이 뒤척임이 가족이라는 무늬인지, 영문을 모를 밤들만 반복되는 시간 속에 새겨져간다.
이 현대의 가족을 돌보아줄 장치는 사회에 없다. 사회는 이러한 기능을 정지한지 오래다.
대신에 사회는 가상현실을 미디어로 선전한다.
마음붙일 곳이 없는 아이들이 혹여나 사고만은 저지르지 않게 가상현실로 그들의 시선을 돌리는 일에만 매진한다.
아이들과 어른아이들은 유튜브를 보고, SNS를 하며, 자신이 응당 가져야만 한다고 가정된 '행복의 크기'만을 증대시킨다. 1990년대의 MTV가 하던 일이 세상 도처에서 행해진다. 그러나 미디어가 우리를 속였다며 분노하던 락커들은 이제 없다. 그들은 자살하거나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들 대신에 배금주의의 힙합퍼들이 미디어에 나와 행복의 환상을 강화해간다.
인류사의 누구도 이루지 못한 지구촌 통일을 미디어가 달성했다.
누구도 그 행복의 현실을 살고 있지는 않은데, 미디어 안에서는 모두가 다 그렇게 살고 있는 척을 한다.
하찮은 현실의 본캐보다는, 화려한 가상의 부캐 꾸미기에 다들 열심이다. 아바타 2는 어떻든 성공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잘 해주지 못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이 남아, 아이들이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려고 한다.
"내 부캐에는 나이키 조던 한정판이 필요해."
"내 부캐에는 최신의 스마트폰이 필요하다구."
"내 부캐에는 코인을 할 1000만 원이 필요하다니까."
현실의 부모가 죄인인 만큼, 가상의 세계에는 아이들을 위한 막대한 자원이 투여된다.
그런다고 죄책감이 씻어지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더욱 망가지는 것 같아 더욱 죄책감이 든다. 그러나 그만둘 수는 없다. 아이들을 위한 이 헌신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뭘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또 갖고 싶은 것은 더욱 편하게 획득하여 독점할 수 있다.
부모는 자판기가 되어 있다.
그렇게 쉽게 획득한 만큼 금방 질린다. 뭘 해도 쉬이 질려 늘 새롭게 소비할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만을 찾아다닌다. 엑스박스 게임패스를 검색하고, 넷플릭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마침내는 언제나 유튜브다.
부모가 자기에게 해주듯이, 신선한 정보들을 맞춤형으로 요약해 자기의 입에 떠먹여준다.
'정보이유식'의 섭취가 그나마 제일 만족되는 활동이다.
자판기에는 보람도 없다.
최대한 아이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히죽히죽 웃고 있는 그 미소나마 깨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다. 자기들은 이제는 줄 수 없게 된 그 미소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슬픈가.
슬퍼도 계속 써야 한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성에 틀어박힌 성주가 되었다.
외롭고 우울한 독재자로 살아간다.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스스로 탐색해본 적이 없다. 부모가 그 죄책감에 못이겨 먼저 아이들의 필요와 욕구를 해소해주려고 안절부절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제 모르게 되었다.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아이들에게 마음의 소망이 무엇이냐고,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일은 오늘날에는 바보같은 일이다.
답이 이미 나와있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사람인 양 보는 시선만이 돌아온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모든 소망이다.
돈만 있으면 지금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죄책감을 보상하기 위한 돈으로 키워낸 아이들이라, 그들이 원하는 것도 돈밖에는 남지 않았다.
배금주의는 가정과 사회가 그 기능을 잃고 무너진 결과물이다.
SNS라는 미디어는 진짜 개새끼다. 그러나 이 분노가 부질없다.
그것으로밖에는 행복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우리가 대체 어떤 다른 행복을 말해줄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이 돈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친구가 필요해서다.
마.음.붙.일. 곳.이. 필.요.해.서.다.
돈이 있으면 놀아줄 이들이 생긴다. 인싸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모두가 나홀로 독재자이며, 누구나 돈으로 친구를 산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나, 아이들은 너무나 외로워서 돈이라도 붙잡아야 한다.
돈만이 사람의 온기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돈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사람일 수 있는, 이 사람이라는 형태를 지속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유일한 목숨줄이다.
아이들은 나쁜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정말 많이, 외로웠던 것이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이 세상 그 모든 곳에서 버려졌다.
누구도 그들을 정당하게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눈치만 보고 있다.
어른아이들 자신의 죄책감을 씻어낼 소재로만 보고 있다.
아이들과 정면으로 눈을 맞추고 거짓없이 정직하게 응시하며, 아이들이 현재 경험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이가 없다.
아이들의 마음이 붙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진짜 어른이 없다.
우리가 왜 마음을 배워 성숙해져야 하는지의 절실한 이유다.
아이들이 슬프면 세상이 슬프다.
아이들의 웃음이 멈춘 세상은 미래가 없다.
마음이 붙을 곳이 있어야, 마음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그 가지를 하늘 높이 자유롭게 뻗을 수 있다. 예수가 말한 겨자씨의 비유다.
정치판에서는 밭을 갈아야 한다고 선동하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밭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마음의 밭'이 필요하다.
마.음.붙.일. 바.로. 그. 밭.이. 필.요.하.다.
우리는 더욱 많이 깨달아야 한다.
아이들이 마음붙일 곳이 더욱 많이 생겨나야 한다.
아이들의 눈치를 살펴서 인내심 있게 그 필요와 욕구를 채워준다는 무한헌신의 자상한 서비스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들을 죄책감세탁용의 인형이 아니라 정당하게 사람으로 보며 YES와 NO의 경계를 정확히 알려줄 안내자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도와줄 정직한 마음의 안내자가 필요하다.
이것은 이 시대에 깨달은 이들의 사명과도 같다. 이 시대에 깨달은 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것은 실은 소망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너에게도 마음붙일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