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심리학 #9

"어떤 이가 사이비에 잘 빠질까?"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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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특성을 가진 이가 사이비에 잘 빠질까요? 그리고 사이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될까요?


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자존심이 센 이가 그러합니다.


반대로 자존감이 높은 이는 사이비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 경우 분명하게 '자존심'과 '자존감'은 글자 하나만 다른 것 같지만 실은 완전히 정반대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자존심이 세다는 것은 권위에 대한 추구가 강하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대단하고 특별한 존재로 알아봐주기를 바라면서 내세우는 것이 자존심입니다.


때문에 자존심이 센 이들은 매우 자주 현실과 충돌합니다. 자기만 늘 마법적으로 제일 잘난 상태를 얻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 욕구를 지지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존심이 센 이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이 쌓여갑니다. 잘난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현실을 부정하거나 비난하고만 있을 뿐,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현실과 조화를 이룰 힘은 없는 까닭에 이들은 늘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경험합니다. 그 무력감이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화가 되어 현실과 갈등하는 강도를 더욱 높여갑니다. 그렇게 자존심이 센 이는 점차 현실부적응자의 면모를 띠게 됩니다.


이러한 때 사이비는 이들에게 달콤한 유혹이 됩니다.


첫 번째로, 사이비는 이들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이들이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이득입니다.


두 번째로, 사이비는 이들에게 '진짜 마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함으로써 이들이 현실을 극복할 솔루션을 얻게 되는 듯한 착각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회의 이득입니다.


사이비와, 사이비에 빠지는 이들 사이에는 단 하나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사이비는 먼저 사이비에 빠졌던 이입니다.


그래서 사이비는 어떻게 하면 자존심이 센 이들을 잘 조종해서 자기의 먹이로 삼을 수 있을지를 잘 압니다.


자기가 당한 대로만 남들에게 하면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이비는 먼저 사이비에 빠졌지만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눌러앉은 이입니다.


사이비가 사이비가 되는 이유와, 사이비에 빠진 이가 나오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동일합니다.


그 또한 바로 자존심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센 이들은 자기가 '속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합니다.


자기는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인데, 그러한 자기가 자기보다 못나보이는 이에게 당했다고 한다면, 이는 자존심이 모조리 무너지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센 이들은 사이비에게 속았다는 말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정상적이고 행복했던 경험으로, 사이비에 빠졌던 순간들을 미화하곤 합니다.


사이비를 '참 고맙고 좋은 사람'이라고 예찬하게 되는 일도 빈번합니다.


자존심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기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영영 사이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물리적으로 사이비에서 분리된다 할지라도, 사이비의 경험들이 계속 그의 일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 자신이 사이비를 정신적으로 계속 붙잡고 있는 까닭입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졸다가 안내음성을 듣고는 황급히 일어나 벨을 누른 이가 있습니다. 그는 몇 초 후 정신이 돌아온 뒤에 자기가 3정류장 전에 벨을 눌렀다는 사실을 알고는 얼굴이 빨개집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센 그는 그 정류장에서 내립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 밤하늘을 보며 산책 좀 하다 가야겠다."


꼭 누가 들으란 듯이 혼잣말도 하며 여여한 걸음으로 하차합니다.


자존심이 정말 센 이라면, 앞으로 그 버스를 탔을 때는 늘 3정류장 앞에서 내리게 될지 모릅니다. 그게 바로 '자신의 선택'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며 '휘둘리지 않은 자기의 주체성'이라고 가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불킥 한 번과 인생 전체를 그는 맞바꾼 셈입니다.


자존심이 세다는 것이 '가상의 시선'을 매우 중요하게 신경쓰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이것은 자기가 잘나기 위해 인기 및 권위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늘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춘기 때는 특히나 '상상의 청중'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사춘기는 덜 자랐는데 자기는 다 자랐다고 생각하는 시기입니다.


덜 잘났는데 자기는 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시기라고 조금 변주해서 표현해도 좋습니다.


자존심은 결국 사춘기를 아직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 내세우게 되는 소재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의 과업을 완수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워가게 됩니다. 자신이 부모나 친구들과도 다른 고유한 자신이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개인으로 깨어나고, 자신의 마음 또한 다른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개인이라는 감각 속에서 체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사춘기를 성공적으로 통과했을 때 얻게 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배신하지 않는 법입니다.


모든 심리적 문제는 자기가 자기를 배신함으로써 만들어집니다.


자기를 배신한 이는 반드시 다른 이도 배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자기가 배신당한 줄로만 압니다.


자존심이 센 이들이 자주 보이는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사이비가 자기를 알아주고 품어주는 자상한 언행과 눈웃음을 보이면, 이들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진짜'를 만났다며 사이비에 홀딱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머지 않은 때에 반드시 사이비를 통해 인생에서 가장 큰 배신을 맛보게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배신한 이들, 곧 덜 자란 이들이 모여 이루는 것이 사이비공동체입니다.


개인화가 안되었기에 사회화도 안된 이들이 모여 이루는 이 임의의 '거주구역'이란 다만 '배신의 전쟁터'일 따름입니다.


사이비는 자기를 먼저 속여야만 사기를 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사이비는 자기에 대한 배신자입니다. 그러니 사이비는 늘 배신을 달고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사이비에 빠진 이들이 배신을 당하게 되는 일은 필연입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센 이들은 세간의 다른 배신은 다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사이비에 의한 이 궁극적 배신만은 배신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전술했듯이, 이 배신은 너무나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아픕니다.


자신이 거의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선택'한 존재가 '감히'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사이비는 종교현상인 동시에 애착현상이면서, 분명하게 연애현상입니다.


사이비에 빠진 이들은 유사연애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미숙한 연애입니다. 자기는 늘 자기를 배신하면서, 상대는 자기를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고 서로가 주장하고 있는 무척 촌스러운 연애입니다. 소설 『인간실격』의 군상들이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사이비에 잘 빠지는 이는 연애에 서툰 이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서툰데 서툴지 않고 노련한 척하고 있는 이입니다. 그러면 사이비는 그 자기기만이 만들어낸 간극을 공략합니다.


사이비에게 기대하는 모든 일은 실은 가상의 연인에게 기대하는 그 모든 일일 수 있습니다.


연애할 상대가 없어서, 찐따같이 생긴데다가 멍청하기까지 한 사이비를 유사연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면 조금 서러울 일입니다.


연애할 상대를 쉬이 찾지 못하게 된 것은 자존심이 세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낮은 자존감을 감추기 위해 자존심을 부리고 있으면, 점점 더 연애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자존감은 자기가 자기를 배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것을 솔직하게 좋다고 말하는 일에서부터 증진됩니다.


설령 연애에 서툴다고 해도 좋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정직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연애를 배워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연애를 배워가고 있다면, 거기에는 사이비가 끼어들 틈새가 없습니다.


서툴지만 서툰대로 정직하게 시간을 들여 배워가려고 하는 몸짓, 우리는 이것을 서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순수하다고 말합니다.


순수한 물에는 기생충이 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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