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30

"풀링 불링"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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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으면 거의 먼저 하게 되는 말이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같은 말인데, 그 의미는 존재의 온전함이다.


이러한 이해가 분명한 형태로 발화된다.


"있는 것은 있다. 그리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깨달으면 존재에 대한 감각이 아주 선명해지며 섬세해진다.


존재에 대해 언어로 보충을 해야 한다거나, 존재하는 것만은 심심하니 다른 재미있는 것을 부가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발상은 떠오르지를 않는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장. 완.벽.하.며. 동.시.에.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존재가 더 커지고, 계속 커진 끝에 끝내는 스스로를 비우고 이동하는 존재의 운동 자체에 홀딱 빠진다. 존재에 관심갖는 일이 최고의 취미생활이 된다.


이 '있음'의 감각이 가장 충만해서 '없음'의 사랑으로까지 이어진다.


있는 것은 있다는 것은, 가장 있는 현실을 지향하는 것이다. "있는 것은 다 있으라!"라고 소망하는 것이다.


있는 것이 다 있으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그 소망을 가진 이가 없어지면 된다. 소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없이 계신 것'이다.


'없이 계신 것'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자상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지배하지 않는 엄마'의 표상이다.


이것은 '없이 계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있으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아주려는 이, 그는 가장 존재하고 싶어하는 이다. 뒤집어 말하면, 가장 존재가 결핍된 이다.


존재는 보지 않는다. 존재는 듣지 않는다.


눈이 자신을 보지 않고, 귀가 자신을 듣지 않는 것과 같다.


심장은 자기가 뛰고 있다고 환호성을 내지르며 자신이 심장임을 의식하는가?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자기가 뛰고 있다며 자신이 심장임을 선전하는가?


심장이 이따위라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다.


인지과학자인 마크 존슨은 우리의 몸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그는 몸이 가장 잘 기능할 때는 '없이 계실 때'라고 분명하게 묘사한다.


이것을 우리는 '풀링(fulling)'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이는 있는 것이 가장 있는 방식, 곧 없이 계시는 방식에 대한 표현이다.


풀링은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사실의 진술이며, 동시에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라는 더 근본적인 사실의 진술이다.


아주 단순하다. 우리에게 지금 화가 경험되고 있다고 해보자. 화는 엄연하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심장이 그러하듯이, 화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가정은 중요한데, 화는 지금 '나를 위해' 있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있는 모든 것은 '남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있다.


풀링은 이처럼 존재의 수혜를 전적으로 받고자 열려있는 방식이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의 다양한 현상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삶의 증진이 있다.


반대의 개념도 제안할 수 있다.


'불링(bulling)'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집단괴롭힘, 왕따 등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좀 서글픈 일이지만, 우리가 불운하게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불링을 경험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우.리.는. 그. 순.간. 인.간.이. 아.니.었.다.


불링의 논리는 이러하다.


"있는 것은 없게끔, 없는 것은 있게끔."


불링을 시도하던 이들은 충격적이게도, 자기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켜주겠다고 하던 이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모범적인 존재의 이상이 있었다. 그 존재도식에 따라, 넘치게 있는 것은 없게끔 잘라내고, 부족하게 없는 것은 있게끔 보충해주는 그 일을 했다.


이들은 모든 여행자를 환대한다면서, 자기가 정한 침대사이즈에 맞게 사람들의 팔다리를 늘리거나 잘라내는 프로크루스테스였다.


불링을 행사하던 이들을 떠올려보면 분명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이들은 다 자기가 대단히 윤리적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왕따를 시키는 주동자들의 변을 들어보면, 왕따된 아이가 반 분위기를 해치고 이기적으로 굴어서 '정의의 심판'을 했다고 곧잘 말하곤 한다.


이것은 가장 은폐된 폭력이다. 그래서 가장 심화된 폭력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불.링.을. 가.한.다.는. 것.은. 결.코. 비.밀.이. 아.니.다.


있는 것이 있게끔, 또 없는 것이 없게끔 우리는 좀처럼 놓아두지를 못한다.


있는 것이 있어서 문제이고, 없는 것이 없어서 문제가 된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있는 것이 없게끔 성공적으로 만든 뒤에는 이제 그 없음을 문제로 삼는다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게끔 성공적으로 만든 뒤에는 이제 그 있음을 또 문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단. 한.순.간.도. 자.기. 자.신.에.게. 충.족.되.는. 적.이. 없.다.


자기 자신이 온전하게 채워진 풀링의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다. 이것이 불링의 본질적 문제다.


불링은 언제나 대상을 향해 집행되는 것이기에 이 문제가 발생한다. 자기라고 하는 대상과 상대라고 하는 대상을 더 좋은 것으로 교정하려는 행위가 불링의 행위다.


그래서 불링을 하는 만큼, 우리는 대상의 교화에만 빠져 스스로의 자율을 잃게 된다.


자꾸만 대상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존재가 작게 경험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있는 것은 없게 하고, 없는 것은 있게 함으로써, 이상적인 형상을 조형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기와 상대를 동시에 대상으로 삼아 그 형상대로 만들기 위해 거푸집 안에 고이 눕힌다.


그렇게 불링은 대상을 자기 아래에 눕힐 수 있는 자기의 전능감에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전능감으로 말미암아 불링의 주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심리적 왕좌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전능감의 자원은 결국 도파민이다.


불링은 존재에 자극을 가해 뇌내 화학물질을 임의적으로 산출해내고자 하는 갸륵한 열정의 소산이다.


자극재들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우리는 불링의 주체가 되어 있거나, 그 협력자가 되어 있다.


자신의 존재가 재미없어서 더 많은 대상을 소비하려는 일은 이미 풍조다.


반면, 풀링은 자신에게로 관심을 향하게 한다.


이. 구.체.적.인. 자.신.만.이. 진.짜. 있.는. 것.이.다.


풀링의 감각 속에서는 많은 것을 다 조금씩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하나라도 충만하게 하게 된다.


그 시작이 미약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나로서 나를 위해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율의 감각이다.


존.재.는. 자.율.한.다.


스스로를 조직해, 스스로를 펼쳐나간다.


이 방식은 이제 생활로 무르익는다. 없이 계신 이의 삶으로 펼쳐진다.


누구보다 나로 살아가지만, 나를 의식하지 않고 생활한다.


가장 밝은 눈이고, 가장 열린 귀이며, 가장 힘차게 뛰는 심장이다.


시작은 정말로 미약했을지라도, 아주 빠른 시간에 그 결과는 창대하다.


풀링(fulling)은 원래 양털을 압축하는 과정을 뜻하는 표현이다. 축융이라고 곧잘 번역된다.


압축된 것은 무엇인가?


존재다. 존재가 고밀도로 압축된다.


밀도가 커지면 중력이 커진다.


있는 모든 것이 '나에게' 끌려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나를 위해' 끌려 있는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있다. 그것이 정말로 있다.


화가 있다. 화가 화가처럼 있다. 화(畵)를 그려낸다.


그려진 그림 안에는 놀랍도록 멋진 사람이 있다.


마음속에 그 멋진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 사람처럼 살지 못해 화가 났다. 그 사람과 닮지 못해 화가 났다. 아무리 해도 그 사람에게 닿을 수 없어 화가 났다.


그.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화.가. 났.던. 것.이.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식이다.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해다.


그러나 내가 엄청나게 괜찮은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엄연하다.


지금 그렇게 마음속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있는 것은 정말로 있다.


있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고, '나를 위해' 있는 것이며, 바로 '나로서'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충만하게 완성(fulling)된 엄청난 존재임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해 자기 자신을 불링한다.


불링함으로써 풀링한 스스로와의 관계성을 억지로 분열시킨다.


너무 대단한 것은 일단 자기 자신이 아니고 보자는 안좋은 습관이 배었다.


그렇지 않고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마음은 거울이다.


그 거울에는 분명하게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이 비친다.


아름답고, 순수하며, 빛나는 그 존재의 면모들이 지금 존재하고 있는 나를 알린다.


있는 것을 있다고 바로 하기만 하면, 그게 나다.


이 나를 단번에 다 가지라고, 나는 없이 계셨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나를 향해 모든 순간에 가득했던 이 사랑 속에서 나로 풀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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