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27

"인생의 내비게이션"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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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한 걸음 보편적인 정답과도 같은 메뉴얼에 따라 행위하면 낙원의 문에 들어설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근대라고 하며, 근대를 살아가던 이들의 이름을 '주체'라고 한다.


주.체.는. 너.무.나. 모.순.적.인. 존.재.방.식.이.다.


주체의 핵심적인 슬로건은 이러하다.


"내가 내 자신을 책임져야 해.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되고, 당당한 어른이 되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살아가야 해."


그러면서도 주체는 자기 자신을 책임지려는 그 일을 전적으로 남이 만든 메뉴얼에 의존해서 한다.


'학습'이라고 쓰고 '모방'이라고 읽는다. 주체는 AI와 동일한 것이다.


인간이 AI처럼 살아온 그 시절이 있었다. 외부에 있는 내비게이션의 명령을 진리처럼 받아 다만 핸들을 돌리고 액셀을 밟는 기계와 같은 역할만을 수행하던 비참한 한때였다.


그러면서도 주체는 자기가 아주 똑똑한 줄 알았다.


자기가 쓰는 보편적 지성의 내비게이션을 모두가 활용하면 다 함께 유토피아에 입장할 수 있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는 인생에 쫄지 말라며, 자기만 알고 있는 숨겨진 보물을 판매하는 독점적인 보따리상인처럼 소란스러웠다.


주체는 분명 자기가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낙후된 인생시스템을 최신의 것으로 업데이트해줌으로써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음에 대해서도 주체는 그러했다.


주체는 마음에 대한 지식정보를 보급함으로써 자기가 사람들을 '마음의 주체'로 멋지게 키워내고 있다고 그 자부심이 웅장했다.


그렇게 주체는 자기만 벽에 막히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몽땅 벽에 막히게 하는 일에 성공했다.


마음이 과거에 하나님이라고 비유되던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보자.


'마음의 주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인'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에 대한 지식정보를 얻는 만큼 하나님에 대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발상과 같다. 좋게 말하면 그노시스파와 같은 영지주의의 발상이며, 사실적으로는 정보를 통해 누군가를 노예로 만들 수 있다는 천박한 정보장사꾼의 생각이었다.


예수는 이런 사기꾼들이 꼴보기 싫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좌판들을 다 뒤집었다.


누가 하나님을 자기의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가?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다.


왜 두려운가?


믿.었.다.가. 배.신.당.할.까.봐. 두.렵.다.


자기 엄마처럼 하나님도 자기를 배신할까 두렵다. 자기 부모처럼 마음이라는 것도 자기를 배신할까 두렵다.


이들에게는 배신의 아픔이 너무나 아팠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라는 착각을 갖고자 했다.


그러면 혹시 배신을 당하더라도 자기가 선택과 결정의 주체였으니, 그저 자책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자책의 아픔이 배신의 아픔보다는 덜 아플 것이라고 이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자.책.은. 자.폐.의. 일.이.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면서, 삶의 모든 것에 대해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망상을 품는 자기완결적 생태계의 모습이다.


그래서 주체의 삶은 언제나 벽에 막힌다. 그 어떤 훌륭한 모범적 메뉴얼을 따라 살고 있다 하더라도 벽은 필연이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의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 끝은 반드시 벽이다. 내비게이션은 벽 앞에서 이 말만을 반복할 뿐이다.


"목적지 부근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세요."


산정상이 아무리 하늘의 부근이라 할지라도, 노력으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성의 내비게이션의 말에 따라 주체들은 열심히 팔을 위아래로 휘두르며 날갯짓을 연습한다. 산정상에 옹기종기 모여 그 짓만을 한다. 모든 산정상은 코미디의 무대다.


현.명.한. 이.들.이. 현.명.한. 이.유.는. 누.구.보.다. 빨.리. 좌.절.할. 줄. 알.기. 때.문.이.다.


가장 현명한 이들은 자신이 지성에 속았음을 알았다.


지성에는 추진력만 있을 뿐, 애초 방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처럼 현명한 이들이 성공적으로 좌절하고 있을 때, 그들의 내면에서 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빨간 선만 따라와."


이것은 마음의 목소리였다.


그들의 내부에 장착된 인생의 내비게이션의 알림이었다.


혹자는 분명 하나님의 음성으로도 들었다.


길이 아닌 허공에 빨간 선이 그어졌다.


인디아나 존스 3편을 본 적이 있는가? 그와 같이 허공에 길이 났다.


빨간 선이 그어짐으로써 허공은 길이 되었다. 갈 수 없다고 생각하던 곳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이 창발되었다.


인간은 분명 날 수 없지만, 인간이 분명 하늘을 걷고 있었다.


하늘을 걷는 기분처럼 벽을 넘어 모든 길이 막힘없이 자유롭게 뚫려갔다.


마음이라고 하는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따라 살게 되었을 때 생겨난 일이다.


이것은 주체를 벗어나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근미래다.


우리가 가고 싶고,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을 꿈꿀 때, 우리가 행복을 꿈꿀 때, 엄청나게 넓은 지도에는 최단 거리의, 최효율적 에너지소비를 보장하는, 심지어 이동시의 그 풍경이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루트가 빨간 선으로 그려진다.


마음은 우리가 행복할 그 길을 안내하는 최고급 성능의 내비게이션이다.


이것이 태어날 때부터 누구에게나 하나씩 다 마련되어 있다.


깨달은 이들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사람들이 이 초고성능의 내비게이션을 써서 살아가는 럭셔리한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물론 마음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은 아직까지 잘 신뢰하지 않는다. 주체로 너무 오랜 시간 살아왔기 때문이다. 주체는 자기 자신만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들이 믿는 것은 남이 만든 모범적인 메뉴얼이다. 그 메뉴얼이 자기 안에 내재화된 지성의 내비게이션이다.


주체는 자신의 인생을 신뢰하기보다는, 남의 인생을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던 셈이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배신당할까봐 두려워, 남에게서 온 것을 자기가 선택하고 결정한 자기의 것이라고 고집만을 부리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배신의 아픔 때문에, 주체로 긴 시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신뢰하는 일이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하다못해, 지성의 내비게이션을 따르면 벽에 막히더라도 그 자리에는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지옥에 가더라도 혼자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자기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따른다면, 혹시 실패할 경우에는 영락없이 자기만 홀로 이 우주의 미아가 될 것만 같다.


전적인 착각이다.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실.패.하.지. 않.는.다.


비유적으로 이렇게도 말해보자.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한 일에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마음은 지식정보가 아니고, 하나님은 빅데이터가 아니다.


그것들은 아무리 정교해도 인간을 배신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왜인가?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떻게든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차라리 주체가 되었다. 모든 책임을 다 자기에게 귀속시켰다. 자기가 대신 하나님처럼 행세하려고 했다. 그럼으로써 이 세상에 하나님 같은 것은 없는 척했다.


언제인가 그가 힘들 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게 배신으로 느껴져서 너무 아팠기 때문에.


아팠던 만큼, 실은 너무나 믿고 싶었기 때문에.


인생에서 계속 너와 함께 갈 거라는 그 말이 너무나 믿고 싶었다.


그 말대로 되기를 소망했다.


그 말이 그냥 다 좋았다.


이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이 중에 어떤 것이라도 그 감수성이 회복되면,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작동하기 시작한다.


마음은 이 믿음, 소망, 사랑으로 움직인다.


어떤 것이라도 따라 살면, 우리는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는 길을 살게 된다. 당연하다.


마음은 이 진화의 역사속에서, 선임자 없는 허공에 스스로 길을 내어 늘 성공해온 전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한 번이라도 실패했다면 이미 인류는 멸종이었다.


생명은 스스로를 살리는 길을 안다. 그 비가시적 몸짓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부른다. 표현 그대로, 스스로의 생명을 사랑하여 살리는 힘이기에 하나님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생명이라서, 이 힘은 반드시 우리와 내적으로 동행한다.


마음이라고 하는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이제는 한번 신뢰해보는 것도 좋다. 아니, 실은 지금껏 얼마나 그 음성을 믿고, 소망하고, 사랑했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성이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책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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