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심리학 #8

"님아, 그 라떼는 마시지 마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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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이상한 사이비에 빠지거나 사이비가 되려 하는 일을 부모가 너무나 싫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모도 다 해봤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이비의 소재들은 보통 '고대의 지혜' '최신의 성과' '숨겨진 비밀' 등으로 수식됩니다. 그 무엇이든 간에 그 소재들을 소비하면 개인이 특별함을 얻을 수 있다고 포장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사이비의 역사는 아주 뿌리깊습니다.


시대마다 언어만 달라졌을 뿐 과거에서부터 무수하게 반복되어 온 소재들입니다.


100년 전에도 사람들은 자기 손목을 두드리며 자기를 수용하는 동시에 욕망을 이루려는 소원을 빌어댔고, 음료들에 버터를 넣어 영성을 높여주는 음료라고 마셔댔으며,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다 보이는 놀라운 경험이 있다며 약을 팔아댔습니다.


종교체험 연구가인 윌리엄 제임스는 당대에 유행했던 마음운동을 하나의 종교현상으로 보고합니다. 그 핵심은 모든 것을 수용하며 긍정적으로 있으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제임스는 이러한 '믿음'이 어떻게 '종교적으로' 개인들에게 활용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그의 결론은, 이러한 '이상한 것들'이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종교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어 고통의 문제를 제시합니다. 인간의 실제적인 고통에 대해 정말로 이와 같은 믿음이 유효할 수 있는가에 대해 그는 의문을 던집니다.


제임스는 종교체험이 개인의 삶에 정말로 유익하다고 평가될 수 있는 기준으로서 성자성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가 종교체험의 내용과 일치하게 정말로 그렇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온갖 '이상한 것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탈락됩니다. 남는 것은 신실하고 정직한 존재뿐입니다.


쉽게 말해, 그의 건강한 삶이 그의 종교체험의 정당성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성자성을 띠고 살아가는 이들은 그래서 이상한 것들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그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이들은 존재를 향한 궁극적 관심을 갖습니다. 그 궁극적 관심에 매혹되어 자신의 삶을 정향시킵니다.


어쩌면 우리의 엄마아빠도 그러한 사실을 발견했을지 모릅니다.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이상한 것들에, 즉 사이비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고, 또 그 시절에서 빠져나와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일 수 있습니다.


눈감고 앉아 가장 나다운 나인 '참나'가 되려 했다거나, 경동시장에서 약재를 사와 조합한 야리꾸리한 환약을 먹고 공력을 높이려 했다거나, 소주천인지 대주천인지를 돌리며 호흡수련을 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대체로 오늘날의 우리가 언어만 바뀐 형태로 소비하고 있는 그 모든 사이비의 소재를 우리의 엄마아빠도 한 번 이상씩은 다 경험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조금 연세가 있는 아빠는 월남전에 참전해 LSD를 하며 신비체험을 했을지도 모르고, 또 어떤 아빠는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나 죽음 직전에 이른 순간에 종교체험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들은 부흥회에 나가 방언을 하고, 3000배를 올리다가 관세음보살의 목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모든 '라떼'의 시절을 끊고, 우리의 엄마아빠로 지금 이 자리에 왔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실제적인 그들의 삶의 고통에 응답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며, 또 그들이 무척이나 정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버지는 모른다구요! 지금 있는 마음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끙차 하고 그 마음을 어떻게든 만나주면, "그래 넌 내 마음이야. 이런 네가 있었구나. 끄아아."하며 그 마음을 알아주면, 모든 것이 온전하고 여여해지는 순간이 온다구요! 마음을 만나주는 진정한 나를 알게 된다구요! 아버지처럼 비루하게 돈걱정이나 하며 현실에 찌든 이는 이 놀라운 경험을 절대 모를 거예요."


아니, 아마도 이러한 이들의 아버지는 매우 잘 아실 것입니다.


아무 쓰잘데기 없는 경험을 신주단지처럼 들고서는 자기가 매우 특별한 존재라도 된 양 대들고 있는 자식의 모습이 대단히 한심하게 보일 것입니다.


사이비들의 부모가 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 의식 속의 환상체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권위있는 스승이라도 된 양 행세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기보다 그들은 분유와 기저귀를 사기 위해 성실하게 돈을 벌었습니다.


대체로 사이비는 자기들의 부모를 돈에 쪼들려 살다보니 성격마저 쩨째해진 '불쌍한 양반'으로 보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보다는 그들은 훨씬 더 존중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사기를 쳐서 번 돈으로 자기의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부모로서 어떻게든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자부심입니다.


"님아, 그 라떼는 마시지 마오."


사이비들의 부모가 사이비에 빠지거나 사이비가 된 자식에게 이처럼 간청하는 데는 그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자식 앞에 당당하려고 마약을 끊었는데 그 자식이 마약을 하는 현실은 부모에게는 황망하기만 할 것입니다.


사기치며 사이비짓이나 하라고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라는 것을 믿고 싶었던 이가 적어도 이 세상에 두 사람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이비는 언제나 두 번 배신합니다.


커피에도 버터를 두 스푼 넣어 들이킵니다.


고대의 지혜와 최신의 성과와 숨겨진 비밀이 담긴 아주 특별한 '라떼'입니다.


인간을 배신하는 라떼의 시절이 참 평화롭고 그윽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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