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연애학"
깨달으면 고정된 식물성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람이 된다. 나부끼며 설렌다.
깨달으면 만남에 대한 소망이 커지기 때문이다.
유행가를 들어도 님을 향한 신성한 찬송가로 들린다. 모든 노래가 다 만남에 대한 노래로만 들린다.
만남만이 정말로 유일한 소망이 된다. 정확히는 "또 만나고 싶다."이다. "자꾸자꾸 만나고 싶다."이다.
만나질 수 있었는데 좌절된 상황에 대한 실망도 한시적으로 커진다. 문을 정성스레 두드리니 눈을 살포시 뜨고 이쪽을 향하는 것 같다가도 다시 문의 저편 깊은 동굴 속으로 슬며시 사라지는 마음에 대한 섭섭함도 일시적으로 증대한다.
한때는 화도 더 많이 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을 이 정도로까지 굴절시키고 힘없게 만든 세상에 대한 답답함도 커진다.
그러다가 알게 된다.
지.금. 이.것.이. 바.로. 연.애.의. 일.이.라.는. 것.을.
자신이 지금 사랑을 배워가는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산 꼭대기에서 답을 다 아는 일과, 그 답을 산 밑의 밭에 심어 현실의 꽃을 피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여기에서 깨달음의 재미는 시작된다.
정답이 아니라 응답의 시간이 펼쳐진다.
연.애.는. 응.답.의. 상.호.작.용.이.다.
이 연애의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혼자만 너무 빠르다고 연애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혼자만 만남의 의지로 충천해 달려들면 상대는 도망간다.
깨달음의 연애에 대한 초심자들은 이 지점에서 한 번 이상씩 좌절한다. 아무리 노래해도 자신의 진심이 통하지 않아 속상함을 느낀다. 자신의 사랑을 바로 보지 못하고, 깨달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미울 때도 있다.
DC의 플래쉬의 대사처럼 자신이 너무 빨리 왔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빨리 온 것이 아니라, 너무 빨리 싼 것이다. 혼자.
상대는 심지어 전희감도 느끼지 못했는데 혼자만 과로한 것이다.
꽃망울이 스스로를 여는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매일 숲을 향하는 그 느긋한 시간의 재미가 그가 배워야 할 연애의 참맛이다.
그럴 시간은 많고, 이 사랑의 일은 영원하다.
씨.앗.은. 반.드.시. 발.아.한.다.
살아서는 어쩌면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보지 못할 미래의 꽃을 그리는 이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다.
자신이 없는 곳에서도 상대의 행복을 그릴 수 있는 이는 진실로 사랑하고 있는 이다.
그 자신이 바로 활짝 피어난 꽃이며, 꽃이 꽃을 만나러 여행을 나선 것이다.
내일과 다른 오늘에, 함께 숙성되어 간 시간들에, 어린 왕자처럼 신뢰와 설렘을 갖고 숲길로 향하는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너무 빨리 싸듯이, 다 산 것처럼 너무 빨리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조금은 더 살고 싶다.
보고 싶은 것들이 눈에 선하다.
보고 싶은 것들을 어쩌면 보지 못하게 될지라도 늘 그 생생한 만남의 장면을 가슴에 담고서 이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만나고 싶어 살며, 이미 만나진 그 삶을 산다.
삶이라는 꿈을, 살아서 꾼다.
여우가 찾아올 것이다.
혹시 더는 볼 수는 없게 될지라도, 우리가 반드시 만나게 되리란 것을 안다.
그때에는 곁을 스치는 따스한 바람이 되어 함께할 것이다.
만남은 영원하며, 바로 그 사실을 배워가는 것은 깨달음의 연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