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28

"깨달으면 쓸모있는 사람이 된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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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어도 괜찮아. 그런 너도 온전해."


이 말은 진부한 거짓말이다.


쓸모가 없으면 죽는 편이 낫다. 자신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진실로 이렇게 느낀다. 살아서 뭐하냐고, 왜 태어난 건지 모르겠다며 참담하게 속상해한다.


이것은 존재론적 문제다.


남들이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건방지게' 괜찮다며 인정, 허용, 포옹, 승인, 허락, 수용, 인가, 돌봄, 알아줌, 챙김 등을 해준다고 정말로 괜찮아지지는 않는다.


쓸모가 없는데 괜찮음이 도무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깨달음은 쓸모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진짜 쓸모가 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존재론적 문제다.


존.재.는. 원.래. 정.말.이.지. 무.척.이.나. 쓸.모.있.는. 것.이.다.


바라만 봐도 좋은 것으로서의, 근본의 쓸모가 있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하다."


이처럼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의 주변인들의 웃음과 행복이 되는 일.


우리는 진실로 우리 자신이 빛과 소금처럼 드러나는 이 쓸모를 꿈꾼다. 이와 같은 근본의 쓸모를 회복하고 싶어한다.


원래 그러려고만 태어났는데, 그러지 못한다면 굳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것은 단 1초라도 내 자신으로 살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그렇다면 내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내 자신을 잊음으로써 가능해진다.


물론 자신을 잊는다는 것은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잊으려고 하면 더 많이 생각나며, 더 많이 비참해진다.


인위적으로 자신을 잊으려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만 봐도 좋은 것을 봐야 한다. 그러면 그 바라봄 속에서 자신은 잊힌다. 자신 대신에 좋은 것만이 가슴에 들어선다.


이 상태가 바로 사랑하고 있는 상태다.


사.랑.은. 존.재.를. 지.키.는. 힘.이.다.


바라만 봐도 좋은 것이란 그 꽃을 꺾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미 그 행위 안에는 존재를 지키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의 힘은 존재에 두루 작용한다.


바라봐지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바라보고 있는 자신마저 사랑에 의해 지켜진다.


사랑하는 이들은 언제나 서로의 존재를 함께 지키는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잊고 사랑하고 있는 이에게는 그 자신의 존재가 '바라만 봐도 좋은 것'으로서 회복된다. 바로 그러한 존재의 위상을 다시 찾게 된다.


사랑이 존재의 빛을 점화시켜 존재를 지켜낸 것이다.


그는 이제 등대다.


존재의 빛으로, 험한 길을 가는 존재를 지켜낸다.


사람들에게 그는 바라만 봐도 좋은 것이다. 그가 있어 늘 든든하고 안심이 된다. 그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가 깜깜한 이 세상에 있다는 그 기적이 사람들에게는 축복과도 같다.


이 우주에서 가장 쓸모있는 것을 꼽으라면 모두가 한 손짓으로 그를 가리킨다.


가장 춥고 먼 행성에서 홀로 "쓸모없어도 괜찮아. 그런 나도 온전해."라며 자기 가슴을 토닥토닥하고 있는 이에게도 그 빛이 닿는다. 그의 가슴에 눈물이 된다. 안도의 기쁨이 내린 봄비다.


이렇게 단 1초만이라도 내 자신으로 살았다면, 그 깨달음은 영원하다.


원래 이 우주를 밝히는 가장 쓸모있는 것으로 태어난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존재의 파수꾼'이라고 부른다. 바라만 봐도 좋은 것을, 바라만 봐도 좋은 일로 지켜내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에게는 이 사랑이 가득해서 온전한 것이다.


온전해서 요리보고 조리봐도 쓸모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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