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도 자격증이 있을까"
물론 깨달음에는 자격증이 있다. 좋은 것들에는 다 그 좋음을 증명하는 자격증이 있다.
여러 기관들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
가장 쉽게로는 가까이에 있는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면 된다.
우.리.가. 인.간.임.을. 말.해.주.는. 그. 어.떤. 문.서.라.도. 다. 깨.달.음.의. 자.격.증.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이미 깨달아 태어났다는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즉, 자신에게 깨달음의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해 발견한 적도 없이 다만 믿음의 차원에서만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삼고 있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이 믿음 때문에 우리는 정말로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기에 매우 자주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바로 장롱면허의 문제다. 밖에 나가서 운전하지 않는 이에게 운전면허는 한낱 사소한 권위를 위한 종이조각에 불과하듯이, 깨달음의 문제도 동일하다. 살지 않으면 그 자격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깨.달.음.을. 살.아.야.만. 깨.달.음.의. 자.격.은. 기.능.한.다.
깨달음을 산다는 것은 인간을 산다는 것이다. 인간을 살려면 우리는 먼저 인간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착각이다. 나아가 인간에 대한 판타지적 믿음을 더 크게 갖는 만큼 우리는 인간에 대해 알게 된다고 간주하기까지 한다. 착각은 더욱 커져 망상이 된다.
우리가 모범적인 정답처럼 생각하던 근대적 생활양식은 뒤집어져야 한다.
앎을 얻은 후 그 앎을 삶으로 실천한다는 이 방식은 이제 AI의 것이다.
인간은 원래 그러했듯이 실존이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삶이 먼저고 앎이 그 다음에 따라온다.
우리가 노력해서 어떠한 경지에 오르면 깨달음의 자격증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맨 처음부터 깨달음의 자격증을 얻고 출발한다. 삶이라는 것은 원래 이 방식이다.
그.렇.게. 살.아.야. 그.렇.게. 알.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인간임을 발견하게 되는 방식이며, 깨달음의 자격증이 비로소 기능하게 되는 방식이다.
우리가 깨달음의 자격증을 갖고 있는가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이미 다 갖고 있다.
우리가 깨달음의 자격증이 보증하는 깨달음의 기능을 지금 쓰고 있는가만이 문제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는 변별되게 갖고 있는 인간만의 고유한 기능이란 바로 이 '깨닫는 기능'이다.
인간은 깨달아 살도록 태어난 생명체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체험하는 모든 것에 환히 빛을 밝히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라고 이 세상에 온 존재다.
인.간.은. 깨.달.음.으.로. 이. 우.주.를. 증.언.하.는. 존.재.다.
터무니없이 웅대한 존재이며, 격렬하게 멋진 존재다.
그렇다면 이 기능을 우리는 쓰고 있는가?
자신이 왜 아무리 노력해도 깨달을 수 없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람보르기니를 사놓고 왜 운전을 하러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가 만든 옥좌에 앉아 왕처럼 머문 채 사람들이 자기에게 베스트드라이버의 강력한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왜 사람들에게 화만 내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사랑에도 자격증이 있는가?
이것은 깨달음의 자격에 대한 물음과 완벽하게 동일한 것이다.
그가 지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가 갖고 있던 자격을 먼지 속에서 되살려 빛나게 한다.
인.간.이.라.는. 이. 몸.이. 사.랑.의. 임.무.를. 수.행.하.는. 깨.달.음.의. 자.격.증.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는 진작에 다 갖고 있는 것이다.
믿기 어렵다면 주민센터에 가보자. 그리고 자격증을 손에 쥔 채 문을 열고 나와 첫 햇살을 바라보자.
인간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 놀라운 시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