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병"
오늘날의 핵심적인 표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나 연예인이 될 수 있다."
연예인은 슈퍼히어로의 현실적 표상입니다.
개인미디어의 발달로 대중에게 노출되는 일이 수월해지면서 각종 슈퍼히어로들은 방구석에서 튀어나와 허공의 전광판에 자기를 전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들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의 장터'가 펼쳐졌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남다른 경험과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대중에게 호소함으로써 '신앙경쟁'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거대한 제도종교들의 붕괴와 함께 무종교시대로 이행되면서, 개인들이 저마다 종교상품화된 자기를 팔게 된 현실과도 같습니다. 더 많은 개인들의 아이콘화입니다.
신의 시대는 신이 사라져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신이 될 때 끝납니다.
이와 유사하게 히어로물의 수명은 결국 80억 인류가 모두 다 이능력을 가진 히어로로 묘사될 때까지입니다. 새로운 히어로를 끊임없이 출현시켜 시리즈를 이어자고자 한다면 이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결국 연예인 같은 것이 더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인류는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멈추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사이비들입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모두가 연예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당당하게 당신 자신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라고 부르짖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주장을 통해 이들이 정말 원하는 현실은 자기만 연예인이 되는 현실입니다. 즉, 해당의 표어는 자신이 연예인이 되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이를테면, 자기가 심리학의 놀라운 비밀을 쉽게 알려줌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제왕'이 될 수 있게 돕는다는 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는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심리전문가들만이 심리학의 혜택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로부터 모든 이에게 심리학의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 '심리학의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혁명적 투사처럼 자기를 입지화하곤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다른 누군가가 왕이 되도록 해주는 '왕 위의 왕'이 되기를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독재자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독재자로 드러납니다.
왜 이러한 자기모순적 행위를 하냐면, 그 자신에게는 왕이 될 아무런 역량이나 재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중에게 인기를 얻어 그 힘으로 왕이 되려 하는 것입니다.
다시 연예인이라는 소재로 바꾸어 말해보겠습니다.
모든 마음 내지 모든 개인이 연예인처럼 온전하게 빛나도록 자기가 다 알아주겠다는 이들을 보면, 자기의 말이란 것이 없습니다. 다 어디서 주워본 말, 남에게서 도둑질해온 말뿐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것이 없는 이들,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이들이 연예인이 되려고 할 때 반드시 대중적 인기 및 권위에 대한 강박이 생겨납니다. 그것들을 반드시 얻어야만 그는 연예인처럼 행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을 '연예인병'이라고 합니다.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이가 원숭이처럼 남을 흉내내며 잘난 척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를 연예인병이 걸린 이로 알아봅니다. 지디병은 유명합니다.
연예인병에 걸린 이들이 자주 보이는 행각이 있습니다.
일례로 커피에 대한 관심이 커서 커피를 탐구하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전력으로 투자한 어떤 이가 있습니다. 그는 외국에 나가 관련학위도 취득하고 로스팅의 첨단기술들도 배워왔습니다. 그렇게 커피는 그의 오리지널리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예인병에 걸린 이는 그의 커피원두를 이렇게 평합니다.
"음, 이건 산미가 느껴지지 않으니 좋지 않은 원두구나. 오일리한 걸 보니 산패되기까지 했나 보네. 내가 내린 커피가 훨 낫다."
이러한 말을 하는 이는 '산미있는 원두가 좋은 원두'라는 초딩같은 공식을 유튜브에서 주워본 뒤, 해당 유튜버가 추천하는 원두만을 소비하고 있는 이입니다. 그는 다만 자기가 직접 자기의 손으로 3번 끊어 드립커피를 내린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를 중상급은 되는 커피전문가라고 자칭하고 있는 이입니다. 물론 로스팅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스타벅스는 타노스의 다른 이름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연예인병에 걸리면 바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타인의 오리지널리티를 절대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깎아내리는 일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그래야만 자기가 잘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이들이 타인의 오리지널리티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남들만큼 재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자기가 제일 잘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병, 그것이 연예인병입니다.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팟캐스트 같은 데서 자기가 아주 수준높은 심리학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던 이가 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대중적으로 유행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아들러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써서 정말 높은 차원의 심리학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야겠네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의 기초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들러의 원전은 단 한 글자도 읽어보지 않은 이가 이와 같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가 정말로 자기보다 월등하게 수준높은 심리학을 만나면 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쯧쯧. 저렇게 하면 사람들이 안좋아할텐데. 대중적 감각이 없구만."
자기보다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 수준을 깎아내리고, 자기보다 학술적으로 깊은 것에 대해서는 그 대중성을 깎아내립니다.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을 하든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고 최고야."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쌓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기와 똑같이 '엉성한' 이들에게서 주워들은 풍월들을 합체시켜, 자기보다 지적 수준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상대로 사이비짓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내적 분열이 있는 이들이 사이비가 됩니다.
연예인병에 걸린 사이비들의 내적 분열은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과 '연예인을 천한 것으로 보는 억압' 사이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니 실은 단순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 연예인이 되고 싶을 뿐인데, 그러면 자기가 천박해보이니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고상하고 깊이있는 전문가인 것처럼 포장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이비는 사이비가 됩니다.
남사당패가 되고 싶어하는 한석봉을 우리는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그의 어미는 시퍼런 칼날로 떡을 뚝뚝 끊어내면서, 그가 아비처럼 촐싹이지 말고 점잖은 선비가 되어야 한다고 조용하게 타이릅니다.
한석봉은 자기의 남근이 끊겨 나가는 거세의 공포를 느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결과 한석봉은 잘 알지도 못하는 심리학을 떠들고, 심리학이 아닌데도 자기가 까불거릴 수 있는 소재면 그것을 심리학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가상현실의 심리학전문가로 자기를 내세워 남사당패의 소망을 실현하려고 하게 됩니다.
이러한 한석봉들이 많아짐에 따라 '약'으로 쓰여야 할 심리학이 오히려 '병'의 도구가 됩니다. 이것은 오늘날 심리학이 맞고 있는 비극입니다.
물론 심리학으로 연예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전문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말을 듣는 채널이나, 쉽게 보편적인 심리학 개념들을 설명해주는 개인방송들은 지금도 많습니다.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정직한 이들이 가는 길입니다.
이러한 이들은 자기의 수준에서 되도 않는 '아들러에게 미움받을 용기'라든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로저스의 인본주의를 선별적으로 통합한 최신의 접근' 등과 같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말끔하게 보이는 연예인이 되어야 하는데, 발화하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멍청하게 보이게 하는 이런 말들은 자연스레 삼가집니다.
나아가 남사당패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선비인 척하며 그 욕망을 실현하려는 일은 남사당패를 우습게 보아도 여간 우습게 보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연예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누구나 '쉽게'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쉬운 것은 사기밖에는 없습니다.
사이비가 인생이 쉽다고 말하는 것은 사기를 치고 있어서입니다. 그렇게 그는 남사당패와 선비 양쪽을 다 우습게 여깁니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본인이 가장 우스운 존재가 됩니다.
지디를 정말 좋아해서 이를 계기삼아 패션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시간을 패션에 전적으로 투자하는 이는 우습게 보이지 않습니다. 지디가 입은 것과 비슷해보이는 보세옷들로 지디를 흉내내고 있는 지디병만 우습게 보입니다. 이렇게 하고 다니면서 자기를 중상급의 패션전문가라고 말하기까지 한다면 80억 인류는 폭소합니다.
사이비의 원형은 짝퉁을 진짜라고 우기는 일입니다.
누구나 연예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우스꽝스러운 짝퉁이 되면 된다는 연예인병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