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은 인간학이다 #1

"심리학적 인간의 출현"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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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어바흐가 "신학을 인간학으로 끌어내림으로써 오히려 인간학을 신학으로 높였다."라고 말했을 때, 여기에는 탈신화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탈신화화에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가장 깊은 긍정의 의미가 녹아 있다.


우리가 신성한 신주단지로 섬겨온 그 모든 것이 실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이었음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다.


국내의 종교철학자인 정재현 선생님은 인간을 향한 이 간곡하고도 애틋한 뜻을 살려 포이어바흐에게 헌사하는 제목의 책을 지었다. 『신학은 인간학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국어와 산수를 못해왔는지의 역사를 다룬다. 국어를 못해 주제를 제대로 몰랐고, 산수를 못해 제대로 분수를 몰랐다. 그렇게 주제도 분수도 몰랐는데, 심지어는 자신이 그런 줄도 모르던 인간이 어떠한 '앎의 폭력'을 억압적으로 스스로에게 자행해왔는지 우리는 목도한다.


그리고 이맘때쯤에는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필요도 대수롭게 느끼게 되었다.


"심리학은 인간학이다."


국어와 산수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심리학도 잘 못해서, 주제와 분수도 모르는 데다가 자신의 마음까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심리학을 왜 못하게 되었는가?


심리학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숨겨진 초능력과, 마법적인 소재와, 특별한 성공신화로서의 심리학, 이것은 신주단지다. 이미 심리학이 아니다.


이러한 또 하나의 신을 모시는 제단에서는 인간은 인신공양의 제물일 뿐이다. 제물로 바쳐지기 전 희생양은 부드럽고 상냥한 보살핌 속에서 풍요롭고 넉넉한 한때를 보낸다. 제물이 긴장하지 않아야 그 살은 연하기 때문이며 그래야 지혜의 신이 기뻐하실 것이다.


지혜의 신, 오늘날의 심리학은 바로 그것이다.


지혜를 얻기 위해 인간은 그 앞에 몸을 바친다. 몸에 각종 이상한 짓들을 가한다.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몸의 아픔을 온전하게 견디어내면 계시처럼 지혜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영적인 눈이 트이고 마음이 보이게 될 것이라고 신앙한다. 유사한 내용을 다룬 <마터스>라는 제목의 공포영화가 있었다.


놀랍게도 이러한 것이 진짜의 심리학이었던 적은 없다.


플라톤은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이 뇌에 있다고 말했다.


심리학은 플라톤의 손을 든다.


이것은 실체적인 기관으로서의 심장에 마음이 있다는 말이 물론 아니다. 심장은 하나의 비유다. 무엇에 대한 비유인가?


바로 인간의 '몸'에 대한 비유다.


마음은 생각이 아니라 몸이다. 생리학적 현상이다. 니체에게서도 이 지점은 분명하다.


심리학은 마음이라고 하는 일견 몸과 대립되는 요소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 몸에 대한 얘기다. 이것은 몸에 귀착된 환원주의가 아니다. 그 표현은 전혀 맞지 않는다. 몸을 넘어선 것을 축소시켜 몸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다. 애초 몸을 벗어난 적이 없는 것이 마음이다.


하이데거가 '분위기'라고 부른 것처럼, 현대의 신체현상학자들은 '느낌'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마음'이라는 표현보다 '느낌'이라는 표현은 몸에 더욱 근접해 있는 표현이다.


마음의 종교라고 불리는 불교에서, 특히 마음에 대해 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방식으로 다루려고 했던 선불교의 대가인 스즈키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선(禪)은 느낌이다."


심리학은 몸에서 출발해서 몸으로 끝난다.


마음작용이라는 것 또한 몸에서 생겨나서 몸으로 완성된다.


우리에게 정말로 신성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신주단지를 들고 있던 그 손을 놓아야 한다.


파삭, 하며 신주단지가 허망하게 깨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이제 우리의 두 손을 하늘 높이 들고 말해야 한다.


"심리학은 인간학이다."


그리고 이 살아있는 몸의 듬직한 두 손을 가진 바로 내가 인간이라고.


이제는 정말로 심리학을 인간학으로 선언해야 할 때다.


우리는 '심리학적 인간학(Psychological Anthropology)'이라는 명칭을 제안한다.


심리학은 수상하고 비밀스러운 오컬트를 말하는 일에서 벗어나, 이제 전적으로 인간을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AI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비로소 답해야 할 시간을 맞이했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인간보다 우수한 AI가 "그렇다면 인간이란 것이 대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 우리는 자신있게 그 대답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총체이며, 바로 그 마음이 살아가는 이 몸을 인간이라고 한다고.


그 심리학적 인간의 이름이 바로 '나'라고.


나에게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이 모든 것의 이유라고.


나는 영원한 수수께끼.


이 우주에서 신비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신비.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와 같다고.


국어도 산수도 못해서, 인간이 바로 그 정도의 주제와 그 정도의 분수라는 것을 제대로 몰랐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심리학이 있다. 국어와 산수는 못하더라도, 이 몸만은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이 몸에서 생겨나 이 몸으로 완성된다.


나로서 우주의 결실이 나날이 무르익어간다.


인간에게 우주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우주에게 인간이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심리학은 인간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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