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떡집: 흰인절미"
"이 세상은 자신을 만나러 온 것, 물건을 사오는 것은 자신을 사오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내가 경기떡집에서 늘 사오는 것은 흰인절미 하나뿐이다. (아, 추석에는 송편도 산다.)
이 흰인절미는 정말 맛있게 달다. 설탕을 넣지 않은 찹쌀 자체의 단맛이다. 쭐겅쭐겅 씹을수록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단맛이다.
인절미계의 평양냉면이라고 말하면 좋을 것이다.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의 계통이다.
그래서인지 이 떡을 먹을 때면 할머니가 자주 생각난다. 같이 나누어 먹고 싶은 이도 할머니다.
할머니는 이북분이고 요리를 잘하셨는데, 어린 나에게는 늘 소망이 있었다.
간절하게 미원을 먹고 싶었다.
계란가게를 하던 친구네는 늘 도시락반찬으로 계란말이만을 싸왔는데 그게 유독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건 분명 미원의 마법이었을 것이다. 달달하게 감칠맛이 입에 촥 붙는 그 마력을 나는 부지불식간에 느끼고 있었을지 모른다.
미원을 제발 넣어달라는 손주의 요청에 할머니는 엄한 표정으로 그런 걸 먹으면 몸에 독이 쌓여 죽게 된다고 호통을 치실 때 나는 지지 않고 크게 외쳤다.
"미원 먹고 행복해지면 빨리 죽어도 괜찮아요! 그런 사람은 성공한 거예요!"
다행히 이때는 아빠가 아직 살아계실 때였다. 그러나 여타의 이유로든 미원금지정책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성공하기보다는 아빠보다 오래 살기를 바랐고, 성장기에 미원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서인지 지금껏 나는 성공한 적이 없지만, 할머니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나는 MSG맛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 이상으로 밍밍한 맛을 좋아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하시던 숙주 많이 들어간 이북식 만두나 동치미국수는 대체 왜 먹는지 모를 정도로 무(無)맛으로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맛을 찾으러 다닌다.
그런 맛이 더 건강하게 느껴져서가 절대로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건강과는 상관없다.
그때는 미원이 행복했고, 지금은 할머니가 느껴지는 맛이 행복한 것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지금 내 곁에 없는 것을 행복으로 소망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미원이 있지만, 할머니는 없다.
아마도 나는 경기떡집에서 흰인절미를 사며 내 자신을 사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흰인절미를 할머니와 나누어 먹고 싶은 것은, 내 자신을 나누고 싶은 것.
할머니의 음식을 이제 사랑하는 내 자신을 할머니와 나누고 싶은 것이다.
할머니, 너무 맛있었어요.
담아주신 그 맛이 먹을수록 가득하게 배어나와서, 오래오래 살 거예요. 오래오래 행복할 거예요.
할머니는 지금 자신의 곁에 없는 것도 행복으로 이처럼 간절히 소망하고 계시다고, 나는 생각한다.