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26

"깨달음은 가성비가 좋은 삶"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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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우리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 같은 마인드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출발하자.


차라리 마음은 과거에 하나님이나 신이라고 불리던 것이다. 섭리라고도 불리고, 노장사상에서는 도(道)라고 불렀다. 불교에서는 법(法)이다.


이것은 전체의 흐름이다. 이 우주의 총체적 존재의 몸짓이라고 해도 좋다.


단순하게는 '큰 마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생명의 각 개체들은 이 큰 마음이 지금 그와 같은 특수한 현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파도와 바다의 비유를 많이 쓴다. 파도로 드러난 특수현상은 바다 그 자체다. 그 모습이 아무리 다채로울지라도 바다와 분리되어 일어나고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눈앞에 있는 작은 것에 대해 하는 일은 실은 큰 마음에 대해 하고 있는 일이다.


"네 이웃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일이라."라고 하는 말씀은 분명하게 성립된다. 마더 테레사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당신과 사람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은 사실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것이 큰 마음에 대해 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작.은. 것.을. 움.직.임.으.로.써. 큰. 것.이. 움.직.이.는. 일.이. 우.리.에.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은 것은 어떻게 움직이게 될까?


작.은. 것.은. 정.성.으.로. 움.직.인.다.


정성은 작은 것 앞에 엎드려 그것을 '내 몸으로' 대하는 것이다.


작은 것이 이처럼 내 몸으로 귀하게 대해질 때 큰 감동이 생겨난다. 그리고 큰 마음은 이 큰 감동으로 움직인다. 자신에게 정성을 다한 이를 위해 움직여간다.


작은 것에 대해 우리가 한 일은 큰 마음의 입장에서는 큰 마음인 자신을 위해 한 엄청 큰 일이 된다. 그러니 자신을 감동시킨 우리를 향해 큰 마음이 움직여간 그 결과도 크다.


가성비가 넘친다.


에너지는 적게 들며 그 결과는 더욱 창대한 고효율의 삶이다.


이와는 반대로 가성비가 가장 낮게 사는 삶의 방식도 있다.


그것은 모든 것 위에 올라서 모든 것을 '내 머리로' 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방식에서는 계산기가 작동한다. 자신의 에너지는 적게 들이며 이득은 증대시킬 수 있는 전략들을 고안한다. 작은 것은 하찮은 것이 되며, 정성 대신에 그러한 정답이 지배한다. 혼자만 계산기가 내린 정답에 따라 분주한 채 큰 마음은 움직이지 않게 된다.


결국에는 큰 마음의 도움을 받지 못해 늘 혼자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입장이 된다. 불안하고 또 두렵다. 불안하고 두려워서 우리가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 것이 아니라, 홀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동안 큰 마음과 분리되었기에 불안하고 두려워진 것이다.


반면,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한 이는 큰 마음을 타고 바다를 건너간다. 바다 자체가 그를 이동시켜준다. 바다에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 바다가 그의 편이다. 불안하고 두렵지 않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따.르.는. 삶.이.다.


큰 마음을 신뢰하고 큰 마음에게 맡기는 이 삶은 가성비가 아주 높다.


과거의 기독교적 비유들은 다들 그렇게 묘사한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다 '큰 마음'이라고 바꾸어 읽어보면 재미있다. 이것은 우리 자신보다 큰 것을 신뢰하며 사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과거의 붓다의 유언은 "자등명 법등명."이라고 묘사한다. 스스로를 따르고 법을 따르라는 의미다. 또한 십우도에서 깨달은 이의 모습은 소의 등에 타 소와 하나된 이로 그려진다. 마찬가지로 큰 마음을 신뢰하며 사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더는 지나간 과거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시 찾게 될 미래의 것이다.


큰 마음을 깨달아 이를 따르는 삶은 미래의 생활양식이다.


작은 것에 엎드려 정성을 다하는 삶은 분명 미래의 생활양식이다.


작은 것을 우주로 알고, 그 우주를 이 몸으로 아는 가장 큰 지혜가 체화된 아주 멋진 생활양식이다.


여기에 정성을 다한 이 몸이 있다. 우주는 감동한다. 감동은 같은 것이 같은 것을 만나 자신의 크기를 회복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감동을 뒤집으면 동감인 이유다.


우.주.는. 지.금. 자.신.과. 같.은. 것.을. 만.나. 동.감.한. 것.이.다.


그렇게 우주는 이 몸에 반해서 다가온다. 표면적으로는 작은 것 앞에 엎드린 가장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실은 자신과 같은 가장 큰 것임에 동감하며, 이제 그 감동의 물결로 큰 마음이 큰 몸을 위해 스스로 움직인다. 자신과 같은 것인 이 몸을 위해 경쾌하면서도 성대하게 활약한다.


가성비가 높아 행복의 웃음소리도 높아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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