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깨달음 #1

"리치몬드 과자점: 덴마크모닝빵, 바게트 오브루"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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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위해 어떤 멋진 것을 해냈는가.


인간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어떤 대단한 것을 만들어냈는가.


아티제, 더페이머스램, 곤트란쉐리에, 아오이토리, 쿠리노키 등등 주변의 맛있는 빵집들 속에 선택지는 많지만, 34년 전 아빠를 따라가 처음 행복했을 때도 리치몬드였고, 그때의 아빠보다 나이가 더 많아진 지금도 내 행복은 리치몬드에 있다.


아빠와 일요일에 자주 가곤 했던 예전 서교호텔 아래의 '휘가로'라는 경양식집은 문을 닫은지 아주 오래되었지만, 리치몬드에서는 아직도 그 향기가 난다.


주말마다 둘이 앉아 긴 시간 정답게 얘기하며 놀던 부자의 모습이 한동안 안보여 궁금했다고 휘가로의 여사장님은 할머니에게 말했다. 아빠는 돌아가셨지만, 비후까스는 여전히 맛있었고, 지금도 그립다.


리치몬드에는 분명 그러한 향기가 있다. 그리운 것이 그립게 남아 있는 그 친근한 향기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즉시 내 가슴으로 쏟아져 내린다.


조식뷔페가 지금은 사라져 아쉽지만,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새로 구운 빵을 사러 가는 일은 행복하다.


10시 반 이후로 막 나온 밀크식빵을 바로 사서 먹으면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정말 맛있다. 브로첸 샌드도 애호품이다. 그러나 가장 많이 사게 되는 것은 역시 덴마크모닝빵이다. 버터향이 은은하게 나는 빵을 아무 것도 바르지 않고 6조각 정도 먹으면 한끼로 충분하다. 풍미가 너무 좋아 가끔은 코를 살짝 대고 그 냄새를 맡기도 한다. 왠지 엄마가 구워준 빵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 때문일까. 밀가루음식을 먹으면 자주 체하는 몸이지만, 리치몬드에서 빵을 먹고 체한 적은 없다.


엄마냄새 나는 빵, 덴마크모닝빵에 대한 묘사는 이것으로 완벽하다.


한 번도 그 품에 얼굴을 묻어본 적 없지만, 엄마의 품에서는 그런 냄새가 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음으로 바게트 오브루는 버터가 위에 살짝 발린 바게트이다. 이것도 바르거나 곁들이는 것 없이 빵만 먹을 때가 가장 만족스럽다. 곡물의 고소한 맛과 버터의 향기가 입안을 가득 채우며, 표현 그대로 '리치'하고 '몬데? 몬데?'하게 만든다.


매우 운이 없을 때는 선객의 마늘바게트를 자른 도마의 흔적이 묻어 마늘향이 옮겨올 때도 있다. 거의 지구가 종말을 맞는 수준의 비극으로 느낀다. 몇 번 그러한 일을 당하고 나서는 리치몬드에서 마늘바게트의 단종을 간절히 기원하기도 했다. 다행히 요즘에는 빵의 종류마다 컷팅용 칼을 다르게 하고 있어서, 마늘바게트를 그만 미워해도 좋을 것 같다.


만약에 임종을 맞게 될 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분명 유망한 선택지로 올라가 있는 것이 이 두 빵이다.


분명 나는 아빠에게서 그 입맛을 이어받은 것 같은데, 아빠도 심심한 맛을 분명 좋아했다.


아빠도 덴마크모닝빵과 바게트 오브루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드래곤볼과 공작왕을 같이 본 것만큼이나 우리는 또 하나 이어져 있는 것이며, 그것은 그리운 것이 그립게 남아 있는 그 친근한 향기다.


34년 전 리치몬드의 문을 열고 처음 내가 들어가는 것을 뒤에서 바라보던 아빠도 그 향기를 맡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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