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32

"마음은 LIFO"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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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마음의 숲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지금 정보처리기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마음들이 우리 앞에 입장하고 있는 것 같고, 우리는 물류센터에서 그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정신없이 힘쓰고 있는 듯한 삶의 양상이 이러하다.


여기에는 마음이 FIFO(First In First Out)의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오해가 작용한다. 이것은 먼저 들어온 것을 먼저 처리해 내보내는 자료처리의 한 방식을 묘사하는 용어다.


이 FIFO의 방식으로 우리가 마음을 다루려고 할 때, 우리에게는 과거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과거에 있었던 마음의 문제를 처리해야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어지는 까닭이다.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누적된 방학숙제에 치이는 입장처럼 쉽게 지치게 된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과제들의 무게에 눌려 질식하게 될 운명이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의 습관 때문이다. 우리가 삶을 스토리로 보려고 하면, 삶을 이루는 순간의 체험들인 마음은 인과관계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는 소재처럼 간주된다.


기승전결 내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올바른 순서'에 따라, 먼저 온 마음이 먼저 처리되어야만 뒤에 올 마음도 잘 처리되리라고 믿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전적인 오해다.


마음은 오히려 LIFO(Last In First Out)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중에 온 것이 먼저 나간다.


눈.앞.에. 있.는. 가.장. 최.신.의. 마.음.이. 가.장. 먼.저.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신의 마음을 다루면 오히려 그 전까지의 것들이 함께 처리된다. 스타니슬로프 그로프는 이러한 구조를 포도송이의 비유로 설명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포도알 하나를 들면 포도송이 전체가 들려나오게 된다. 과거를 파고들어 밀린 마음의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눈앞에 있는 가장 가까이의 마음을 다루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해진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마.음.이. 스.스.로. 이.미. 처.리.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마트에 누워 온전하게 처리될 때를 기다리며 떼를 쓰고 있는 아이가 아니다. 마음은 자기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전시대에 다시 올려놓고 이미 계산대 앞에서 차분하게 잘 기다리고 있다.


마음은 우리가 알아주지 않으면, 자기 혼자 밥도 못먹고, 똥오줌도 못가리며,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비참한 지옥 속에서 울고 있는 갓난아이가 아니다. 하고 많은 것들 중에 마음을 꼭 불쌍하고 약한 아이로 보려는 일은 다만 우리의 영유아기에 대한 집착이 낳는 환상일 뿐이다. 퇴행욕이라고 해도 좋다.


과거에 들어온 마음부터 순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이처럼 아이를 돌보는 과정과 같다. 하나하나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는 과정을 밟아가야만 아이가 만족하는 건강한 양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스토리텔링의 소산이다.


이러한 양육의 스토리가 제대로 전개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고 믿곤 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마음을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음을 신뢰할 수 없기에 불안해지며, 그 결과 우리는 '마음의 엄마'가 된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명분을 내세우지만, 자기가 불안해서 마음과 관련된 과정을 통제하고자 우리는 정보처리기계로 전락한다.


마음의 숲에서 길을 잃은 것은 역설적으로 눈을 떼지 못해서다.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해서다.


그러나 멋진 풍경을 보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우리는 자주 눈을 감고 그 풍경의 감동을 누리게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우리가 보지 않아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고, 땅이 내려앉지 않으며, 바다가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멋진 것들은 우리가 눈을 떼어도 스스로 온전하다.


그리고 마음도 실은 이와 같다.


마음을 따라 산다는 것은, 마음이 하늘과 땅과 바다처럼 스스로 온전하며, 알아서 가장 좋은 것을 한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이다.


강물의 예를 또 한 번 들어보자.


우리가 바로 앞에 있는 최신의 강물을 마시는 것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다. 그 강물은 이미 과거의 상류로부터 스스로 잘 흘러와 지금 우리 앞에 도착해있는 것이다. 지금 이 눈앞에 있는 강물만 마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강물의 모든 과거를 함께 마시는 것이다.


가.장. 나.중.에. 온. 마.음.은. 그. 전.까.지.의.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그 '한 마음'만 만나면 그 전까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 번에 같이 해결된다.


그렇게 되도록 대견하게 작동하는 멋진 것이 마음이다.


가득 처리해야 할 마음의 문제를 열심히 보고 있느라 충혈된 눈을 잠시 감으면, 산새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길을 가리킨다. 꽃향기가 풍겨온다. 그 향기도 길을 가리킨다. 눈을 감은 얼굴에 빛이 와닿는 온기가 느껴진다. 그 온기도 길을 가리킨다.


눈을 떠보면, 길은 이미 시야에 들어온다.


마.음.이. 이.미. 길.을. 다. 찾.아. 놓.았.다.


출구 앞에서 우리가 나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나가려고 우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에 들어온 마음은 우리와 함께 처음으로 자유를 향해 나가려던 그 마음이다.


마음은 LIFO다.


마지막에 온 아주 멋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멋진 것으로 알아보는 그 신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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